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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꿀권리 Apr 03. 2021

내 인생의 소울푸드

어디서 누구랑 먹느냐는 관계 속에서 소울 푸드가 된다.


 

 

"국을 젓가락으로 먹니?"

"밥좀 푹푹 퍼먹으면 좀 좋니!"

아버지는 전혀 잔소리를 안 하시는데 밥 때가 되면 가끔 잔소리를 하셨다. 

다행이 어머니께서 거들지 않아 1회성으로 끝나곤 했다. 

어려서 많이 약했다.  안 먹는 것도 많고 먹는 것도 션찮았으니 내가 아이들을 키워보니 그때 부모님은 

무던히도 잘 참으신 거다 

초등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마당에 포도 나무가 있었다. 

제법 많은 포도가 달렸는데 포도를 좋아하는 나를 보시고

”OO만 먹게 다른 사람은 먹지 마라. 포도라도 먹어야지”하실 정도로 입이 짧았다. 

그래도 늦가을에 담가 겨울내내 먹는 동치미를 제일 좋아하고 총각김치 배추김치 등 김치를 좋아했다.  

남동생 3명에 여동생까지 먹는 것도 엄청났다. 

과일을 사도 복숭아나 사과는 한 접 (100개)을 자루에 담아 사 오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형제가 여럿이면 먹는 것으로 다툼이 많다고 하는데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솜씨가 좋으시고 부지런 하시던 어머니는 많은 먹거리를 만들어 주셨다. 

일년에 한 두 번이지만 콩강정 깨강정도 만들어 주시고 찐빵, 호떡도 종종 만들어 주셨다. 

특히 만두는 너무 맛있었다. 

만두를 만들 때 빙 둘러 앉아 만드는 것을 보고 금방 쪄서 나올 만두를 침을 삼키며 기다리곤 했다. 

온식구가 만두는 다 좋아했다. 

 

내가 다닐 때 초등학교는 월말고사를 보고 반에서 1등에게 매달 상을 줬다. 

동생 둘이 상을 받아오고 특히 동생은 학년 대표로 상을 받아왔다. 

상장 3장을 동시에 받아오자 아버지는 너무 기뻐하시며 받고 싶은 선물을 물으셨다. 

동생과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세계 소년 소녀 명작 전집을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기쁨을 오래오래 간직하기 위해 서점으로 직접 가서 가져오자고 하셨다. 

동생 네 명과 엄마, 아빠 일곱 식구는 동아서점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들고 갈 수 있을 만큼 들라고 하셨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향미 만두"에 들렸다. 

(당시 청주에서 가장 유명한 만두가게) 군만두(그 집의 시그니처)와 찐 만두를 실컷 먹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소중한 추억이다. 추억이 담긴 음식은 또 하나의 소울푸드가 된다.

 


취직을 한 아들이 하루는 엄마가 좋아할 만한 음식점을 발견했다며 점심 먹으러 나오라고 했다. 

취직하고 얼마 안되 정신이 없을 텐데…  기대 반 설렘반으로 어떤 음식일까 궁금했다.

 'OO꽃 ' 간판도 이쁘고 입구도 정갈했다. 시래기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다. 

어! 아들 시래기 잘 안 먹잖아. 엄마야 좋아하지만.” 

이 집은 나오는 찬도 맛이 있고 괜찮았어요.”

아들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과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골랐다는 사실에 너무 맛있게 먹었다.  

 스파게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아들과 유럽을 한달 넘게 자유 여행하면서 포지타노에서 해변을 바라보며 먹은 

해물이 잔뜩 들어간 스파게티는 정말 맛있었다. 

아름다운 배경과 기분 좋은 식사가 내 취향까지 바꿔 놓았다. 

김치 먹고 싶다고 매일 김치 타령을 할 줄 알았는데 현지음식에 완벽 적응하는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이제는 누구 랑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소울 푸드가 달라진다. 

50년 가까이 내인생의 소울푸드는 엄마가 담가주신 동치미와 만두였다. 

엄마도 돌아가시고 엄마의 음식은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누구 랑 어디서 먹느냐는 관계 속에서 소울푸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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