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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Dec 14. 2024

신경정신과 2년 차입니다.

   

“2주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네 저번주부터 글쓰기 모임이 시작돼서 매일 글을 쓰면서 바쁜 마음으로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수영도 계속하고 있고 무력감이나 불안감은 전혀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번에 줄인 약이 다행히 잘 맞나 보네요. 좋은 반응입니다. 그럼 이렇게 2주 더 먹어보시고 다음 상담 때 뵐게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신경정신과를 다닌 지 어느새 2년 차에 들어섰다. 2-3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상담을 하고 약을 지어먹고 있다. 2년 전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오던 어느 날 신경정신과로 향했고 그날을 시작으로 지금껏 지속적으로 상담과 약처방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그때 난 새벽 3시면 잠에서 깨어나 다시 잠이 들지를 못하는 날의 연속이었고 이유 없는 불안감과 우울감으로 아이나 남편에게 웃었다 울었다를 반복하는 진상을 부려댔었다.  

    

“비가 내려.. 내 마음처럼 하늘도 슬픈가봐....”

“(남편)(딸).........”

“해가 떴어.. 내 마음도 몰라주고 밝디 밝네....”

“(남편)(딸).........”     


나도 모르게 부려대는 진상짓을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었던 난 충동적으로 신경정신과로 향했었고 여러 가지 심리검사와 상담을 진행해 보니 불안증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검사결과가 나왔었다. 내 불안증은 이유도 그 근거지도 없었다. 아이가 기침을 조금이라도 하면 폐렴으로 번지는 게 아닌가 불안했고, 남편의 퇴근이 몇 분이라도 늦으면 큰 사고라도 난 게 아닐까 혼자 또 불안해했고, 몸 어딘가가 조금이라도 아픈 날이면 내 몸속 어딘가에 암이 번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며 불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사소한 불안증들은 쌓이고 쌓여 나를 이도저도 못하게 붙잡고 늘어진 채 주변인들마저 나로 인해 불안이라는 감정에 같이 휩싸이게 만들었다. 알 수 없는 변덕을 부리는 엄마 때문에 아이는 내 눈치를 살펴야 했고 내 짜증과 분노를 그대로 다 받아들여야 했다. 내 감정에 치우쳐 가장 약한 존재인 아이를 내 감정받이로 대하고 있는 거지 같은 내 민낯은 나를 결국 병원으로 이끌었다.     


2년 차 약을 먹고 있다. 약 때문인지 상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심리적 요인 때문인지 나는 지금 잠도 심하게 잘 자고(10시면 잔다) 밥도 심하게 잘 먹고(망할 놈의 식욕) 글도 열심히 잘 쓰고(잘 쓴다고 믿고 싶다) 그렇게 잘 지내고 있다. 1년 전 자궁적출수술도 하게 되면서 생리도 없어지자 변덕스러운 감정기복도 없어져 비가 오든 해가 뜨든 벼락이 치든 창문을 붙들고 혼자 중얼거리는 일도 없어진 지 오래됐다. 남편이 봐도 상태가 이제 무섭지 않은지 정신과 약은 그만 먹어도 되지 않겠냐고 요즘 내게 많이 묻곤 하길래 스스로 자체판단을 해보니 괜찮을 듯싶어 얼마 전부터 약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뭔가가 개운했다. 모든 게 평온할 것 같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약을 먹지 않은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게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 티가 날 듯 말 듯 하게끔 서서히 감정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괜찮은 것 같은데 뭔가가 불안한 게 없는데 무기력해지고 차분해지고 말수가 줄고 어둠이 나를 조금씩 잠식해 갔다. 그때 마침 여러 피곤이 쌓였던지 이석증까지 도져선 어지러움증세가 심해졌고 난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내게 되었다. 급격한 우울감이 밀려왔다.      


“오빠... 이석증이 평생 낫지 않으면 어떡하지...”

“일주일정도면 낫는다고 했잖아. 걱정하지 마라.”

“오빠... 이석증으로 난 좋아하는 수영도 못하게 됐고 글 쓰는 것도 어지러워서 할 수가 없어졌어.. 난 이석증으로 이렇게 앓기만 하다가 쓸쓸하고 초라하게 생을 마감하게 될지도 몰라...”

“이석증으로 죽는 사람 없다. 걱정하지 마라.”

“그 한 사람이 내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들어... 난 이제 끝났어...”

“포비야, 약 먹자.”

“무슨약...이석증약 먹었어....”

“끊었던 정신과약 다시먹자. 아무래도 의사판단없이 포비 맘대로 끊은 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아니야... 정신과약은 이제 상관없어.. 난 이석증환자로 생을 마감할 거야...”     


내 진상을 보다 못한 남편은 약을 가져와 중얼거리는 내 입에 밀어 넣어주었고 그리고 그날 밤 난 꿀잠을 잤다. 다음날 이석증도 보란 듯이 사라졌고 정신도 맑아져 있었다. 정신을 차린 난 바로 신경정신과를 찾아갔고 의사 선생님께 그간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포비님, 신경정신과 약은 서서히 끊어야 해요. 지금 드시고 있던 약의 용량도 생리증후군 환자가 먹는 정도로 약한 용량이라 불안증보다는 약을 끊어가는 단계에서 먹는 약이라고 보시면 돼요. 안 그러면 이렇게 이석증도 생길 수 있고 무기력증이 갑자기 찾아오기도 한답니다.”     


오 마이갓. 그럼 내 진상짓과 이석증 모두 내가 내 마음대로 신경정신과 약을 끊어서 만들어진 일이었다. 갑자기 안도의 한숨이 마구 나오면서 삶의 의욕이 활활 되살아났다.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마구 올린 뒤 처방받은 3주 치 약을 소중히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약을 삼키며 내 진상짓을 되돌아봤다. 이석증으로 앓다 죽을 거라는 둥 내 삶은 이미 끝났다는 둥 진상에 진상이 따로 없었다. 어쩌면 나는 2년째 약을 먹고 있으면서도 약을 어서 끊기를 원하고 있었나 보다. 이젠 내 의지대로 기분조절쯤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내가 신경정신과 약을 먹을 이유는 스스로에게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젠 꼬박꼬박 다시 약을 챙겨 먹고 있다. 하지만 약을 대하는 내 태도는 조금 달라졌다. 아직은 내 마음대로 확 끊을 수는 없지만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내 마음의 평화는 많은 부분에서 좋아졌고 신경정신과 약에 모든 감정을 의존하는 게 아닌 내 마음의 영양제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몸에는 많은 종류의 영양제를 골라 넣어줄 수 있지만 마음에는 내가 흔들리고 힘들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양제는 없다. 조금 더 나은 생활과 조금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먹는 종합비타민제처럼 신경정신과 약도 내 마음의 비타민제로 그 역할을 든든히 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신경정신과 예약일은 2주 후다. 2주 후에도 밝은 얼굴로 담당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 든다. 오늘도 무탈한 하루가 시작된다. 마음의 근육이 좀 더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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