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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Feb 17. 2024

서동미로시장으로 오세요

bts지민의 고향이자 내 마음의 고향 서동미로시장

갈맷길 8-1 코스를 반만 돌아보고 왔다.

그냥 가기는 아쉽게 느껴졌다.

마침 시간이 점심시간이 좀 지난 시간이라 허기를 채워야 했다.

서동미로시장 도착 2.4km 전

평소보다 많이 걸었음에도 지치지 않았다.

날이 좋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오랜만에 추억의 음식을 먹을 생각에 설레기도 했고.

내 생각엔 후자에 더 힘을 실어줘야 할 것 같긴 하지만 기분 탓이다.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걸어가다가 익숙한 노란 천막의 김밥 전문점 앞에 발걸음이 멈춰버렸다.

생활의 달인에도 출연하고 여러 맛집 영상에도 출연한 간판 없는 김밥 맛집.

친절과 맛이 반비례하다면 이 가게는 정말 맛집인 가게.

위치 찾다보니 나오는 동원분식이라는 김밥 전문점

가게이름이 존재했다는 것이 놀랍다.

역시 사람은 본인이 아는 것만 본다. 나 역시도 그러하다.

테이블이 5개 있는 아주 작은 가게이다.

들어가자마자 당차게 "김밥 2줄 포장이요."라고 크게 외쳤지만 답은 없다.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뒷사람이 들어와서 "김밥 포장 4줄이요."라고 외치자 슬슬 김밥 쌀 준비를 하신다.

당혹스럽지만 애써 덤덤히 서있었다.

이 집은 예전에도, 옛날에도 이랬다.

그래도 찾아가는 건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김밥맛이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 이 김밥을 먹으러 오는 것은 수고스러운 일이라 추천할 만한 김밥은 아니지만, 이곳에 볼일이 있을 때 와서 먹어보면 썩 괜찮은 집이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추천한다.

동원분식 김밥은 맛있다.

(김밥 한 줄 3천 원)

재료가 옹골차다.

계란, 단무지, 햄, 맛살, 오이, 당근 우엉, 그 외 재료가 다채롭게 있는데 조화롭고 간이 딱 적당하다.

그리고 그냥 맛있다.

그냥 여기 오면 드세요.

동원분식 메뉴판

테이블에서 식사하시는 분들 만석이었는데, 모든 테이블에 김밥과 함께 있는 것은 떡국이었습니다.

홀에서 드시고 가시면 떡국도 드세요. 참기름 냄새에 절로 침이 고입니다. 사실 제가 그랬습니다.

두 분이서 운영하고 계신데, 다만 친절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그냥 주문하고 음식 받고 테이블에서 드세요. 포장해서 드세요. 먹을 때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포장한 김밥을 들고 나올 때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룰루랄라 걷다 보니 곧 도착할 수 있었다.

서동미로시장에 가면 제일 먼저 사야 하는 것이 있다.

갔을 때 매대에 전시되어 있다면 바로 사야 한다. 그냥 사야 한다. 나중에 사야지 하고 돌아보고 없으면 못 사는 것이다.

온천어묵이라는 상호명이 있었다.

늘 가는 단골집이라 장소만 기억하고 사진 찍으려고 보니 간판이 있어서 굉장히 신기했다.

농협 바로 옆 골목의 입구로 가면 만날 수 있는 어묵집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 집 어묵을 먹고 자랐다.

그래서 나는 이 어묵의 특별한 맛을 몰랐다.

많이 사서 냉동실에 재놓고 필요할 때 요리해 먹어서 잘 몰랐는데, 하필 어묵이 똑 떨어져서 마트에서 사 먹었을 때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왜 사람들이 부산어묵, 부산어묵 하는지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 부산어묵에 익숙해져 다른 어묵은 먹지 못 하는 병에 걸린 것이다.

맛있어요. 그냥 보면 사세요. 잘 팔리는 집은 이유가 있어요.

그리고 그다음에 꼭 들러야 하는 죽집으로 갔다.

서동미로시장 안에서 제일 맛있는 죽집

원조죽집이 이 집 이름이었다. 원조가 맞다.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갔던 집이니까, 40년도 더 되었을 것이다.

오늘 가보니 따님께서 죽을 퍼주셨다.

남편분께서 죽을 쑤시고 부인분께서 죽을 파는 가게였는데, 어느새 따님분께서 하고 계셨다.

그만큼 오래된 원조 죽집이다.

그리고 그 40년간 맛의 변화가 없는 찐 맛집이다.

원조죽집의 호박죽

이 질감, 이 농도, 적당한 식감의 호박과 콩과 새알.(한 통에 5천원)

나는 이 호박죽이 아니면 먹을 수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맛보았던 호박죽이 이 호박죽이었기 때문에 이 호박죽이 나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웬만해선 다른 호박죽은 입에 대질 않는다.

그리고 두 통을 사서 한 통을 다 먹어버렸지. 그것은 생각한 대로 절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늘 김밥, 어묵, 호박죽을 포장만 이유는 오로지 맛나 분식에서 계란만두를 먹기 위해서였다.

BTS지민 군도 어렸을 때 참 맛있게 먹었다고 했지만, 아마 나도 그 시절. 그 옆에서 접시에 코 박고 계란만두를 먹는 주변인이었을 수도 있었을 만큼 자주 가서 먹었다.

신기하게 이 집에서만 그 맛이 났다. 집에서 해 먹으면 그 맛이 나질 않았다.

특히 떡볶이 국물을 양념이라고 계란만두 위에 부어주셨는데, 그 맛이 그때는 그렇게 좋았더랬다.

그래서 오늘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고, 많이 걸었음에도 지치지 않았고, 먹을 게 많았음에도 빈 속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서동미로시장 오늘의 맛나분식

처음 보았다.

맛나 분식이 문 닫은 거 오늘 처음 봤다.

그리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너무 강렬하게 원하다 보니 그게 욕심이었다는 걸 이렇게 눈앞으로 확인하다니.

이미 두 손 무겁게 먹을 식품을 샀으니까 적당히 하고 돌아가라는.

미적거릴 것 없이 바로 발길을 돌렸다.

나에게는 다른 1, 2, 3번째 선택지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사온 모든 음식들을 골고루 맛나게 먹었다.

오늘의 나는 행복한 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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