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전 건강검진을 했다. 아주 대대적인 검사였다. 원래 작년이 건강검진 대상자였던 난 작년엔 자궁적출수술을 하는바람에 검진을 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올해가 되어서 바로 하려고 했지만 전신마취 수술을 한후에는 1년이 지나야 검진이 가능하다는 말에 겨울까지 기다리게 되었고 그렇게 올 12월 검진을 하게 되었다. 건강검진을 기다리는 3개월동안 난 정말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가슴이 콕콕 쑤셔.. 유방암 초기인가... 아빠가 대장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대장암은 유전이라던데 내 똥상태가 영 느낌이 안 좋아... 요새 술이 자꾸 안깨는게 아무래도 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4년간 채식을 해서일까 빈혈도 심해졌는데 혈소판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온갖 몸의 부위가 다 이상이 있을 것만 같았다. 나 정말 목숨에 매달리고 그런 여자 아니었는데 2년전 시아버님이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바로 얼마 전 아빠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시고나자 죽음이란게 남일이 아니란게 너무나도 피부로 와 닿았다. 조금만 이상해도 암에 걸린 것 같았고 모든게 암 초기증상인 것 같았다.
“오빠.. 나 유방암 검사 너무 긴장돼.. 있지도 않은 가슴이 내 인생을 가로막을 줄이야..”
“오빠.. 난 언제나 변비와 설사의 반복이었어.. 이건.. 분명 가족력이야 흑...”
“오빠.. 요즘 유독 피곤해... 간이 맛이 갔나봐.. 간은 되돌리기도 힘들대... 흐윽...”
내 건강염려증은 나 또한 인지하고 있을 정도로 심하다는건 스스로 알고 있긴 하지만 이번 검진을 앞두고는 정말 마음이 너무나도 비장했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남편에게 부려대는 진상은 점점 더 심해졌고 검사전날 대장내시경 준비로 약과 2리터의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기어 다니면서도 그 우울함은 더더욱 깊어졌다. 화장실 변기와 함께 날을 새고 보호자로 남편을 동반해 건강검진센타로 향했다. 접수를 하고 대기를 하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마치 의사선생님께 “당신은 앞으로 3개월 후!! 영면에 드실 겁니다”라는 얘기를 들으러 간 것 같달까. 아무생각없이 유투브를 열고 수영영상을 보며 팔을 움찔거리는 남편을 보면서 ‘이자식아.. 와이프가 무슨병에 걸렸는지도 모르는데 넌 수영 따위가 지금 중요하니’ 혀를 끌끌차며 그자식을 내려다보았고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유투브에 코를박은채 빨리 검사가 끝나면 수영을 하러 가야겠다며 헛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유포비님!!”
곧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검진용 옷으로 갈아입었다. 속옷을 모두 탈의하고 입는 옷의 느낌은 마치 엉댕이가 뚫려 있는 것 같고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여기 있는 분들 모두다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와 동질감이 생겼다. 기초검사를 시작했고 생각보다 많이 나오는 몸무게에 슬퍼하고 생각보다 높게 나오는 혈압에 좌절하며 곧 공포의 유방암 검사 순서가 다가왔다. 어찌나 긴장되던지. 간호사님께서 있지도 않은 가슴을 옆구리부터 겨드랑이까지 정성스레 모아모아 나를 차가운 기계 앞에 세워주셨고 그 기계님은 내 작디작은 가슴을 세로와 가로로 마구 짓눌러대는데 내 가슴이 순간적으로 찰진 호떡이 되버리는 기분이었다. 기계님의 호떡작업이 끝난 후 긴장되는 유방초음파 순서가 다가왔다.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유방암에 걸리신 분들을 종종 접하게 되면서 유방암은 언제나 내 마음 깊숙한 공포심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일년전 자궁도 적출해서 생리도 없는데 매달 어느 기간동안은 가슴이 콕콕 찌르듯 아프면서 가슴에 뭔가가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을 만들어내곤 했다. 보통 40대 여성분들이 다 겪는 증상인건지 지나가는 40대 여성분에게 가슴 아프지 않으시냐고 물을수도 없는것이라 나만 그런건지 다들 그런점들이 있는건지 알수가 없었다. 유방초음파는 거의 15분정도가 소요됐다. 담당샘께서 가슴을 초음파기계로 문지르시면서 계속 뭔가를 측정하고 사진을 찍는데 그 조용한 15분간의 적막함이 어찌나 답답하고 걱정이 되던지. “가슴에 뭔가가 있나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른채 검사를 마쳤지만 옷을 입고 나오면서도 그 불안감을 떨쳐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더 공포스러운 건강검진의 하이라이트. 위와 대장내시경 순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4년전쯤 대장내시경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긴장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그저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번은 해봐야지였고 아빠의 대장암은 1년전에 갑자기 발견된 것이라 그때는 가족력도 없었기에 아무런 걱정도 긴장도 하지 않은채 용종 두어개만 떼어내고 끝났었다. 용종이 놔두면 암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때라 검사를 마치고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올해 아빠가 갑자기 대장암4기로 돌아가시고나자 내 대장에 대한 걱정과 공포심은 지금 최고점을 찍고 있었다.
“오빠.. 나 잘 마치고 나올게.. 마취에서 깨어날 때 헛소리하지 않게 입 좀 막아줘..”
“자고 일어나면 끝나있다. 그리고 헛소리는 안 된다.”
입에 호스를 문채 옆으로 누운 나는 ‘마취가 안 되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하자마자 어느새 검사는 끝나 있었고 눈을 뜨니 남편이 어서 일어나서 가자며 보채고 있었다. 내 엉덩이는 괜찮은지 잠시 살펴봤는데 다행이 별 이상은 없었고 마취에서 깰 때 헛소리도 하지 않은 듯싶었다. 위,대장내시경은 검사후 바로 결과를 알수 있어서 난 잔뜩 긴장한채 담당샘님 방에 들어갔다.
“음... 사진만 봐도 아시겠죠?”
“네??”
“아~~~주 깨끗합니다. 위상태도 선홍빛으로 건강하시고 대장도 아주 깨끗하네요. 용종도 없어서 제거할 것도 없었으니 바로 일반식으로 식사하셔도 됩니다”
꺄아아아아아악!!!! 내 대장이 건강하대!!! 그것도 아~~~~주!!!!!!
모니터로 보이는 내 대장과 위는 내가 봐도 무척이나 깨끗해서 이 자랑스러운 사진을 나도 마구 찍어가고 싶었으나 남편의 보챔으로 선생님께 90도로 인사를 드리고 드디어 검사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게 되었다. 깨끗하다는 대장에 힘을 입어선지 갑자기 뼈다귀 해장국이 들이키고 싶어졌고 난 내 빈속을 뼈다귀로 가득 채워넣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검사결과는 10일이내에 문자로 전송된다고 하셨다. 잠시 뼈다귀해장국에 정신이 팔려 다른 검사결과들을 잊고 있었던 난 10일동안을 또다시 두려움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가장 큰 걱정이었던 대장이 괜찮다고 하자 내 유방을 유심히 보시던 초음파쌤의 표정이 자꾸 생각났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 걱정은 점점 더 커져갔다.
“오빠.. 내나이대에 건강검진으로 유방암을 발견하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대...”
“별일없을꺼다 걱정마라.”
“오빠.. 왼쪽 가슴에 몽우리가 있는 것 같아... 큰 이상이 있으면 어쩌지?”
“그거 그냥 살이다. 걱정마라.”
“흑...만약 암이라고 하면.. 이제 수영강습도 못가겠지 흑...”
“바다수영까지 할꺼다. 걱정마라.”
긴장되던 10일의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고 드디어 검진결과가 카톡으로 날아왔다. 클릭하는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후다닥 열어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건강하십니까? 금번에 받으신 검진결과는 일부 품목에서 정상 기준범위를 벗어났거나 유소견이 보입니다...(기타등등)]
유..유소견?? 정상 기준을 벗어나?? 후다닥 내려본 검사결과는 세 가지에서 추적검사를 요한다고 나와있었다. 우선 채식으로 인한것인지 빈혈이 조금 심했고 맥주를 쳐마셔선지 간수치가 조금 높았고 그리고 대망의 유방!! 유방 초음파 결과 양성결절 소견이 보인다고 써있었다. 빈혈과 간수치는 괜찮아!! 예상했어!! 유방 양성결절은 뭐냐고!!!
후다닥 전화해서 문의를 드렸더니 치밀유방에 흔히 있는 가슴에 작은 혹을 얘기하는 건데 모양이 나쁘지 않아 양성이라 일년에 한번씩 초음파만 받아보라는 검진결과였다.
하아- 암이 아니구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느님 아부지 감사합니다!!!! 온갖 걱정근심불안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난 살았어!!! 수영도 다닐 수 있고!!! 수술도 안해도 되고!! 비록 혹은 있지만 내 가슴은 건강하대!!! 풍악을 울려라~!!! 가슴을 열어 제껴라~!!! 아 이건 아니구나. 아무튼 난 십년 묵은 걱정거리가 싸악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건강검진을 신청해놓고도 혹여나 무슨 이상이 나올까 전전긍긍했는데 막상 검사를 하고나니 이만큼 속이 후련한일도 없었다. 괜히 가슴이 쑤실때마다 오버해서 걱정하던 습관도 버릴수 있게 되었고 방귀를 낄때마다 했던 대장에 대한 걱정도 이제 더 이상 들지 않았다.
남편은 또 건강염려증으로 바들바들 떨었던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찼지만 이제 내 걱정은 덜었으니 내년엔 남편의 똥꼬를 쑤셔봐야겠다는 다짐을 홀로 해보며 올 한해 개운한 건강검진을 끝으로 연말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2년에 한번씩 하는 건강검진 미루지 말고 앞으로도 꼬박꼬박 해나가리라. 떨지말자 건강검진. 할 수 있다 건강검진. 우리 모두 건강검진으로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도록 해요!!! 이웃님들의 유방과 대장의 건강함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