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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서

by 딴짓

조승리 작가는 호텔 마시지 사로 근무한다. 십 대 시절, 그녀는 의사로부터 시력이 10년 정도만 유지될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녀의 책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의 첫 장에는 택시를 타고 여의도 불꽃 축제 장소를 지나가는 일화가 그려져 있다. 불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펑펑 터지는 폭죽 소리는 그녀를 추억 속으로 소환시킨다.



시력을 완전히 잃기 전, 그녀는 한 자라도 더 눈에 글을 담고 싶은 마음에 학교에 가는 대신 도서관에서 눈이 시뻘게질 때까지 책을 읽었다. 이유는 달랐지만 학교를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았던 그녀의 친구는 별이 어떤 모양이냐고 묻는 그녀의 말을 기억하고는 어느 날 밤, 그녀를 불러내어 밤하늘에 폭죽을 쏜다. 희미한 시력으로 그녀는 친구가 선사한, 자신만을 위한 그 찬란한 별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MZ다운 담백하고 유쾌한 문체로 일상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숙연함과 고마움 등 다양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비장애인으로서 내가 평소 무심하게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되는 건 중요했다.

사실 책 제목을 보면서 어쩜 이리 맹랑할 만큼 솔직하고 당당할까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제목에 낚이는 건 아닐까 싶은 살짝 의심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리고 책을 다 읽었을 때 책 제목은 내게 진정성으로 인식되었다.




가끔 나는 내 삶의 지랄맞음에 대해 생각한다. 아, 작가의 삶과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럴 의도는 추호도 없다. 누구나 삶에는 지랄맞음이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아들이 며칠째 미용학원을 빼먹고, 공모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우리 아이만 잠수라는 학원 선생님의 메시지가 조심스러운 어투지만 빗발치는 와중에, 마치 가상의 공간에 격리된 듯 아들은 방에서 스무 시간째 자고 있고, 가끔 확인해 보면 살아는 있고 다만 신생아처럼 새근새근 자고 있는 거고, 형이 이것저것 다 제치는데 나도 나도 하면서 작은 녀석도 학원을 제친 오늘 같은 날. 너네가 하고 싶대서 보낸 건데 엄마 아빠가 돈이 넘쳐나서 학원비 대는 줄 아냐며 꽥 소리를 지르고 나온 날. 그런 셋(나 포함)이 죄다 마음에 안 들고 그냥 지랄맞다는 생각만 든 날.



노트북을 넣은 에코백을 둘러매고 나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집 앞 마트였다. 습관적으로 들어온 것이다. 휘휘 둘러보다가 오리고기 원플러스원에 오천 원 할인이라고 커다랗게 써 붙여져 있는 걸 발견했다. 딱 세 팩이 남아있었다. 이 가격이면 괜찮은데. 신김치에 들기름 둘러 볶아 먹으면 오늘 저녁 해결인데.



꾹꾹 눌리고 또 눌린 답답한 가슴. 그래서 박차고 나와서는 오리고기 두 팩을 사서 짊어지고 카페로 걸어가는데 이거 참. 돌연 오리고기를 패대기치고 싶고? 탄천 밑으로 하나씩 첨벙첨벙 던져 버리면 시원할 것도 같고?

후렌치파이 딸기맛을 다급하게 몇 개 뜯어먹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 어머니, 오늘 **이가 가족 행사로 못 온다고 문자가 왔어요.


아들 학원에서 온 문자를 쓱 쳐다보고는 스마트폰을 멀찍이 치워두었다. 오늘 내가 모르는 가족 행사가 있나?



이 지랄맞음이 쌓여서...

이 지랄맞음이 쌓여서.........

뒷 말은 완성을 못하겠다.

축제가 되겠지라는 말은 (오늘은) 못 하겠다.

그럴 때일수록 간절하게 내뱉어야 할 텐데.

이 지랄맞음이 쌓여서 뭐라도 되겠지.

되든 안되든 뭐 어떻게든.



오리고기 상하겠다. 집에 가야겠다.



조승리 작가님의 다음 책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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