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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Nov 25. 2024

미스터리 아파트

아파트 



이상하리만큼 넓고 희뿌연 아파트 1층 로비였다. 건물 내부는 흰색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먼지가 쌓인 듯 탁하게 보였고, 오랫동안 방치된 느낌이었다. 그 황량한 공간은 오가는 사람 한 명 없이 건물 자체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파트인데 로비가 있네. 나는 텅 빈 중앙 홀을 보며 어디로 발걸음을 떼어야 할지 망설였다. 음산한 분위기에 발이 얼어붙었다. 



결국 걸음을 떼야했기에 나는 정면을 바라보며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내 왼편으로는 닫힌 현관문들이 죽 이어져 있었다. 어느 문 앞을 지나는데 마치 들여다보라는 듯 현관문이 맘껏 열려 있었다. 지나치며 힐끔 쳐다본 순간, 창백한 얼굴의 늙은 남자가 거실에서 현관을 향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것은 아니었지만 정면에서 시선을 맞춘 것 같은 섬뜩함이 엄습했다. 나는 몸서리를 치며 그쪽으로 다시는 시선이 가지 않도록 내 시선을 정면에 붙들고 놓고 빠르게 지나쳤다. 



음산한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 좌우의 낡은 벽은 페인트가 벗겨져 가루가 떨어지고 있었다. 벽면 여기저기에 휘갈겨 쓴 낙서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아파트를 비방하는 문구와 젊은이들이 분노를 토해낸 흔적 같았다. 우리 아파트 옆 동인데 이렇게 분위기가 다르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늘 깔끔하게 정돈된 우리 동의 모습이 떠올랐다. 꽃을 좋아하는 경비 아저씨가 사시사철 화사하게 꾸민 입구. 1층에 들어설 때 달콤한 향기에 걸음을 늦추곤 했는데. 그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에 경악하며, 나는 이 일을 남편한테 꼭 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림자 같이 무표정한 두 세 사람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들어선 순간, 이 엘리베이터를 타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직감이 들었다. 다급하게 몸을 돌렸지만 스르륵 문이 닫히고 있었다. 나는 문 열림 버튼을 찾아 허둥댔지만 버튼의 글자는 뿌옇게 뭉개져 있었고, 어떤 버튼도 제대로 눌리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어느 층엔가 멈춰 서고, 문이 열렸다. 



복도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나는 정면에 보이는 벤치에 다가가 앉았다. 그런데 인기척을 느껴 옆을 보니 벤치 끝에 앉아 있는 중년의 여자가 막 쓰러지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 일그러진 표정. 나는 당황한 채 여자를 끌어안았다. 조급한 마음과 달리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여기, 누가, 119 좀…” 간신히 말을 쥐어짰을 때, 놀랍게도 벤치 바로 옆 바닥에 쓰러진 다른 환자를 돌보던 소방관 두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나는 이곳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이곳이 주거지가 맞긴 하나? 주거지가 아니라면? 



다음 순간 내 시선은 내가 쓰고 있는 안경으로 옮겨갔다. 안경알의 앞 표면에서 뭔가 작은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벌인가? 말벌처럼 크진 않았고 흔한 벌 같았지만 어딘가 달랐다. 그것은 안경 너머로, 그러니까 내 얼굴로 혹은 눈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조용히 기회를 엿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내 신체에 닿는 것을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그 작은 존재가 그곳의 괴기스러운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0.2 센티미터 두께의 벽을 두고 나는 그것과 대치했다. 안경알에 간절하게 의지했다. 섣불리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것은 사라졌고, 놈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엘리베이터로 뛰어갔다. 여길 벗어나야 해. 1층으로 가야 해. 밖으로 나가야 해. 그러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야 나는 다시 한번 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엘리베이터는 나를 잘못된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문이 닫히고, 나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은 손가락으로 아무 버튼이나 힘겹게 눌러댔다. 층 표시가 흐릿하게 지워진 버튼들. 다행히 바로 아래층에서 멈췄고, 나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출구. 출구를 찾아야 해. 



하지만 한 층을 채 내려가기도 전에 나는 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계단이 막혀 있었다. 마치 거인이 시멘트로 쓱 발라놓은 듯, 내 앞을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다시 계단 위로 뛰어올라갔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던가 말았던가. 오늘 아침의 꿈은 그렇게 돌연 끊겼다. 차가운 적막감이 흐르던 텅 빈 중앙 홀의 기억만 생생했다. 이것은 현실 반영일까, 예지몽일가, 아니면 단순한 개꿈일까. 대단히 충격적인 장면은 없었지만 나는 홀리듯 이 꿈을 기록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꿈에서 본 것을 반드시 기록한다고 한다. 꿈속을 헤매던 그 순간, 나도 이걸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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