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딴짓 Nov 03. 2024

그건 니 생각

고맙지만 사양해도 될까요

사실 나는 많은 것이 불편해. 잘 모르는 사람은 불편해. 잘 아는 사람이지만 생일을 맞이했다면 그 사람도 불편해. 내가 뭔가를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사람뿐 아니라 사물도 불편해. 지우개도 불편하고 담배도 불편해. 버려야 하는 것을 꼭 남기잖아. 그리고 특정 단어도 불편해. 아까 네가 귀족이라는 단어도 불편했어. 귀족이라는 말을 들으면 소화가 안 돼.”

-       소설 ‘몸과 무경계 지대’에서



불편한 게 많은 삶은 얼마나 고달플까? 세상이 툭툭 던지는 폭력에 상처투성이가 되었을 인물을 생각하니 괜스레 서글퍼졌다. ‘불편하다’고 얘기했을 때 ‘유별나다’ 거나 ‘이상하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혹은 그 이상의 반응이 그에게 핵 펀치처럼 쏟아졌을 것을 생각하니 그랬다. 그럼에도 불편한 걸 불편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으므로.




‘사회생활’ 후 집에 온 나는 장기하의 노래를 틀었다.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야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내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ㅡ
니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ㅡ
걔네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ㅡ
아니면 니가 걔네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ㅡ
아니잖아 ㅡ 아니잖아 ㅡ 어? 어?
 
 

그냥 니 갈 길 가
이 사람 저 사람
이러쿵 저러쿵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해도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 가
 
  

미주알 고주알
친절히 설명을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해도
못 알아들으면 이렇게 말해버려
그건 니 생각이고 ㅡ
아니
그건 니 생각이고 ㅡ
 
 

알았어 알았어 뭔 말인지 알겠지마는
그건 니 생각이고 ㅡ
니 생각이고 ㅡ
니 생각이고 ㅡ
  



나는 그들의 질문에 다소곳이 응대했다. 그들의 조언에는, 내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듣는 사람이 응당 지어야 할 다소 불안하고, 조금은 침통하며, 심지어 패배자의 표정마저 담겨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애들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때 운동하잖아요. 저는 그때 글로 풀어요"라고 말했더라면 좀 더 친근했을까? 그러나 뭔가를 쓰는 행위는 단순한 육아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어느덧 내 삶의 가장 중심에 세우고 싶은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글쓰기의 의미를 수단화 시킨들 이해받지 못할 것도 알고 있었다. 약간의 호기심과 의아함, 거리감과 경계 그 어딘가의 애매한 시선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글쓰기가 전업도 아니면서, 자기 아이를 적극적으로 돌보지도 않으면서, 집에서 글을 끄적이고 있는 내 모습이 그들에게 어떻게 그려질지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마치 아까부터 거기 있어온 듯한 누군가가 내게 말을 툭 던졌다.



야, 연기하지 마.



나 자신이었다. 그러니까 솔직히 나는 그다지 상처받지 않았다. 나는 야무진 엄마가 아니고, 내 아이는 반듯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부족함이 타인에게 해로운 영향을 준 게 아니라면. 그렇다면 나도, 내 아이도 죄인이 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도 내 삶의 중심은 나 자신이다. 아이들이 아니다. 뭘 하든 그건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지, 애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나를 나무랄 수는 없다. 내가 당신들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듯이. 그러니 그들 앞에서 지었던 그 슬픈 표정, 감사의 미소는 연기였잖아. 그리고 연기하지 마. 별로야. 내가 말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었을까? 그저 자기 자식에 대해 잘 모르는 서툰 여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정도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말이다.


내가 그들과 친구로 지내면 좋을 거라고 그는 말한다. 그들은 마음이 열린, 친절하고 교양 있는 가족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더 이상 고독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어도 된다는 유혹. 하지만 나는 그 제안을 차갑게 거절할 수 있었다. 그가 꺼낸 가족이라는 어휘가 내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마음이 열린 친절한 시민계급 가족의 집을 방문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들과 친구 혹은 유사 가족이 되는 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계속해서 나를 동정한다면 나는 뮬강에 빠져 죽어버리겠노라고 했다.

- 배수아 <바우키스의 말> p38-39




문득 그런 자각. 큰 아이가 열일곱 살이라는 것. 잘 키웠건 못 키웠건 내겐 그만큼의 경험치가 있다. 그러니까, 쫄지 마!...... 다시 생각해 보았다. 열 일곱 해를 키웠다고 경험치가 더 깊고 넓은 건 아니잖아? 솔직히 내가 ‘키웠’냐? 햇수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걸 내세운다는 건 좀 없어 보이는데? 꼰대스러운 생각을 조심하라고. 아니 아니, 내세우자는 게 아니라 위축될 필요 없다고. 그래, 알겠어.



나는 이렇게 또 나 자신과 약간의 토킹을 나눠 보았다.



그나저나 장기하 노래 진짜 잘 만드는 듯.



작가의 이전글 2년 전 사라진 꽃다운 청년들의 부모들을 보았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