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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Dec 02. 2024

채식주의자를 그만하기로 했습니다

고기야 기다려

   

“딸아, 딸은 엄마가 채식주의인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응. 싫고 이상해.”

“뭐..뭐? 싫고 이상해? 왜?”

“다른 사람들처럼 엄마랑 단둘이 데이트 나가서 맛있는 치즈닭갈비도 먹어보고 싶고 가족끼리 다 같이 고기도 구워먹고 싶고 서로 치킨다리 더 먹겠다고 싸우는 것도 해보고 싶은데 엄마는 고기를 먹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같이 할 수 없잖아. 난 엄마랑 같이 맛있는거 먹고 싶어. 엄마가 채식주의인게 난 싫어.”     


아이의 대답은 단호박이었다. 사실 이런 대답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채식주의를 시작한지 어느덧 4년차에 접어들고 있었고 9살 아이의 인생 반을 채식주의 엄마로 살고 있다. 고기를 먹지 않게 된 이유에 대해서 그동안 아이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주었고 아이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연함을 떠나 난 오히려 아이가 엄마의 채식주의를 자랑스러워할것이라고도 생각해왔다. 동물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음식을 절제하면서 몸소 실천하는 엄마. 이 어려운 일을 엄마가 해내고 있다니 이 얼마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울만한 일인가. 그러나 이건 내가 보여주고 싶은 허상이자 내가 만들어낸 명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요즘 끊이지 않고 들고 있다.      


4년 전 동물들의 살생에 대한 여러 책과 정보를 접하고 난 후 어렴풋이 알고는 있던 사실이었지만 그 사실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자 생각보다 많은 충격과 아픔이 느껴졌다. 평생을 진정한 육식주의자로 모든 끼니에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뜯고 씹으며 즐기며 살아왔던 난 그때 과감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육식인으로서의 길을 접고 진정한 채식인 으로 새롭고 신선하고 상큼하게 다시 태어나보기로. 화끈하게 고기와 해산물 모조리 먹지 않으려했지만 그럴 자신까진 없었던 나는 해산물은 먹는 페스코베지테리언이 되었다. 4년동안 고기가 들어간 수많은 음식들의 유혹과 여러 난감한 상황들을 헤쳐나가며 비건을 유지해왔다. 살육당하는 동물들을 위해 나하나 라도 힘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비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비건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과연 무엇을 위해서인지, 내가 얻고 싶은 건 무엇인지, 지금껏 비건을 지속해오면서 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엄마, 소와 돼지가 불쌍하다면서 엄마가 좋아하는 연어, 광어, 문어는 왜 안 불쌍해? 엄마는 연어 광어는 익히지도 않는채로 먹는데다가 문어는 꿈틀거리는 채로 뜨거운 물에 팔팔 삶은 문어숙회를 좋아하잖아! 문어가 얼마나 뜨겁고 아프겠어! 그리고 식물들은 또 어떻고? 시금치 콩나물들도 말을 못해서 그렇지 게네들도 다 살아있는 생명이잖아. 근데 왜 마음대로 뽑아서 생으로 막 먹어? 난 고기를 먹는 사람보다 엄마가 더 잔인하다고 생각해!”     


육고기는 동정어린 시선으로 먹지 않으면서 물고기는 회를 쳐서 날로 먹는 내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아이러니한데 아이가 보기엔 더더욱 이해가 어려울 것이다.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가 비건인것에 대해서 더 잘 이해를 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는 그 반대였다. 비건에 대한 의문점과 거부감과 함께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고기는 나쁜음식이라는 생각도 자리잡기 시작했다. 학교 급식을 먹을땐 마음껏 편하게 이것저것 먹는 것 같은데 집밥을 먹을 땐 고기를 점차 싫어하고 골라먹었다. 난 비건을 지향하면서도 아이가 비건이 되는건 한번도 원해본적이 없었다. 나 하나라도 동물복지에 힘이 되고 싶다며 육식을 멀리하면서 막상 내 아이가 비건이 되는건 싫었다. 아이의 건강적인 면으로도 걱정이 되었고 음식으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추억을 아이가 쌓아가면서 커가길 바랬다. 내 스스로는 비건이면서 내 소중한 아이는 비건이 되질 않길 원한다면 난 비건을 좋아하는걸까 싫어하는걸까. 비건의 장점보다 단점이 아이에게 미칠 영향이 더 걱정되는게 아닐까.   

  

내 모든 행동은 앞뒤가 맞지 않고 있다. 호기심과 순간의 감정으로 인해 시작했던 비건은 어느새 그 목적을 떠나서 습관적인 고집이 되어있었고 지금은 나로 인해 내 아이가 고기를 싫어하게 될까봐 혹여나 정말 비건이 되버릴까 두려워하고 있다. 고집을 버리고 내가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먹을 때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지 생각해봤다. 결국엔 역시 가족이었다. 내 앞에만 다른 음식이 놓인 식탁이 아닌 가족과 함께 같은 것을 먹고 즐기면서 하루의 마감을 정겹게 맛있게 나눌 수 있는 자리. 내게 행복을 주는 식탁은 그런 식탁이었다.      


“딸아, 딸은 엄마가 채식안하면 같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뭐야?”

“응응. 나는 너무너무너무 많아. 우선 내가 좋아하는 마라탕을 엄마한테 꼭 소개시켜주고 싶고 엄마가 치킨다리를 뜯어 먹는 모습은 어떨지도 너무너무 궁금해. 뭔가 이상하고 어색할 것 같지만 내가 가장 맛있는 치킨으로 추천해줄수 있어! 엄마는 양념 좋아해 후라이드 좋아해? 아 그리고 집에서 다 같이 삼겹살을 구워먹어보고 싶어! 식탁 가운데 불판놓고 먹는거 있잖아~ 나 그것도 너무너무 해보고 싶었어. 그리고그리고 김치볶음밥에 스팸도 넣고 먹어보고 싶어! 매번 참치만 넣고 먹었는데 난 사실 스팸김치볶음밥이 제일 맛있어 보였거든! 그리고 그리고~”


아이의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는 끝이 없었다. 자장면도 같이 나눠먹고 싶다하고 탕수육은 자기가 더 많이 먹어야 한다며 욕심도 부리고 햄과 계란을 잔뜩 넣은 김밥도 만들어 먹자며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아이의 얼굴을 보고나니 더 이상 내가 비건을 유지해야하는 이유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와의 대화를 끝으로 당장 오늘부터 난 비건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오빠! 오늘 우리 가족 모두 불판에 고기좀 구워먹게 삼겹살좀 잔뜩 사와봐바~! 파채랑 야채도 가득 사와야 한다”

남편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쳐다보더니 내 맘이 바뀌기 전에 사와야겠다며 서둘러 윤기가 좔좔 흐르는 제주흑돼지를 잔뜩 사왔고 우리 집 식탁위엔 4년만에 불판이 화끈히 타올랐다. 

“우아!! 엄마랑 같이 고기먹는다아아아!! 나 엄마가 고기 먼저 먹는 거 보고 먹어야지~ 너무너무 신기하고 설레!!!”

난 자글자글 맛있게 익은 고기 한점을 기름장에 푹 찍어 파채와 함께 상추에 싸서 한입 크게 와앙-하고 집어삼켰다. 4년 만에 먹는 고기맛은 마치 어제 먹었던것처럼 익숙했고 혹여나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 했던 내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고기쌈은 너무나 찰지게 맛있었다. 

“드디어 엄마가 채식주의를 포기했네!! 아싸 신난다!!!”

아이는 함께 먹는 저녁상에 신이나선 정말 오랜만에 맛있게 고기를 잔뜩 먹었고 당장 내일저녁엔 엄마한테 마라탕을 소개해주겠다며 마라탕 재료는 무얼 넣어야 맛있는지 신나게 떠들어댔다.     


4년의 채식의 시간동안 얻은 건 분명히 있다. 살생되는 동물들의 아픔을 충분히 느꼈고 비건을 하면서 고기를 제외한 다른 식재료들이 만들어내는 고유의 참맛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제한적인 음식을 먹게되면서 작은 재료라 할지라도 그 재료가 주는 음식의 소중함도 알게되었다. 몸과 마음은 가벼워졌으며 내 의지에 따라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누군가 비건을 할지말지 고민을 한다면 난 언제나 긍정의 대답을 해줄 것이다. 대신 어떤 결정이든 너무 극단적으로 결론짓지는 말라고 하고 싶다. 삶은 흐르듯 흘러가고 그 넘실대는 파도의 강약에 따라 놓아야할것과 가져가야 할 것들은 언제나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 내가 바로 가고 있는것인지 의구심이 들고 잠시 멈춰야 할때가 온다면 내게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지 내 결정에 따라 내가 지금 충분히 행복한지 오던길을 잘 둘러보고 방향을 바로 잡을수도 있어야 한다.      


오늘 저녁은 마라탕이다. 아이의 재잘거리는 설명에 맞춰 추천 토핑을 가득 넣고 아이와 함께 가족과 함께 따뜻한 한그릇을 원샷해봐야지. 새로운 에너지가 넘쳐 오른다. 4년간의 채식주의는 이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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