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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하는 워킹맘 May 14. 2021

떡볶이와 친구

그 때 그 시절 그 친구

어제는 무슨 일인지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지난 주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맛있는 떡볶이 집이라며 데려갔는데 맛이 별로였다. 맛없는 떡볶이를 먹고 나니 그에 대한 보상으로 오히려 맛있는 떡볶이를 먹고 싶었던 것 같다. 1년 가도 떡볶이를 찾지 않는 나에게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사실 이렇게 떡볶이를 즐기지 않는 나도 가끔 생각나는 집이 있다. 고등학생 시절 맛있게 먹던 떡볶이집이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겠지만 1000원 정도에 떡볶이를 한 대접 먹을 수 있던 곳이다. 여기는 떡볶이를 접시에 주지 않고 대접에 준다. 식욕이 한참 왕성한 학생들에게 한 그릇 가득 제공하는 떡볶이집은 최고 인기였다. 나중에 생활의 달인에도 나오는 걸 보고 어찌나 놀랐던지 우리 입맛에만 맛있는 건 아니었나 보다.


이번에 떡볶이집에 가니 시설이 싹 바뀌어 있었다. 내심 그 시절 다녔던 허름한 집을 기대했나 보다. 흘러간 시간을 생각하면 그 건물 그대로 있어도 이상할 터인데 추억을 붙잡고 싶은 묘한 마음이 우스웠다. 떡볶이를 시켜서 먹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 생각이 났다.


그 시절 친구와 나는 가끔 즐기는 떡볶이로 수험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 차분하게 공부를 잘하던 친구는 이후 교대에 입학하여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반면 수능 성적이 마음에 안 들었던 나는 재수를 결심했다. 그렇게 그 때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친구는 이제 갓 경험한 캠퍼스 생활이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공부 중인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와 밥을 사주고 가는 친구였다. 재수 시절이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지만 찾아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꽤나 든든했다.


이후 대학에 입학하고 각자의 삶에 바빠서 전처럼 자주 연락은 못하고 지냈다. 그렇게 또 세월 이 흘러 친구는 결혼 소식을 알렸다. 대학 졸업하자 마자 취직한 학교에서 교사인 남자를 만나 27살이라는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나도 그렇게 늦지 않은 나이에 결혼했지만 친구는 삶의 긴 레이스에서 훌쩍 앞서가고 있었다. 친구를 만날 때면 더 이상 친구 같지 않았다. 경험이 더 많은 선배와 대화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친구는 공무원, 나는 사기업을 다니니 견해도 달라 소원해지는 기분이었다.


몇 년 전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친구의 삶이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아이가 셋이나 되어 아이 셋을 키우며 일하는 워킹맘의 삶은 빡빡해 보였다. 남편도 교사이지만 어쩔 수 없이 엄마인 친구의 역할이 컸다. 두 아이가 ADHD 치료를 받고 있고, 둘째는 학교에 적응을 못해서 늘 울고 다닌다고 했다.


어느 날은 새벽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친구와 마주쳤다. 운동할 시간도 없으니 새벽에 잠시 바람도 쐴 겸 나왔나 보다. 지쳐 보이는 친구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안 편했다. 친구는 내가 힘들 때 마다 항상 위로하고 도와줬는데 별로 도와줄 게 없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아이를 낳아서 이제 초등학교도 보내니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는 친구가 더 생각이 났다.


달력을 보니 친구 생일이 얼마 안 남았다. 선물을 장만하고, 펜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졸업 이후 친구에게 편지라는 걸 써본 적이 없었다. 친구에게 생일을 축하하면서 학교 선생님인 네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썼다. 한동안 학교 선생님은 방학도 있고 편한 직업이라며 쉽게 생각하던 나를 반성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친구도 또 무엇인가 준비해왔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걸 기억하고는 축하한다며 손편지와 함께 딸 선물을 챙겨온 것이다. 나보다 빨리 인생을 경험한 친구는 초등학교 입학시키는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친구의 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선물 한 번 챙기지 못한 게 생각나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친구는 항상 사려 깊은 언니같았다.


얼마 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교에 적응 못하는 둘째 딸 아이를 위해 다른 곳으로 이사간 이후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였다. 늘 웃으며 얘기하지만 또 속을 끓였겠다 싶었다. 아이들 고민 없이 그냥 즐거웠던 때도 있었는데. 비록 입시 스트레스는 있어도 다른 걱정 없이 밝던 그 시절 친구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 때를 잠시라도 돌려주고 싶었다. 조만간 친구를 끌고서 그 떡볶이 집에 한 번 더 가야겠다. 그 때 그 시절 떡볶이를 그리워하는 건 그 친구도 마찬가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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