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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Feb 21. 2024

비가 오면 나는 부산 빵투어를 가지

버스 타고 떠나는 맛있는 빵을 위한 여정

이번주는 목요일까지 비가 예정되어 있다.

마구마구 돌아다니고 싶은 내 열정에 빗물을 투둑투둑 떨어뜨려 조금은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위로해 준다.

천천히 가더라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급할 것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비가 오면 또 좋은 일이 있지 아니한가.

평소에 사람들이 가득해서 고민했던 곳들도 갈 수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나를 위한 거라 생각하면 더욱이 너그러워진다.

오늘의 내가 그러하다.

그래서 오늘은 큰 백팩을 메고 집을 나섰다.

비가 오는 차창 밖의 풍경은 운치가 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가 서원시장에 차가 섰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그냥 내려버렸다.

내 마음이 나에게 외쳤다.

꿀빵 꿀빵 꿀빵

그리고 나는 재빨리 꿀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옛날 그 빵집의 전경과 빵들

이렇게 줄 서 있는 빵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 많은 빵 중에서 나는 오로지 하나만 샀다.

사실은 뻥이다.

꿀빵만 다섯 개를 사버렸다.(꿀빵 하나천 원)

사실 도착 전에 마음속으로 3개 사야지 했지만 5개 사버렸다.

소중히 봉지를 꽉 메고 미리 준비한 백팩에 안전히 모셔놓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것은 참 설레는 일이다.

빵을 사고 나오는데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내려서 당황했지만, 바로 앞 아이스크림가게의 차양막에서 잠시 비를 피했다. 잠깐 실례했습니다. 저에게 자리를 내어주셔서 다행히 비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는 금방 왔고 다음 코스로 쉼 없이 달렸다.

이제부터는 엄마를 위한 빵투어다.

빵을 좋아하지만 여러 첨가제가 들어가면 알레르기처럼 얼굴이 빨개지고 두드러기가 나서 엄마가 참 힘들어하신다. 그래서 첨가제가 덜 들어가거나 보다 순한, 건강한 빵을 찾아간다.

이 정도의 버스투어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간단하지만 소박한 빵이 주는 행복을 나누어 주는 일은 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그리도 도착한 이 가게


범천동에 위치한 덕선제과

이 집 빵은 방부제와 첨가제가 덜 들어가서 빵을 배불리 먹어도 속이 편하고 재료 자체가 주는 슴슴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빵집이다.

역시 날이 좋을 때도 계단 올라가기가 힘든데 비가 오니 더 힘들다.

우산까지 들고 있어서 손잡이 잡고 올라가기가 상그러웠다.

하지만 잠깐의 고생 다음의 보상을 알고 있기에 조심조심 신중하게 계단을 오르고 가게로 금방 들어간다.

덕선제과에 있는 모든 빵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빵집이다.

다 재료 본연의 맛을 지키는 정직한 빵들이다.

하지만 나는 오로지 하나만 선택한다.

여기서 진짜 광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완두 소보로빵 5개.(완두 소보로 사천 원)

묵직하니 나의 백팩 안에 소중한 보물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오랜만에 덕선제과에 좌석하여 빵을 드시는 사람이 없어서 사진을 찍었다.

덕선제과의 테이블은 3개 입니다.

다음에 누군가 나를 찾아온다면 데리고 와서 빵을 먹으면서 소담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 작은 공간이다.

소꿉장난 같이 재밌을 것 같다.

저번주에는 오후에 출발을 했더니 완두 소보로가 다 나가서 좀 많이 슬펐다.

혹여나 완두 소보로를 드시고 싶은 분들이 계시면 오전에 출발하세요.

그날은 내 마음이 조금은 씁쓸했어요.

그리고 나는 다음 행선지를 향해 또 달렸다.

이번에는 처음 가는 곳이었다.

부산역 근처에 위치한 베이크백

덕선제과에서 가는 버스를 타니 조금 먼 곳에 내려서 가게 되었다.

사실 처음 가는 길이라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서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렸다.

그래도 정류장 사이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그 덕에 부산을 내려다보는 경치를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그리고 빵집으로 가는 길이 이야기길의 초입에서 골목길로 돌아 돌아가는 코스였는데 이게 재밌었다.

이바구길 초입에서 168계단과 거울벽

나는 단지 빵집을 가고 있을 뿐인데, 분위기 있는 산책길을 걷는 기분을 물씬 느꼈다.

조금 아쉬운 점은 비바람이 불고 있어서 발만 보고 내려갔지만, 날이 좋다면 충분히 내려다보는 경치를 즐기면서 갈 수 있는 예쁜 길이었다.

특히 앞에 거울 벽면에서 사진을 다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 여럿이 와도 예쁜 사진을 찍고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부산역에 바로 내려서 왔다면 몰랐을 길이다.

다음에 날 좋을 때 또 와야겠다.

그렇게 기분 좋게 당도했다.

베이크백 3층건물의 위엄

두둥. 빵집으로 이루어진 건물을 보니 마음이 웅장해진다.

그리고 이 집은 단일 메뉴다.

오로지 모찌빵

베이크백 전체 메뉴

모찌빵은 전부 3500원이다.

그중에 나는 베스트 메뉴인 플레인, 캐러멜호두, 호구마와 레몬커드를 구매했다.

2층에는 앉아서 먹을 공간도 있었다.

이미 사람이 많고 나는 애초에 포장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후딱 사서 나왔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줄 서서 먹으면 기대감이 고조돼서 상상 이상의 맛의 퀄리티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다행히 오늘은 비가 와서 평소보다 사람이 적었기에 나는 대기 없이 빵들을 금방 살 수 있었다.

베이크백은 처음이라서 여러 종류의 빵을 샀지만 다음에 올 때는 또 한 종류만 사겠지.

왠지 인기 많은 가게에서 한 메뉴만 여러 개 사면 기분이 좋다.

나는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뚱뚱해진 백팩을 메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의 수확물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지는 조합이다.

심지어 이걸 다 먹으면 배가 남산만 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자제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래서 재빨리 소분을 시켰다. 빠른 몸놀림이 빠른 시식을 가능케 하는 법이다.

꿀빵과 완두 소보로빵, 레몬커드모찌와 호구마모찌

이렇게 훌륭할 수가 없다.

꿀빵의 식감은 정말 훌륭하다.

바삭한 설탕코팅을 베어 물면 적당히 튀겨진 꽈배기 질감의 빵과 팥의 조화, 씹다 보면 느껴지는 견과류의 고소함이 식욕을 한 껏 끌어올린다.

완두 소보로는 고소한 소보로의 향에 마음이 녹고, 완두의 달달함에 마음 단전에서부터의 즐거움이 솟아오른다.

모찌빵은 특유의 쫄깃함에 놀라고 크림치즈의 부드러움과 적당한 산미에 입가에 침이 고이다가 간혹 씹히는 레몬필이 아삭아삭 씹는 재미를 더해준다.

특히 호구마 모찌는 단호박의 향긋한 향과 구황작물이 주는 고소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적으로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건강한 맛을 내뿜고 있었다.

엄마도 만족하고 나도 만족하는 훌륭한 빵투어였다.

부산에 이렇게 맛있는 곳이 많이서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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