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bi미경 Oct 17. 2024

부자가 돼서 행복한게 아닌, 행복해서 부자가 될수있도록

그렇게 남들 기준에 맞추며 살지 않아도 돼

   

항상 부자로 살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의 사업은 말아먹기 일쑤였고 우린 언제나 돈이 없었고 힘들었다. 그 힘듦은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20대까지도 지속되었다. 그때까지 우리 가족은 허스맨션이라는 이름의 쓰러져가는 4층짜리 집에 가장 낮은 층이었던 1층에서 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발장 앞에 바로 작은 부엌이 있었고 그 안쪽으로 작은방2칸이 전부였던 그 맨션은 쥐와 바퀴벌레의 출몰은 기본이었고 냉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아 항상 추위와 더위에 견뎌야 하는건 당연한 곳이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최악의 기억은 운동화를 신었는데 뭔가 물컹해서 안을 봤더니 운동화 안쪽에 죽은쥐가 들어있었던 날이었다. 비명조차 질러지지 않는 더러움과 공포를 느꼈었던 난 지금도 여전히 낯선곳에서 신발을 신을때는 안을 털어본후에야 신는 버릇이 남아있다.      


그 집에 살고 있는 내가 싫어서 아무도 내 집을 주변 친구나 지인들에게 알려준적이 없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큰 꿈이 독립이었던 난 월급의 대부분을 혼자 살 곳의 보증금을 모으기 위해 지독히 저축만 했다. 첫 회사를 운이 좋게 대기업으로 입사했던 나는 동료들의 평이 좋았다. 밖에선 절대 어려운 티를 내지 않았기에 항상 옷을 깔끔히 입었고 부모님은 사업을 하시고 집은 일산쪽 아파트에 함께 거주중으로 그렇게 평범한 중산층 가족의 모습의 가면을 쓰고 살았다. 회사로 가는 통근버스도 어차피 우리집앞에는 너무 골목이라 들어오지 않았기에 버스를 타고 나가 신도시 아파트에 내린 채 마치 그 동네에 사는 사람처럼 통근버스에 탑승을 했고 회식을 해서 시간이 늦어졌을때도 절대 누군가가 데려다 주는걸 거부했다. 난 싹싹하고 곱게 자란 나이 어리고 밝은 신입사원이었다.      


너무 곱게 보였나. 나를 좋게 본 다른 팀 대리님께서 내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며 함께 술이나 한잔하자며 소개팅자리를 제의해주셨다. 단 둘만 만나는 어색한 자리가 아닌 대리님과 대리님 여자친구분도 함께 만나는 편한 자리였기에 난 흔쾌히 응했고 그날 우리의 모임은 즐겁고 화기애애했고 설레임이 가득했다. 대리님 커플은 두분다 Y대를 나와 전형적인 상류층 삶을 살아온 분들이었고 내게 소개해주신 분 또한 같은 학교출신으로 L그룹에 근무중인 사람이었다. 썸의 기류는 충분했고 그날의 술자리는 3차까지 길어졌다. 그러나 난 그때 인생 최대의 실수를 했다. 자리의 즐거움으로 너무 취해서 잠이 들어버린것이었다. 나의 썸남은 나를 데려다 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고 내 신분증의 주소를 확인 후 함께 택시를 타고 동행했다. 그때라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어야 했던 나는 이미 만취가 된 채 세상 모르고 잠이 들어 있었고 그렇게 나의 썸남은 어둠의 골목을 지나 허스맨션앞까지 도착해버리고 말았다. 난 술에 취한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지만 그땐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누가 날 데려다줬는지 기억도 하지 못했고 아침이 돼서야 등골에 서늘함을 느껴버렸다.      

“대리님!! 저 어제 취해서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된거예요?”

“아.. 그게 어제 썸남이 포비 데려다 준다고 해서 같이 택시 태워서 보냈는데.. 잘.. 들어간거지?”

“아니, 그럼 제 집 앞까지 온거예요??”

“으응.. 그랬더라고. 안 그래도 어제 밤에 전화가 왔는데...”

“네. 뭐..뭐라고 해요?”

“아니 그게.. 어젠 분명히 분위기가 좋았는데 포비 데려다 주고 나서는 하는 말이... 자기랑은 좀 환경이 안 맞는 사람인 것 같다고 하네. 포비 사는곳이.. 일산에 빛나아파트가 아니였어?”

“아... 그게....”

“괜찮아. 말하기 어려우면 안 해도 돼. 어제 즐거웠으면 된 거지 그치?”

“네... 죄송해요.. 여러 가지로 신경 쓰게 해드려서..”     


난 썸남의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고 너무너무 창피해서 쥐구멍.. 아니 쥐는 싫다. 개구멍이든 어떤 구멍이든 들어가 버리고 싶었다. 내가 제일 보여주기 싫어하는 허스맨션을 하필 소개팅을 한 썸남이 보고야 말다니. 그 맨션은 날이 밝든 어둡든 겉에서만 봐도 얼마나 궁색하고 초라한 삶을 사는지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맨션이었다. 난 썸남이 맨션을 봤다는 사실보다 대리님이 들었을 얘기가 더 싫었고 그곳에 살고 있는 내 자신조차 너무 싫어졌다. 한동안 회사에 어떤 소문이라도 나는건 아닌지 잠을 설치고 전전긍긍했다. 다행이도 사람 좋았던 대리님은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를 대하는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친했던 대리님과는 그날 이후로 사이가 서먹해졌고 그대로 멀어지고 말았다.     

 

부자가 되고 싶었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초라한 맨션에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싫었고 또 누군가에게 들키는 건 아닌지 누군가 알고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는건 아닌지 혼자 두려워했다. 얼마되지 않아 난 결국 독립을 했고 천운으로 아빠의 사업이 풀리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그 맨션을 겨우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그 맨션이 있던 자리는 재개발사업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곳을 우연히 지날때마다 난 허스맨션의 어둡고 음침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빠의 사업 확장으로 가족도 안정을 찾았고 나 역시 부모와 독립 후 결혼을 해서 내 가정을 꾸리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때문일까 내게 집은 언제나 부의 상징이었다. 남편과 결혼 후 우린 월세부터 전세 자가집 그리고, 리모델링한 신도시 중심의 아파트까지 많은 집을 거쳐 왔다. 내 부의 탐닉은 끝이 없었고 그 과정을 겪으며 스스로 상처도 많이 받았다. 많은 집을 지나쳐왔지만 난 어떤 곳에도 만족을 한적이 없었다. 목적없이 그저 부를 늘리고 싶었기에 돈에 휘둘렸고 돈에 의해 내 삶을 바쳤다. 부자가 된다면 더 큰 부를 얻는다면 그땐 진짜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돈은 내 머리위 그곳 손 닿을곳에서 나를 놀리며 항상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자기를 잡을 수 있을것이라고 나를 다그치고 놀려댔다.     


난 내 소유로 된 집이 무거워졌고 그곳에 더 머물다간 내가 집의 소모품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내가 있어야할 이유가 사라져버리자 집이란 건 그냥 그곳에 남겨두고 나와야 하는, 영원히 내 것일 수도 없는 그저 무늬만 멋진 집일뿐이었다.
-유미경 <그렇게 남들 기준에 맞추며 살지 않아도 돼>-     


행복은 돈이 아니었다. 부의 많음과 적음은 그 기준이 한없이 달랐고 부를 쫓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본인은 아직 부족하다고 조금 더 필요하다고 한다. 부유하다고 행복한 것도 맨션에 산다고 불행한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정의를 내어버린 내 마음이 문제였다. 돈이 아닌 행복을 모으고 싶어졌다. 하나의 순간, 하나의 기쁨들을 쌓고 쌓아 그 행복을 모아가야 하는 일이 내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내 행복을 쌓아가다보면 결국 내가 진짜 필요할 때 써야 하는 돈이란것도, 내게 진정으로 행복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들도 알아서 오는것이었다. 나는 맨션을 나왔고 삶의 목적은 변화했다. 흘러다니는 돈에 매달려 쫓아다니지 않고 지금 있는 이곳에 잘 머무르며 나만의 가치와 기준, 사람을 모으고 있다. 부자가 돼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행복해서 부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내면의 변화가 나를 이끈다. 돈이 아닌 행복의 길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