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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하는 워킹맘 Jan 07. 2021

내가 만난 멍청이

멍청이의 사전적 의미는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슬기롭지 못하고 머리가 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멍청이라고 불리면 어떨까? 대부분 이렇게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그 말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 엄마다. 아빠는 엄마를 멍청이라고 부르신다. 물론 본인은 멍청이와 사는 바보라고 일컬으신다. 멍청이란 말은 아빠가 엄마에게 붙인 애칭이고, 우리는 웃으면서 그 얘기를 듣고는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었다. 


왜 엄마가 멍청이일까? 가장 큰 이유는 엄마를 멍청이라고 부르는 아빠와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아직 조선시대에 사는 분 같다. 우리는 가끔 아빠는 이 시대에 몇 안 남은 대한민국 상남자라고 이야기한다. 올 초 은퇴하셨는데 이후 설거지를 딱 한 번 하셨다. 이제 집에 계시는 시간이 많으니 집안일도 도와주실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아빠는 연세에 어울리지 않게 컴퓨터 능력이 뛰어나다. 50대부터 컴퓨터를 공부해 컴퓨터를 만들기도 하고 수리도 하실 정도로 능하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늘 컴퓨터 앞에만 앉아 계신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의 은퇴 이후 같은 공간에서 24시간을 보내며 매일 세 끼를 챙겨 드리고 계신다. 늘 삶이 그러셨다. 자기 의견 내세우는 법 없이 아빠가 하자는 대로 하고 사셨다. 첫 단추부터 잘못 낀 것 같다. 


엄마가 멍청이인 두 번째 이유는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헌신하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아프다. 2013년에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으셨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나는 그 때 돌도 안 된 아이를 맡기고 회사를 출근하고 있었다. 아빠는 아이를 봐 줄 수 없으니 회사를 관두고 아이를 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엄마가 말렸다. 본인은 3남 1녀, 막내 딸로 어려운 가정 형편에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오셨기에 공부에 대한 한이 많으셨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철이 든 이후 엄마 몫까지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에게 이제 어엿한 직장인으로 자리도 잡았는데 그만두지 말고 회사를 계속 다니라고 하셨다. 여자도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그것의 연장선이다. 아이는 봐줄 테니 걱정 말고 다니라고, 힘든 몸으로 또 한 번의 희생을 시작하셨다. 엄마의 희생으로 다니는 만큼 회사에서 크게 성공하고 싶어 진짜 열심히 했다. 


세 번째 이유는 아직도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계신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어릴 때 못한 공부를 하실 기회를 드리고 싶다. 여러 번 공부를 권했는데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신다. 아직 60대가 되어 보지 않았으니 그 나이에 공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잘 모르겠다. 중등고시, 고등고시 다 밟아 보시라고 권하는 게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공부가 아니라면 그림도 좋고, 음악도 좋으니 뭐든 하셨으면 하는 딸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는다. 


우리 집의 마스코트, 내 딸은 집에서 별명이 “똘똘이”이다. 우리 엄마 같은 멍청이를 만나서 나도 “똘똘이”로 살아왔고, 이제 나를 이어 우리 딸이 새로운 “똘똘이”가 되었다. 그럼 우리 엄마가 진짜 멍청이인가? 아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기롭고 현명한 사람이다. 단지 시대를 잘못 태어났고, 엄마를 멍청이로 만든 가족이 문제다.

어떻게 하면 우리 엄마도 본인 스스로 멍청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멍청이가 아니야’ 라고 아빠한테 대들 정도로 엄마가 스스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답을 못 찾았다. 


얼마 전 엄마에게 화를 많이 냈다. 지난 번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는데 왜 그만두지 못하게 말렸냐고 하면서. 난 다 큰 성인인데 왜 계속 인생의 중요 의사결정에 참견하시냐고 엄마 맘에 못을 박았다. 이후 죄송하다고 말씀을 못 드렸다. 그 결정도 결국 최종적으로 내가 한 것인데 누굴 탓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진짜 멍청이는 따로 있는데 애먼 착하신 엄마를 탓했으니 내가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엄마 몸에 이상증세가 보인다. 얼굴이 떨리셔서 병원 진료 예약을 해 놨다. 별일 아니었으면 한다. 내가 딸로서 잘한 건 2013년 당시 엄마의 이상 증세를 보면서 병원에 억지로 모시고 간 것이다. 이번에는 잘한 일이 아니었으면 한다. 그냥 내가 혼자 노심초사한 거였으면 좋겠다. 


다시 태어나면 내가 엄마이고, 우리 엄마가 딸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물론 나는 지금의 우리 엄마와는 다른 엄마일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껏 받은 사랑은 돌려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지금 이 생에서 엄마와 딸로서, 이제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엄마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멍청이가 아니라 똘똘이로 같이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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