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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Aug 20. 2024

10. 미술관에서의 오열


떠나기 전, 나는 아이슬란드에서만큼은 절대 조급하게 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설령 18일 동안 레이캬비크에만 머물다 해도 상관없었다. 마치 어항에 물고기를 조심스레 넣어두듯, 그곳에 나 자신을 가만히 놔둬 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과연 내가 흐물거려질지, 그러다 결국 해체될지, 혹은 또렷해질지, 아니면 한국에서와 똑같을지 스스로를 조용히 따라가 보겠다고 생각했다. 18일이라는 시간은 내 안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기에 턱없이 부족할 수도, 혹은 충분할 수도 있다. 여행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적절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나는 생각을 치워두었다.




어디나 그렇듯 관광객들이 이곳 레이캬비크에 오면 방문해야 명소가 있지만, 나는 일단 발길이 닿는 대로 가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박물관에 갔다.  The House of Collection. 구글에는 박물관이라고 되어 있지만 ‘Collection’이라는 표현대로 다양한 아이슬란드 작가들의 작품이 큐레이팅 된 이곳은, 이제는 미술관으로 변모한 오래된 건물이었다. 하얀 외벽이 고풍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박물관용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닌 만큼 내부는 아담했다. 1층에는 안내 데스크와 카페, 그리고 판매 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아직 이곳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데스크 직원으로부터 지하 1층에 겉옷을 걸어놓을 수 있는 장소가 있고, 4층부터 관람하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전시된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계단을 걸어갔다. 




1층과 달리 빛이 제거된 지하에 들어서니 몸도 마음도 멈칫했다. 이 건물 밖이 도로이고 도심의 한복판이라는 것은 이미 기억에서 완전히 잊혔다. 비밀스러운 공간에 홀로 있다는 의식이 나를 사로잡았고,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옷걸이에 점퍼를 걸고, 왼쪽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복도보다 훨씬 더 어두웠고, 벽면을 따라 작은 그림들이 띄엄띄엄 전시되어 있었다. 주로 1800년대 중 후반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제작된 작품들은 제작 시기와 아티스트 명, 작품 제목 외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관리가 안 되는 공간인지, 의도적인 연출인지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작품의 소재가 마법과 마녀에 대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낯설고 이국적인 그림들과 모든 소리가 배제된 지하의 어두운 공간이 자아내는 비밀스럽고 기묘한 분위기. 이 그림에서 저 그림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나도 모르게 “What’s this?”라고 골룸처럼 속삭였다.


                                        


아이슬란드 사가(Saga)는 중세 아이슬란드의 문학 장르로, 역사, 전설, 신화 등을 담고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9월부터 3월까지 일조량이 급감한다. 특히 태양이 지평선 위로 전혀 떠 오르지 않는 극야의 날이 지속될 때 아이슬란드인들은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눴으리라.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다시 그 자녀로 전해지는 이야기. 아이슬란드는 스토리텔링을 사랑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Look into my glowing eye, Gunna!』

내 눈부신 눈을 쳐다봐, Gunna!




문장으로 된 제목은 그림에 담긴 스토리 자체를 보여주어 흥미를 유발한다. 마녀의 말처럼 매혹적이면서도 파괴적인 상황이 초래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가 그림 속 장면으로 들어가든 그림 속 마녀가 밖으로 나오든, 한순간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은 무서운 기분에 사로잡히지만 시선은 그림에 붙들려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어둠이 두려웠지만, 이미 어둠 속으로 들어와 버렸고, 더 큰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멈출 수가 없었다.  




『Fly away, Magic Cloth』
  날아가라, 마법의 천아




뒷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떨치며 지하 1층에서 빠져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마법 같은 느낌은 계속되었다. 4층은 지하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각 층은 공기, 땅, 심장, 바다라는 각각의 주제로 다양한 아이슬란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4층은 목재 소재 옛날 집의 실내 공간과 예술 작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온화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완벽한 고요 속에서 나와 작품들만이 존재했다. 빙하의 극명한 변화를 담은 영상은 설명도 소리도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극적 몰입감을 주었다. 




나는 빛의 방향에 따라 달리 보이는 거울 앞에 서 보았다. 내 진짜 모습은 언제나 같았을까, 아니면 달라지고 있을까. 색이 바뀌고 있다면 어떤 색으로 바뀌고 있을까. 나는 스스로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사진을 찍으면 내 모습을 명확하게 알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연거푸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또 보았다.




미술관에 들어설 때는 구름이 잔뜩 낀 하늘과 지하 1층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신비롭고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는데, 3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전시실을 관람할 때는 창문을 통해 실내로 온전히 와 닿는 햇살이 너무나도 청량하여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되어 버렸다. 그 햇살에 심지어 화장실마저도 사랑스러웠다.




관람을 마치고 1층 출구를 열고 나오자 강렬한 햇살에 순간 멍해졌다. 한 편의 영화에 몰입했다가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 마주친 현실의 풍경에 머쓱해지듯 괜스레 뒤통수를 긁적긁적.  무안한 마음이 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몇 분 전 대성통곡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는 왜인지 그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그림의 제목을 확인한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균형.’




막대기 위에서 위태롭게 도는 바퀴들. 왠지 앞서가는 노란 바퀴는 조금 늙어 보이기도, 연약해 보이기도 했다. 다시 보니 이번에는 온화하고 강인해 보였다. 지금은 노란색이지만 언제라도 다른 색을 입혀 자신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 노란색 바퀴는 엄마, 그리고 하나로 엮여있는 나머지 바퀴들은 아이들일까. 그 생각과 함께 나와 아이들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그 바퀴들처럼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동그라미를 지탱하고 있는 곧게 뻗은 막대기에 눈길이 갔다. 자세히 보니 막대기가 여럿이었고, 그것은 일종의 안정망 같았다. 동그라미는 계속 굴러갈 거야. 서로의 속도를 맞추어 가면서. 균형감을 잃지 않을 거야. 봐, 막대기가 지탱해 주고 있잖아. 그러니 걱정 마. 나는 한참을 흑흑 거리며 울었다. 울고 있는 내 모습이 서러워 또 울었다.  




문을 닫고 나오니 미술관은 그 하얗고 말간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저 문을 다시 열면 또다시 마법 같은 순간이 펼쳐질까. 내가 처음으로 느낀 그 강렬한 인상과 몰입감은 무엇이었을까. 아이슬란드여서? 나 혼자여서? 때마침 날씨의 변화가 기가 막혔고, 이에 부응하듯 내 안의 작은 감각들이 되살아난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예술이라는 것은 어떤 작품과 그것을 바라보는 이 사이의 온전히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상호작용, 그뿐이지 않을까. 그러한 상호작용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다음에도 나 홀로 미술관을 탐방하는 황금 시간대를 노려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공간을 빠져 나왔다.


마법과도 같은 그 순간이 깨질까 봐 조심조심 뒷걸음질을 치면서.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는 한국의 절반 크기로, 인구는 서울의 60배 이상 적다. 다운타운에 주요 명소들이 밀집해 있어 도보로  손쉽게 여행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박물관부터 가보면 어떨까? 레이캬비크에 있는 아이슬란드 국립 박물관부터 먼저 가보기를 추천한다. 
기존에 연재를 완료한 '엄마 혼자 버스 타고 아이슬란드'의 수정 버젼입니다.
다시 읽고, 기억을 되새기며 다듬고 있습니다.
회차에 따라 지난 연재와 내용이 동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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