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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Jan 16. 2024

명품가방

내 덕에 네가 빛날 날이 오길

     

우면산에 물난리가 난적이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알 필요 없는 서울 한복판 강남 쪽에서 15년쯤 전에 났던 물난리였다. 지금의 남편과 동거시절 살았던 곳이 우면산 바로 앞동네였다. 반지하 주택이었던 그곳에 어느 날 아침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그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잠옷바람이었던 나에게 남편은 어서 이곳을 나가야 한다며 급박하게 외쳤고 난 순간적으로 중요한 물건을 챙겨서 뛰쳐나왔다. 밖으로 나와 정신을 차려보니 내 양손엔 키우던 고양이들이 한 마리씩 매달려 있었고 내 목엔 구찌가방이 걸려있었다. 구찌가방은 남편이 사준 선물로 내게 있었던 단 한 개의 명품가방이었다. 비 맞은 생쥐꼴로 목에 걸어서까지 구출해 온 내 첫 명품가방은 데리고 나온 보람도 없이 내리는 비를 잔뜩 머금은 채로 그렇게 망가져 버렸다. 이때만 해도 명품가방은 내게 좀 비싼, 사기 쉽지 않은, 아니 어쩌면 단 하나 구출하고 싶은 물건정도였다.(귀한데?) 나를 떠나간 가방은 아쉬웠으나 이후로도 명품가방은 나에겐 큰 소유욕까지 불러일으키진 않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정도의 존재였다.      


그러나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엄마들의 모임이 시작되면서부터 명품가방의 존재감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첫 반모임 날 난 해맑은 미소를 지은채 노브랜드가방을 들고나갔고 다른 엄마들은 모두 하나같이 알만한 브랜드로고가 찍힌 가방을 들고 나왔다. 그날 처음으로 나를 떠나갔던 우면산가방이 떠올랐고 명품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던 나를 탓하는 마음까지 밀려들었다. 누가 뭘 들고 다니든 내가 신경을 쓰지 않으면 그만이건만 육아로 인해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그땐 초라한 노브랜드 가방이 마치 내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날 난 누구와 무슨 대화를 했냐가 아닌 노브랜드 가방을 엉덩이 뒤로 숨기느라 애를 쓰던 내 모습만 기억에 남았다.     


가방에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반엄마들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사랑스러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가방을 볼 때면 갖고 싶다는 욕구가 불타올랐다. 들고 있는 가방을 보고 상대방의 경제적 수준을 평가하게 되었고 나 역시 더 좋은 가방을 갖기 위해 틈만 나면 머리를 굴려가며 가방 살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기회를 노리든 뭐를 하든 명품가방 이놈들은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비싸도 너무나도 비쌌다. 고민하던 난 날 잡고 중고매장을 돌아본 후 빛나는 LV로고가 빼곡히 찍힌 새것과 다름없는 튼튼한 가죽가방을 온 카드를 쥐어짜서 구입했고 더불어 남몰래 알아둔 어둠의 경로를 통해 A급 짝퉁가방까지 구비하게 되었다. 어깨에 힘이 퐉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가방을 멜 때마다 가죽이 무거워 쇄골뼈가 삐걱대는 기분이었지만 돈의 무게라고 생각하며 마치 원래 이 정도는 메고 다녔던 것처럼 내 몸에 철썩 붙인 채 들고 다녔다.     


명품가방 이놈은 한놈을 사면 또 다른 신상이 눈에 들어와 마법처럼 새끼를 낳게 하는 오묘하고 신비로운 존재였다. 이 존재에 아직도 홀려있었다면 난 대가족을 차렸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에 빠져 배형, 접형, 게다리형까지 섭렵하며 무아지경으로 헤엄을 쳤던 난 다행히도 서울생활을 정리하는 과정을 겪으며 가치의 기준을 다시 잡게 되었다. 집에 대한 욕심, 차에 대한 욕심, 가방에 대한 욕심 모두 비싼 브랜드로 보이고 싶은 내 욕망이었을 뿐 실제적으로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 현실을 인식하고 브랜드로 가치를 평가하지 않게 되자 명품가방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이 오히려 점차 부끄럽게 느껴졌다. 왜 사고 싶었을까. 왜 갖고 싶었을까. 왜 그리도 남의눈을 의식하며 내 가치를 고작 비싼 물건으로 평가되게끔 스스로 만들었던 것일까. 가방은 가방일 뿐 내가 될 수도 나를 대변할 수도 없는 그냥 물건 일뿐이었는데 나는 한낱 물건에게 너무 많은 의미와 가치를 불어넣어 주었다. 명품가방을 들고 다닐 땐 날이 궂은날엔 가방이 젖을까 봐 감싸고 달렸으며 가죽이 무거워서 어깨 한쪽이 내려가도 왕관의 무게를 이기는 것처럼 그 무게를 지탱해 내려고 애를 썼다.     


지금 내가 가장 많이 들고 다니는 가방은 가볍고 수납력도 좋은 캔버스가방이다. 책과 노트 기타 아이 물건까지 넣고 다니기에 이보다 좋을 수가 없고 가격도 저렴해 때가 탈까 가방을 모시고 다닐 일도 없다. 가방은 가방으로만 존재하고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내가 소유했던 명품가방은 옷장 속 깊은 곳에 곱게 자리 잡고 있다. 명품가방이 내 덕에 빛날 수 있는 그런 날,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마음만으로 그때 다시 들어보고 싶다.


요 가방은 중고일까요. A급 짝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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