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力)과 덕(德)의 사이
회사에서 일이 한참 바쁠 때는 도시락을 시켜 먹곤 했다. 의례 그렇듯이 도시락을 사러 가는 일은 아래 사람의 몫이다. 도시락 먹자는 말이 떨어지면 상사가 정해주는 브랜드의 도시락을 사러 간다.
그 날은 OOO 브랜드에서 사오라고 했다. 제법 맛있는 브랜드였다. 늦지 않기 위해 부지런을 떨어서 도시락을 사러 갔다. A는 가 도시락, B는 나 도시락, C는 다 도시락. 각자 주문한 도시락이 다른 가운데 나는 라 도시락을 주문했다. 제법 무거운 도시락 네 개를 챙겨 들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휴게실에 도시락을 싹 펼쳐서 준비하고, 도시락 주인들을 모셔왔다. 배가 고팠는지 맛있는 도시락 앞에서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 또한 도시락 준비하느라 힘들었던 순간을 잊고 맛있게 식사를 하려던 찰나였다.
“뭐야.. OO 도시락이 제일 비싼 거네. 어떻게 윗사람보다 비싼 걸 시키지?”
상사 A는 메뉴를 보더니 자기들보다 비싼 걸 시킨 내가 못 마땅했는지 한 마디 했다. 별 다른 생각 없이 시킨 메뉴였는데 그 순간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안 체한 게 다행이었다.
직급이 낮으면 더 비싼 거 먹으면 안 되는 건가요? 1000원 내외의 차이였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메뉴가 얼마인지 모르고 먹었을 텐데 숫자에 예민한 A의 눈에 그게 보였나 보다. A는 아래 직원에게 개인적으로 밥을 잘 사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분이 회사 예산으로 먹는 것까지 그렇게 직급을 논하니 밥 맛이 떨어졌다.
그 날 눈 밖에 난 행동을 해서 괜히 도시락 가격으로 트집을 잡았는지 그것 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다. 도시락 가격을 논하던 A의 말씀은 아직까지도 마음 속에 상처로 남아 있다. 힘들게 일하는 스텝에게 더 맛있는 거 먹으라고 해도 션찮은데, 자기보다 비싼 거 먹는다고 지적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 날 이후 A와 밥을 먹을 때는 가격표부터 챙겨본다. 눈치껏 행동하기 위해서고, 권력을 가진 그에게 맞추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마음 속에 갖고 있던 순수한 충성심은 사라졌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천리마 기(驥)를 칭찬하는 까닭은 그 힘(力) 때문이 아니라, 그 덕(德) 때문이다. 천리마 ‘기’를 명마로 손꼽는 것은 천리를 재빨리 달리는 속력(力) 때문이 아니라, 말 탄 사람의 뜻에 맞춰 배려하는 힘, 곧 ‘덕(德)’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 돈 1000원으로 힘 자랑만 하고, 정작 중요한 덕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아랫사람에게 밥 살 때 적어도 내가 주문한 식사의 가격이 상한선이 되지는 않도록 배려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나름의 가르침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