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역사적인 일이 벌어졌다. ‘유미경’ 내 이름 석자가 쓰인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 세상에 이럴 수가. 이런 일이 나에게도 벌어진다니. 마지막으로 원고를 교정하고 표지디자인을 채택하고 제목이 정해지고 인쇄가 끝날 때까지도 꿈이라고 생각하기에도 너무 꿈같아서 막상 책이 나오고 나서도 한동안은 내 일 같지가 않고 어안이 벙벙했다. 책이 나오는 그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 그동안 내가 이것저것 해왔던 모든 일들이 책이라는 매개체 하나로 밀집되는 그런 기분이었다. 몇 년 동안 블로그를 써오면서도, 사이버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할 때도, 책을 내기 위해 원고를 차곡차곡 써나가면서도 이 모든 일이 현실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제주로 이주해 내 은인인 김재용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되면서 내 글쓰기는 현실이 되었고 단순한 일기에서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에세이글로 변화시켜 갔다. ‘운이 좋아서 책까지 나올 수 있었어요’가 아니었다. 1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글을 썼고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고민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나만의 중얼거림이 아닌 내 글을 읽는 독자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글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항상 마음이 바빴다. 하루에 적어도 2장의 글은 꼭 쓰기로 스스로 마음을 먹었기에 2장이 채워지지 못하면 초조해서 잠이 오지 않았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목표한 만큼의 글을 써놓고도 그다음글은 어떤 주제로 쓸지 바로 고민을 했고 주제가 갑자기 생각이 날 때면 밤이든 낮이든 메모를 하거나 바로 모니터를 켜서 글을 썼다. 투고를 하기 위해서 출판사를 고를 때도 많은 시장조사를 했다. 내 글을 실어줄 만한 곳이 어디일지 이 출판사의 특징은 무엇인지 어떤 성향의 책을 선호하는지 순위를 매기면서 엑셀로 리스트를 만들었고 투고할 기획안을 작성할 때는 남들과 달라 보이기 위해서 워드파일은 기본이고 PPT로 이미지성 파일도 만들어서 함께 투고했다. 다행히 노력한 만큼 투고메일은 반응이 좋았고 나와 성향이 맞는 좋은 출판사를 골라 첫 책을 낼 수 있게 되었다.
홀린 듯 한 과정이었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이니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나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책이 나온 지 어느새 3개월. 많은 것을 경험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책이 나오기 전까지 난 내가 책만 낼 수 있다면, 내 이름을 된 책을 단 한 권이라도 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내고 난 후 난 더 많은 고민과 생각에 빠져 있다. 첫 책을 써나갈 땐 그저 글만 생각했다. 내 속에 있는 얘기들이 잘 담겨있는지, 내가 하고 싶고 털어내고 싶은 얘기들이 내 의도대로 나왔는지, 그저 글에 대한 고민만 하면서 거침없이 써내려 갔다. 그러나 지금은 한 문장을 써도 수없이 지웠다 다시 썼다를 반복하고 있다. 막상 책을 내고 보니 독자의 반응이 피부로 와닿았다. 내 글을 읽은 독자들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내 글에서 얻지 못한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글을 쓰는 시선의 방향이 바뀌었다. 단순히 글을 쓰는 작가의 입장이 아닌 독자의 눈으로 내 글이 다시 보였다.
책은 소통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일방적으로 털어놓고 끝나는 게 아닌, 내 책을 택한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무언가 한 가지라도 얻어갈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작은 습관이 될지 중요한 결단이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내 글을 읽은 그 누군가의 삶에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야 했다. 그리고 책을 쓰는 것만큼 내 책을 홍보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매일 체감하고 있다. 단순히 글만 잘 쓰는 게 아닌 내가 쓴 글을 곱게 포장하고 널리 알리고 뻔뻔할 정도로 드러내놓아야 하는데 성격상으로도 그리고 방법론적으로도 그게 쉽지가 않다.
책이 나온 후 3개월 동안의 시간이 책을 썼던 1년의 시간보다 길게 느껴지고 있다. 2쇄를 금방 찍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은 현실의 벽 앞에서 나를 쪼그라트렸다. 책만 나온다면 “나는 이제 작가다!!”라고 외치며 어떤 글이든 쉽게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지금 난 오히려 왠지 잘 써야만 할 것 같고 의미가 담겨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의무감 때문에 한 꼭지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헤매고만 있다. 첫 책을 내면 글이 직업인 ‘작가’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글로서 살아나갈 길이 자연스레 열리고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생각조차 너무 큰 착각이었다. 첫 책을 아무 장애물 없이 그저 열심히 달려서 써 내려갔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책은 내가 쓴 책들을 내가 뛰어넘을 수 있는 더 넓어진 시야와 더 깊어진 감성이 필요했다. 나와의 끝없는 경쟁이 글을 업으로 쓰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타인의 글과 타인의 책과 비교하는 게 아닌 내가 쓴 글을 돌아보고 장단점을 파악하고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을 써나가야 하기에 한 문장의 글을 쓰는데도 많은 시간이 들어가고 있다.
지금도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있다. 브런치에 연재글을 써서 공모했고 내 스스로에게 압박감을 주기 위해 함께 글을 쓰고 평론하는 글쓰기 모임도 만들었다. 모임을 이끌고 유지하기 위해 내가 쓰는 글들에 책임감을 갖고 매일 하루에 2장의 글을 쓰며 모임카페에 매일 글을 올리고 있다. 홀린 듯 첫 책을 써냈다면 이젠 글이 직업인 사람이라고 내 스스로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때까지 홀린 듯 계속 글을 써나가야 한다. ‘유미경’이라는 사람이 낸 책이 아닌, ‘유미경 작가’가 쓴 글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다. 첫발을 내디뎠다. 멈추고 싶지 않다. 잠시 주춤대더라도 다시금 딛고 나아가고 싶다. 그 무엇보다 글이 최우선이고 소중하다. 지금도 여전히 난 ‘작가’가 되고 싶다. 오늘도 2장의 글을 채워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