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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부호로 보내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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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죽은 자를 보았다.

오늘 아침 10시. 전철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9시 반에 시작하는 강의 시간은 이미 지난 지 한참이었다. 7주째 억지로 듣고 있는 수업이었다.

터덜터덜 걷는다고 생각했다. 발걸음이 턱턱 걸린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턱턱 걸리는 것은 내 마음이려나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이 너덜너덜 해진 건가, 그렇게 머릿속으로 말장난을 치고 있었다.


허억ㅡ.

나는 보고 말았다.

내 몸이 그에게 다가가는데 벌써 마음이 떨려왔다.

언제 일어난 일일까. 이미 몸 안의 피가 다 빠져나간 듯 깡마른 일부분만 남아 있었다.

머리, 몸통, 팔이 깔끔하게 잘려 나가 혐오감 없는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기겁을 하면서 동시에 눈을 부릅떴다.



누굽니까.

누가 당신을 이토록 무심하게 대했습니까.

이렇게 두고 가버렸습니까.

당신은 병에 걸렸었을까요.

다시 살리기 위해 당신은 잘려야 했을까요.

얼마나 아팠습니까.

얼마나 아픕니까...


햇빛만이 고요히 그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죽은 제 새끼를 핥는 어미개처럼.

주변 나무들은 말없이 견디고 있었다.

그로부터 시선을 피할 수도, 일어나 도망칠 수도 없었기에.

나는 치밀한 나이테의 단면을 노려보았다.

죽음은 거짓말 같았다.

치열했던 삶이 여기 그대로 있지 않은가?



그러다 나는 나무 밑동을 보았다.

뭔가가 오종총하게 있었다.

노랗고 초록의 작은 것들. 풀과 꽃이 쪼로로 피어 있었다.

정성.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심은 작은 희망처럼.


다시 보았다.

그는 죽지 않았다.

한 번도 죽은 적이 없었다.

언제가 죽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땅 밖으로 드문드문 보이는 다리는, 뿌리는,

온전했다.



살아! 살아! 살아!

주변 나무들이, 꽃이, 풀이 다 같이 말하고 있었다.

잡아! 잡아! 잡아!

땅속의 친구 나무들이 내 뿌리를 잡고 버티라고 말하고 있었다.

고개를 푹 떨궜다.

붉어진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여름 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코를 훌쩍였다.



당신은 누구였습니까.

누구의 엄마였습니까.

제발요.

살아요. 살아요. 살아요.

마음속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영화 '기생충.'

반지하집의 주인(송강호 분)은 지하실에 숨어 살면서 전등을 깜빡여 모스부호로 신호를 보낸다.

나도 가끔 모스부호를 상상한다.

아들에 대해서 차마 쓰지 못한 글들.

공기 입자 속에 날려 보낸 이야기들.



(아들이 수학여행을 갔는데요...)

(아들에게 전화가 왔는데...)

(기습 가방 검사가 있었는데...)

(아이 서랍을 열어봤는데...)

(어제 아침에도 아이가 못 일어났는데...)

(오늘 아침 8시 반이 넘었는데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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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작지만 큰 분노를 담은 빛

작지만 큰 슬픔을 담은 빛

작지만 큰 좌절을 담은 빛



보여요?

보이죠?

아시죠?

어머니......



살아주세요.

살아내 주세요.



그에게 빛을 주세요.

손을 잡아 주세요.

내 에너지도 가져가세요.





나는 다시 전철역으로 걷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호를 생각했다.

살아. 살아 있어. 너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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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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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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