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먹어버릴 테다
채식주의를 관두고 맞이하고 있는 삼시 세 끼는 나를 환상의 나라로 매일 인도하고 있다. 아침수영을 다녀와 채식땐 먹지 못했던 육개장사발면을 원샷을 한 후 우유가 잔뜩 들어간 라테를 간식으로 또 원샷을 해준다. 그리고 난 후 점심으론 삼겹살 잔뜩 넣고 끓인 김치찌개를 원샷을 해주고 간식으로는 소시지가 아주 맛깔스럽게 박혀 있는 왕 소시지빵을 아구아구 먹어댄다. 그리고 하루의 하이라이트 저녁타임. 저녁엔 어떤 고기를 먹을지부터 설레면서 정한다. 어제 돼지를 먹었으니까 오늘은 소? 아니면 양고기? 아니야 치킨? 아니야 사골 잔뜩 넣고 우려낸 설렁탕이나 갈비탕? 아니야아니야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순대볶음? 먹을 것들이 너무너무너무나 많다. 4년 동안 먹지 않았던 음식들이 줄을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난 매 끼니 어떤 걸 먼저 골라먹을지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삼시 세 끼를 즐기고 있다.
채식을 관둔 지 어느새 2주가 넘어간다. 채식을 하는 동안 나를 먹여 살렸던 생선이나 회종류는 2주 동안엔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2주 동안 몸은 티가 날 듯 티가 안 날 듯 변화를 겪고 있다. 우선 살이 차오른다. 마치 가을철 꽉 찬 대게가 되는 기분이랄까. 피부에 밀집도가 미친 듯이 치밀해지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서 그런가. 피부가 좋아진다. 뭔가 푸석하고 건조했던 식물이 거름을 쪽쪽 빨아먹고 탱글탱글하게 빛이 나며 저 높은 하늘을 향해 쭉쭉 솟아오르는 것 같은 그런 효과라고나 할까? 그리고 성격에 변화가 미세하게 있다. 채식을 했을 때 사람이 뭔가 순해지고 차분해졌던 것 같았다면 지금은 활기가 활활 타오르고 기분이가 좋아지고 몸은 무거운데 마음은 하늘은 동동 떠다니는 것 같달까. 물론 턱이 2개가 되는 것 같은 지방 밀집도에 따른 불안감은 있지만 몸무게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0.5kg 정도만 늘어있는 상태다. 난 채식 4년의 시간 동안에도 몸무게는 줄지 않았던 터라(유지력이 대단한 내 몸뚱이) 오히려 지금 2주 동안엔 채식 때 입에 달고 살았던 달달한 간식을 먹지 않게 돼서 몸에서 받아들이는 칼로리상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게 아닐까 싶다.(라고 믿고 싶다)
채식을 관둔 지금이 너무너무 좋다라기보단 진정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채식의 시간 동안에도 얻은 좋은 점들이 많았지만 그 시간을 겪고나 보니 지금은 오히려 음식이 주는 행복감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고 있다. 당연히 곁에 있는 음식이 아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에 대한 감사함과 맛있는 음식을 가족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자리에 대한 감사함, 편식 없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서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안정감도 많이 배우고 있다. 그 무엇보다도 지금 채식을 관두고 난 후 아이의 식사량이 무척이나 좋아졌다. 고기는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주입이 되어있는 바람에 돼지고기는 급식 때 아주 가끔 먹어도 소고기는 아예 입에도 안 대던 아이가 어제는 “엄마 나 스테이크 먹어보고 싶어”라며 소고기를 요청했다. 아무래도 내가 며칠 전 양고기스테이크를 아주아주 맛있게 먹는 걸 보더니 그동안 멀리했던 스테이크에 급 관심이 생긴 것 같았다. 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잽싸게 육질이 아주 좋아 보이는 1++안심을 세 덩이 사 와서 자글자글 아주 혼신의 힘을 다하여 셰프에 빙의된 채 스테이크를 만들어 주었다. 작은 손으로 칼과 포크를 이용해서 조금씩 잘라먹는 아이의 입을 보는데 어찌나 즐거웁던지! 뭐니뭐니해도 내 아이 입에 고기 들어가는 모습만큼 아름답고 풍요롭고 세상 배부른 장면은 없을 것 같다.
다음 주면 기쁨과 행복이 넘쳐 오르는 크리스마스가 돌아온다. 캐럴만 들어도 신나는 크리스마스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먹는 스테이크와 와인이 아니던가. 4년간 생선만 씹으며 보냈던 시간은 이제 잊고 남편과 딸과 함께 쓱싹쓱싹 썰어먹을 스테이크를 위하여 동네 정육점에 미리 연락을 해놨다.
“싸장뉨! 한우1++ 안심으로 4센치 두께로 스테이크용 3덩이 미리 주문드려용!!”
요즘 하루가 멀게 돼지와 소와 양을 번갈아가며 들리며 사 오는 고깃집이라 사장님은 이 여자가 또 고기욕심을 부리는구나 하며 아주 친절하게 접수를 해주셨고 난 며칠후면 다가올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먹을 식단준비에 벌써 치밀한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올 크리스마스는 우리 세 가족 모두 입가에 기름기가 가득 흘러넘치는 따땃하고 맛있는 크리스마스이브날밤이 미리 예약되어 있는 기분이다.
매일 아침에 나가고 있는 아침수영에도 더 진지하게 임하게 되었다. 전날 두둑이 먹은 고기의 칼로리를 없애려면 수영에 더 의욕을 불태워야 하니 한 바퀴 돌 자유형도 미리 가서 2바퀴를 돌아놓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남아서 전투력을 불사르며 몇 바퀴 더 돌고 온다. 채식을 할 때보다 지금은 아침에도 에너지가 가득 차 있어선지 수영을 할 때도 체력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다리에 모터를 단 듯 위이이잉!!!하며 돌진하고 있다. 나오는 뱃살은 어쩔 수 없겠지만 이젠 몸매에 대한 미보단 건강에 대한 미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지라 잘 먹고 그만큼 많이 운동하면서 건강미 넘치는 40대의 육질을 유지하고 싶다. 아 그리고 요즘 모터 단 다리를 너무 휘둘러선가. 초급선생님께서 다가와 말씀하셨다.
“포비님, 다음 달부터는 중급으로 가시죠.”
“꺄아아아아악!!! 드디어 중급으로 진급했다아아아아!!”
어찌나 좋던지. 초급도 괜찮아하면서도 은근히 심하게 티 나게 중급으로 먼저 올라간 남편을 시기질투하고 있었는데 나도 드디어 당당하게 중급레일에서 자랑스러운 넓은 어깨를 쫘악 필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고기를 먹어서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뭔가 지쳐가던 시기에 에너지를 상승시켜 주는 역할은 톡톡히 해준 것 같다.
기름기 많고 지방 밀집도 좋은 겨울이 잘 익어가고 있다. 올 크리스마스엔 아이선물 말고도 깜짝 선물로 남편과 나의 수영복을 하나씩 더 구입해 놨다. 살이 찔 것을 대비해서 좀 더 큰 사이즈를 살까 하다가 이러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원래 사이즈로 구매해 놨다. 몸에 빈틈없이 잘 맞아 들길 바라며 오늘 저녁을 준비해 본다. 오늘저녁은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한 소갈빗살! 노릇노릇 구워서 맛있게 입으로 철썩 넣어봐야지. 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