그 아이가 떠난 날, 나는 다시 움직였다

공부방을 하다 보면 배우는 것들

by 포비포노

지난주에 갑자기 퇴원생이 생겼다.

공부방을 하다 보면 가끔 있는 일이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내가 이 걸로 많이 흔들리지는 않게 되었다.


부모님들은 늘 계속 보낼 것처럼 이야기하시다가
수업이 끝나는 날, 혹은 그날 밤에 연락을 주신다.

“선생님, 이번 달까지만 할게요.”


사실 나도 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부모 입장에서
그만두는 이야기를 미리 꺼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을 그렇게 맞이하는 일은
늘 조금 씁쓸하다.




이번에 그만둔 아이는 사실 내가 오래 고민하던 아이였다.

어쩌면 내가 먼저 “다른 곳을 알아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했던 아이였다.


어머님은 여기 보내실 때 예전에 다니던 학원 이야기를 하셨다.
누나가 잘 다니고 있어서 보냈는데
늘 앞에서 발표하는 것으로 부담을 주었고
아이는 결국 울기까지 했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선택하셨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찍어 보낸 사진 속에서 아이가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진작 보낼 걸 그랬어요.”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세 명이나 소개까지 해 주셨다.


하지만 아이는 처음과 조금 달랐다.

처음에는 낯설어서인지 얌전히 잘 따르던 아이였다.

그런데 공부방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나자 점점 힘을 빼기 시작했다.


영어 기초도 많이 부족한 상태였고 무엇보다 공부에 대한 의욕이 거의 없었다.

아이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 오늘 50분에 가면 안 돼요?”
“이제 그만 보면 안 돼요?”


수업을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는 우리 집 거실을 기어 다니며
청소를 해 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몇 개월이 지나면서 수업 태도는 많이 좋아졌다.

영어책도 제법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에서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나는 학생 수가 많지 않다.
그래서 아이 한 명 한 명을 꽤 오래 바라보게 된다.

또 아이를 키워 본 엄마이기도 해서 아이를 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아이에게는 어머님께 전화를 자주 드렸다.

집에서도 영어책 읽는 습관을 잡아주시면 좋겠다고,
지금 이런 부분이 부족해서 수업에서 이렇게 도와주고 있다고.


어머님은 늘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집에서도 열심히 해 보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게 부담으로 다가오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3월 새 학기를 앞두고 그만두겠다는 연락이 왔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이 아이와의 앞으로가 좀처럼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닉스 책을 하나하나 끝냈지만 아이는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를
여전히 쓰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공부에 대한 의욕이 없는 것이었다.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면 늘 “제가 아이를 잘 못 챙겨요.”라고 말씀하셨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 보면 집에서는 케어가 거의 되지 않는 듯했다.

대신 학원은 여러 곳을 다녔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게임을 했다.


아이에게 공부는 의미 없는 일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저기 학원을 다니는 아이가 아니라
공부할 이유를 찾는 아이가 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먼저 다른 곳을 권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막상 아이가 떠난다고 하면 마음이 흔들린다.


그리고 며칠 뒤 아이 엄마가 두고 간 교재를 찾으러 왔다.

아이는 밝은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책 읽으러 또 올게요.”


아이들은 참 예쁘다. 이 아이도 분명 잘할 수 있는 아이였다.

다만 아이가 잘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환경이 부족했을 뿐이다.

아마 다른 곳에 가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학습식으로 가면 단기간에 성과는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길게 보면 아이에게 남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 아이가 어떻게 하면 잘 클 수 있을까.

그 질문을 부모들이 조금 더 오래 붙잡고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없으니 그저 외부에 맡기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에게 가장 큰 환경은 가정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사교육은 조금의 뒷받침일 뿐이다.




겨울방학이 지나면서 나도 많이 지쳐 있었다.

염증이 생기고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던 때였다.


이 정도 학생 수도 괜찮다고, 더 이상 늘리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담 전화가 와도 예전처럼 간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의 퇴원 소식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확 움직였다.

그날 오후 나는 바로 광고를 올렸다.

당근마켓에도 올리고 인스타그램에도 글을 올렸다.


그리고 이번 일을 통해 나 역시 한 가지를 배웠다.

어떤 일이든 결국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


아이의 퇴원 소식은 한동안 나태해졌던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 나는 여기서도 또 배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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