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만 마시면 살안쪄요
나는 쭉 통통했다. 남들이 보기엔 그다지 통통하다고 느끼지 않았을수도 있는 보통과 통통의 경계선을 드나드는 딱 그 정도의 통통함이었다.
키 155에 몸무게 54키로그램. 55사이즈는 낑기고 66사이즈는 길이가 길어서 잘라 입어야 하는 정도였다.
나의 통통함은 나에게 약간의 불편함을 안겨줄 뿐이었다. 딱 봐도 작아보아는 55사이즈의 옷을 불안한 눈빛의 직원을 뒤로한 채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옷에 몸을 껴 맞출 때라던가,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해 허리를 긁는척하며 바지 단추를 몰래 풀어놓은 채 엉덩이 힘으로만 옷을 지탱하는 정도의 작은 고충이었다.
통통함에 대해 그다지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던 나는 그 시절 남친이었던 남편을 만나면서 내 체형에 대해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남편은 키 170에 몸무게 56키로로 무지하게 마른 남자였다. 남편과 나란히 반바지라도 입을 때면 그의 대파같이 얇은 다리가 근육질로 똘똘 뭉친 내 종아리와 뒤에서 봤을때 너무 비교될 것 같았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워낙 긍정적이었던 난 마른 남친이 부서질까봐 안쓰러웠지 내가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은 그때도 크게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긍정력이다.
술과 고기를 즐기며 평생 음주가무에 취해살것 같은 내게 선물 같은 아이가 찾아오면서 삶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육아가 죽도록 힘들었다. 저 작은아이에 대한 부담감으로 조리원에서 이미 임신 때 쪘던 살은 다 빠져버렸고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면서 내 오래된 살들이 점점 더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외모도 남편과 똑같이 생긴 아이는(딸이다) 남편의 잔병치레까지도 쏙 닮아서 나왔다. 선물 같던 아이는 무섭도록 예민했고 3년동안 나에게 2시간이 넘는 숙면의 시간을 준적이 없었다. 그 옛날 고문실에서도 가장 큰 고문이 밤에 재우지 않는 것이라더니 몇년간 숙면을 취하지 못하던 나는 어느새 몸무게가 46키로까지 빠져있었다. (할렐루야)
주변친구들은 육아 후 살이 더 빠져버린 나를 신기해하고 오히려 부러워하기도 했는데 잠을 못잔덕에 식욕마저 사라져버리면서 빠진살이라 다크써클 가득한 눈으로 배시시 웃어줄 뿐이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지금은 여러모로 살만해 졌는지 평균 48키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다.
처음엔 스트레스로 빠진 살이긴 하나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금세 원래 몸무게로 돌아가려 하는 게 살이라 티는 내지 않아도 언제나 몸무게에 신경은 쓰고 있다. 맥주를 마시면 살이 찐다고 하는데 내가 몇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4캔씩 먹어본 결과 내 생각엔 술보단 저녁을 많이 먹지 않는 게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젠 작은 키에 맞는 몸무게를 가진 덕에 옷을살때 직원의 추천하에 자연스럽게 스몰을 사고 있고 나이대보다 적게 나가는 몸무게 덕에 어려 보이는 효과도 큰 편이다.(어려 보인다고 해줘요)
예전에 통통했다고 해도 실감을 하지 못하는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육아 전후의 전신사진을 남겨본다. 눈이 많이 더러워질 수 있으므로 조금은 주의해주세요!:)
6키로의 차이.. 다신 찌면 안되겠지유? 추억 속 사진을 꺼내보면서 새삼 살을 빼준 시율양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고 만삭아닌 만삭시절 저를 만나준 남편에게도 감사드리고 싶네요!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