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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다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by pobi미경


작년 가을 초 내 첫책이 나왔을 때쯤 아빠가 돌아가셨다. 첫책에 아빠에 대한 원망과 어린시절의 아픔을 담아놨었기에 난 책이 나왔을 때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었다. 막연히 그때 글을 쓰면서도 이 책이 나올때쯤엔 아빠의 투병기간이 끝나 아빠는 이미 세상에 없을때일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바람이였을지 몰랐던 그 생각은 현실이 되었고 아빠는 정말 그 시기에 맞춰 살아왔던 생과는 다르게 조용히 침착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지금껏 나는 아빠를 위해 눈물을 흘린적이 없다. 그저 나를 찌르기만 했던 아빠라는 존재가 없어진 현실이 편안하기만 할뿐 신기할정도로 아무런 미움도 애증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한 상태의 지속이다. 어렸을때부터 아빠는 내게 “저 독한 년”라는 말을 자주 했었는데 아빠의 말대로 난 인정머리란 전혀 없는 독한 기지배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나완 다르게 아빠의 죽음이후 엄마는 빛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살고 있다. 아빠라는 존재는 엄마의 평생을 괴롭고 힘들게 해왔던 사람이건만 그 사람을 한평생 품고 살아온 엄마는 품어야 할 사람이 없어져 버리자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신 것 같다. 남은 삶이라도 편하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길 바랬던 내 마음과는 다르게 엄마의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아빠와 함께 썼던 가구들을 버리고 그 많았던 옷과 짐들을 다 버리면서도 빈집에 들어앉아 매일같이 홀로 아빠에게 얘기를 건넨다. 부부의 정이 무엇인지 나역시 남편과 15년이 넘게 부부생활을 해오면서도 엄마의 깊은 속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사랑보단 그 사람이 남긴 상처들이 이제는 지워지지 않는 일상의 고통이 되어버린 걸까.


“엄마, 오늘은 운동도 나가보고 그래~”

“어딜가나 네 아빠랑 가던곳인데 가봤자 마음만 안좋아서 가기도 싫어..”

“내가 헬스장 끊어줬잖아. 이제 엄마 몸만 생각하면서 삶을 좀 즐겨봐야지.”

“이나이에 뭘 즐겨.. 그냥 이렇게 사는거지.. 헬스장은 날 풀리면 가던가 할게..”


엄마를 일으켜주고 싶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를 하며 엄마의 상태를 살피고 여러 가지를 제안해봤지만 엄마의 의욕은 쉽게 생겨나지 않았다. 그저 다니던 병원이나 산책만 조금 할뿐 엄마는 집안에서만 머무르려 했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수영을 다시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10여년전쯤에 수영을 했었는데 그때 몇 년간 열심히 다니다가 아빠의 일 때문에 관둔적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수영을 다니면서도 엄마에게 수영에 대해 자세히 말을 한적은 없었는데 엄마의 흥미를 끌어보고 싶었다.


“엄마, 나 오늘 배영을 했는데 난 왜이리 물을 많이 먹지?”

“아~ 배영했구나. 배영은 턱을 좀 아래로 당겨서 해야되. 안그러면 머리가 잠겨서 물을 먹을수뿐이 없어. 물 많이 먹었어?”

“턱을 좀 당겨야하는구나! 엄마는 배영 안어려웠어?”

“응 엄마는 배영은 쉽던데? 평형이 어려웠지 배영은 금방했었어~”

“엄마, 난 자유형이 은근히 제일 어려워. 자유형 할 때 엄마는 어땠어?”

“자유형은 쉽게 배웠었지~ 자유형을 잘해야지 다른자세도 잘되는데. 몸에 힘을 빼고 가볍게 나가려고 해봐바”

“엄마는 수영을 오래했어서 왠만한건 다 잘하겠다 그치?”

“아냐 자세는 다배우긴 했는데 어려운건 엄마도 잘 못해. 벌써 10년전에 했던거라 기억도 잘 안나는 것 같은데~”

“아냐. 다시하면 몸이 기억하니까 금방 다시 다 잘할수 있을 거야. 우리 수영장에도 엄마 또래 이모들이 얼마나 많다고~”


수영을 다녀올때마다 엄마에게 배웠던 자세와 일어났던 일들을 얘기했고 엄마와 점차 수영에 대해 얘기를 하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엄마에게도 다시 수영을 해볼 것을 권유했다. 아빠 챙기느라 못했던것들 이젠 다시 다 해봐야 하지 않냐고. 늦었다고 하지 말고 자유수영이라도 다시 해보라며 매일같이 설득했다. 그리고 얼마 후 10여년전에 다녔던 수영장에 엄마를 다시 등록해드렸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익숙한 공간이 좋을 것 같았고 혹여나 엄마가 아는 사람도 만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등록해놓은 후로도 한참을 갈까 말까 망설이던 엄마는 어느날 용기를 내서 자유수영을 나갔고 그날 엄마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활기찼다.


“포비야, 오늘 수영장에 갔었는데 글쎄 10년전에 알던 사람을 만난거야~ 이젠 서로 나이가 많아서 정규수업은 못들어도 자유수영때라도 매번 보기로 했어. 10년이 지나도 아는사람이 있네. 오랜만에 얘기도 나누고 수영끝나고 같이 밥도 먹고왔어~”

“잘했어. 잘했어. 거봐 수영가면 사람도 만나고 운동도 되고 엄청 좋을꺼라니까~ 이제 시간날때마다 아침에 나가서 자유수영도 하고 헬스장도 틈틈이 가고 그래. 엄마 오랜만에 목소리에 기운이 있어서 너무 좋다!”


엄마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엄마는 다시 수영장으로, 삶의 물속으로 천천히 몸을 담그기 시작했다. 물은 처음엔 차가울테지만, 엄마의 몸은 예전의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익숙한 물속에서, 엄마는 오래전 잃어버렸던 자신을 조금씩 다시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를 오래도록 품었다는 건, 그 사람의 그림자까지도 함께 안고 살아왔다는 뜻일지 모른다. 그 무거운 그림자가 사라졌다고 해서 삶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란 걸 나는 엄마를 보며 깨달아 간다. 아빠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더 무겁고, 상처는 의외로 오래 남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엄마는 다시 물을 밀고 나아갈것이고 그런 엄마를 보며 나역시 무언가를 배워간다. 상실을 견딘다는 건 잊는 게 아니라, 그 빈자리를 껴안고서 다시 걷는 일이라는 걸. 그렇게 하루를 살아내고, 또 하루를 시작하는 게 어쩌면 인생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엄마의 힘찬 호흡이 다시 시작되길. 나역시 아빠를 향한 감정의 복잡함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찾아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조용히 응원해본다. 엄마의 두 번째 인생도, 두 번째 수영도 최대한 행복하고 길게 이어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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