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 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모두가 그들의 삶의 법칙들이 이제는 맞기 않음을, 자기들은 낡은 목록에 따라 살고 있음을 느끼는 거야.”
나 역시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나를 안 적이 없었다. 비로소 엄마가 되고 나서야 나를 찾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엄마로서의 역할도 잘하고 싶고 “나”로서도 성장해 아이들에게 멋진 엄마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은 자신을 좀 더 현명하고 일찍 찾아가기를 바란다.
나는 새벽 5~6시에 일어난다. 일어나서 독서를 하고 아주 가끔 글쓰기도 한다. 남편과 아이들 아침을 챙겨주고 모두를 보낸 뒤 운동을 간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인 4~5시간 동안 집도 조금 치우고, 영어그림책 낭독도 하고 블로그, 인스타 등 업로드한다. 소소하게 운영하는 스터디 채팅방도 관리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오면 책도 읽어주고, 놀이터도 가고 저녁 차리고 분주히 움직인다. 한 가지를 집중해서 결과를 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독서, SNS, 영어낭독을 꾸준히 3년 넘게 하고 있다.
그러면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무언가를 이렇게 꾸준히 오래 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늘 작심삼일이었다. 직장도 한 군데 오래 다니지 못했고 무얼 하려고 해도 의욕만 앞서고 늘 용두사미가 되기 일쑤였다. 그저 현실에 만족하고 드라마나 보며 시간을 보냈던 시간들이 이제와서는 너무 아쉽다. 지금은 무얼 하려고 해도 시간도 부족하지만 그것에만 집중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시간이 많고 어렸을 때 왜 몰랐을까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그때의 나는 왜 “나”에 대해서 알아보고 원하는 것을 찾아보려 하지 않았을까..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고민이 되고 가는 길이 헷갈릴 때는 바로 연락처목록을 뒤지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먼저 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아갈 길을 안내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어쨌든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그랬던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이렇게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오히려 육아와 살림을 기본으로 하면서 나를 찾는 노력까지 한다. 매일 더 열심히 하지 못함에 자책하고 욕심내다가 지치기도 한다.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고민들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하루를 열심히 보내지만 늘 불안하고 고민이 많은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엄마로서 이런 깨달음 끝에 느끼는 것은 바로 내 아이들은 이것들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거다. 하긴 우리가 자라온 교육환경에서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있었던가? 또 방법을 배웠던가? 그저 앉아서 선생님의 수업을 받고, 왜 해야 되는지 모른 채 학교 가고 공부했다. 대학만 가면 다 되는 줄 알았고 부모님이 좋다고 생각하는 안정적인 직업만 가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니 대학을 나와서 스스로 무언가를 해 보려니 늦게 그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다.
내 아이는 나처럼 소중한 시간들을 허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책을 읽고 생각하며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더 일찍 고민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고 성장했으면 한다. 아직도 내가 배울 때와 학교의 환경은 많이 변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 생각하는 과정은 가정에서 알려주어야 한다. 또, 100세 시대에 엄마인 나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 생각하고 꾸준히 독서와 글쓰기를 하며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할 것이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엄마가 되리라 오늘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