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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Nov 22. 2024

유료 글쓰기 수업에 대하여

그녀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작가이다. 유명 문학상도 수상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전업 작가들이 그렇듯, 그도 글쓰기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나는 지인의 소개로 그에 대해 알게 되었고, 우선 그의 책 한 권을 읽어 보았다. 꽤 괜찮았다. 글쓰기라는 목적성을 가진 책인데도 그 자체로 흥미로웠고, 내용은 탄탄했으며, 실제 배울 점도 많았다. 나는 그의 개인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그의 글쓰기 클래스가 궁금해졌다.



우연히 온라인 글방에 합류한 게 작년 여름. 이후 읽고 쓰는 자로서 설레고 신나던 날들은 1년이 지나자 안온함으로 수그러들더니 급기야 두세 달 전부터는 마치 수순처럼 시들해졌다. 그동안 글쓰기는 나의 삶에서 무엇보다 강력한 도파민이었는데, 이제 나는 쓰고자 하는 욕망이 흐릿해져 가는 것을 숨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약간의 좌절과 또 약간의 슬픈 마음이 교차했다. 완벽한 방관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나는 글방에 머물며 매일 글쓰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내 글은 몇 달 전까지 쓴 글과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생기를 잃었고, 그러자 더 이상 내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의 착각일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최근 몇 달 동안에 썼던 글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분량도 확연히 줄어 있었다. 그렇게 최소한의 시늉만 하며 몇 달이 흘렀고, 이제 새로운 도약과 도전이 필요해 보였다. 이만하면 기초 훈련은 된 것 같은데, 여기에 뭔가 지도가 주어진다면, 그러면 글쓰기에 날개까지는 아니어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10회에 **만원. 글쓰기 클래스에 대한 소개글을 열심히 읽어가던 나의 시선은 명시된 금액 앞에서 멈칫했다. 이름 있는 작가가 책을 선정해 주고, 글쓰기 지도까지 해주는 수업. 그의 피땀눈물과 노하우를 생각해 봤을 때 절대 얼토당토 한 금액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망설여졌다. 주머니야 늘 가벼웠고, 인색한 자아가 나를 찔렀다. 엄마인 내가 나 배우겠다고 이렇게 돈을 써도 되나? 어김없이 엄마라는 단어를 들이밀며 죄책감을 유발하는 식상한 패턴.



나는 잠시 망설이다 C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러저러한 수업이 있는데 대략적인 비용을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저는 글쓰기를 배우러 적이 없어서 가격을 몰라요.

아차 싶었다. 활자중독자이고 작가이며 편집자로 이 바닥에서 20년 넘게 활동 중인 베테랑에게 할 질문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뒤통수를 때렸다. 나는 서둘러 나의 무례함에 대해 사과했고 그녀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런 배우러 다닐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네?

  글쓰기 지도 책이 좋은 게 많이 나와있고요. 추후에 좋은 편집자를 만나 자신이 자주 하는 실수를 찾아서 고쳐 볼 기회도 있을 거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뭘 써야 할지를 생각하고, 그걸 깊고 의미 있게 해석해서 글로 풀어놓는 것, 그러한 노력이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쓰고, 그걸 읽고, 스스로 계속 수정해야 해요. 그러한 과정이 글쓰기가 제일 늘어요. 한 마디로 얘기해서 나에게 중요한 화두를 찾아서 들입다 파기!



그러면서 그는 내게 태권도 동작을 취하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웃음이 나왔다. 마음이 스르륵 녹았다. 그 이모티콘처럼 내 마음도 경쾌해졌고, 씩씩해졌다. 그리고 그녀가 한없이 고마웠다.

참으로 간사한 마음이었다. 내 상태가 부족하다고 느껴지자 나는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으려 들었다. 그러나 내가 놓친 것은 글쓰기의 '동기'였고, 그것은 외부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중요한 화두가 보이지 않을수록 나는 더더더 읽고, 쓰고, 계속 수정해 나갔어야 했다. 실상 누구나 알고 있는 비법인데, 나도 몰랐던 게 아닌데, 그걸 놓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대뜸 사교육을 찾았다. 본격적으로 글을 쓴 지 겨우 1년 6개월 만에 이제 기초는 이만하면 된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 이 땅의 모든 작가들이 배꼽 잡고 웃을 일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이 발표되기 전, 인터넷 서점에서 8주간 1위를 차지한 <빛이 이끄는 곳으로>의 백희성 작가. 현직 건축가인 그는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풀어냈다. 얼마 전 그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그가 쓴 첫 원고를 읽은 친구들은 반응은 "이런 쓰레기 같은 글로 책을 내려고 하는구나?"였다고 한다. 그는 300 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수정하는 대신 처음부터 다시 쓰는 방식으로 총 여덟 차례 글을 썼다고 한다. 지도자의 조언대로 좋은 소설들을 수차례 읽고 분석하는 작업 또한 선행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덟 번째 원고를 읽은 친구들은 "이제 되었다"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 권의 책을 위해 12년 동안 A버전에서 시작해 Z버전까지 총 열일곱 번의 글을 썼다고 한다. 그 또한 수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그 책이 바로 <개미>이다.  



는? 나는 아직 그 중요한 것을 찾지 못했고, 그러니 부단히 읽고 쓸 수밖에. 그럴 수밖에! 돈도 굳고 머리가 맑아져 기분이 좋아진 나는 책상 앞에 단정하게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제발 겸손해지자. 그리고 다시 나아가 보자.  




덧.

낯선 메일이 와 있었다. 그제야 작가님의 무료 뉴스레터를 구독해 둔 것이 생각났다. 습작생들을 위해 그가 작성한 자료들은 정성스러웠고 알차 보였다. 그의 글과 태도에서 연륜, 진심, 열의, 진지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갑자기 나는 미안해졌다. 그리고 슬그머니 다시 그의 수업이 듣고 싶어졌다. 언젠가? 그러나 결국은 나 스스로를 타이르고 구슬리며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안다. 내가 쓰고 싶은 그것을 찾아서 오늘도 멍 때리고, 기웃거리며, 끄적여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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