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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하는 워킹맘 Apr 01. 2021

도시락이 뭐길래?

힘(力)과 덕(德)의 사이

회사에서 일이 한참 바쁠 때는 도시락을 시켜 먹곤 했다. 의례 그렇듯이 도시락을 사러 가는 일은 아래 사람의 몫이다. 도시락 먹자는 말이 떨어지면 상사가 정해주는 브랜드의 도시락을 사러 간다. 


그 날은 OOO 브랜드에서 사오라고 했다. 제법 맛있는 브랜드였다. 늦지 않기 위해 부지런을 떨어서 도시락을 사러 갔다. A는 가 도시락, B는 나 도시락, C는 다 도시락. 각자 주문한 도시락이 다른 가운데 나는 라 도시락을 주문했다. 제법 무거운 도시락 네 개를 챙겨 들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휴게실에 도시락을 싹 펼쳐서 준비하고, 도시락 주인들을 모셔왔다. 배가 고팠는지 맛있는 도시락 앞에서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 또한 도시락 준비하느라 힘들었던 순간을 잊고 맛있게 식사를 하려던 찰나였다. 


“뭐야.. OO 도시락이 제일 비싼 거네. 어떻게 윗사람보다 비싼 걸 시키지?”


상사 A는 메뉴를 보더니 자기들보다 비싼 걸 시킨 내가 못 마땅했는지 한 마디 했다. 별 다른 생각 없이 시킨 메뉴였는데 그 순간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안 체한 게 다행이었다. 


직급이 낮으면 더 비싼 거 먹으면 안 되는 건가요? 1000원 내외의 차이였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메뉴가 얼마인지 모르고 먹었을 텐데 숫자에 예민한 A의 눈에 그게 보였나 보다. A는 아래 직원에게 개인적으로 밥을 잘 사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분이 회사 예산으로 먹는 것까지 그렇게 직급을 논하니 밥 맛이 떨어졌다. 


그 날 눈 밖에 난 행동을 해서 괜히 도시락 가격으로 트집을 잡았는지 그것 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다. 도시락 가격을 논하던 A의 말씀은 아직까지도 마음 속에 상처로 남아 있다. 힘들게 일하는 스텝에게 더 맛있는 거 먹으라고 해도 션찮은데, 자기보다 비싼 거 먹는다고 지적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 날 이후 A와 밥을 먹을 때는 가격표부터 챙겨본다. 눈치껏 행동하기 위해서고, 권력을 가진 그에게 맞추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마음 속에 갖고 있던 순수한 충성심은 사라졌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천리마 기(驥)를 칭찬하는 까닭은 그 힘(力) 때문이 아니라, 그 덕(德) 때문이다. 천리마 ‘기’를 명마로 손꼽는 것은 천리를 재빨리 달리는 속력(力) 때문이 아니라, 말 탄 사람의 뜻에 맞춰 배려하는 힘, 곧 ‘덕(德)’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 돈 1000원으로 힘 자랑만 하고, 정작 중요한 덕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아랫사람에게 밥 살 때 적어도 내가 주문한 식사의 가격이 상한선이 되지는 않도록 배려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나름의 가르침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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