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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Feb 26. 2024

부산을 무작정 걷고 싶을 때

바다를 보며 걸어가는 부산 초보의 해파랑길

주말 내도록 감기를 앓았다.

빨리 낫기 위해 몸을 꽁꽁 사매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약을 먹고 밥을 든든히 챙겨 먹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보살필 때 더 가치가 드높아진다.

드디어 좀 돌아다닐만해졌다.

그리고 어리석은 한 인간은 오늘 무작정 길을 나서기로 했다.

완전히 무작정은 아니고.

오늘의 도전은 많이 걷기.

심심하지 않게 많이 걷기.

부산에서 걷는 여행을 한다면 좋은 길이 하나 있지.

그렇게 선택하게 된

해파랑길의 시작점 오륙도 도착

지난주는 내내 흐리고 비가 왔다.

그리고 오늘은 날이 맑았다.

하늘이 맑으니 바다까지 푸르러 보였다.

겨울 끝자락의 오륙도는 청청하고 기운찼다.

그 강렬함에 온몸이 휘둘렸다.

오륙도의 바람에 흠뻑 취하시길

모자 달린 후드를 잘 챙겨 입고 갔다. 모자마저 없었다면 시작부터 바람에 질뻔했다.

바로 마주한 바다는 이곳이 지금 어딘지 나는 누구인지 모든 걸 잊게 하는 멋진 뷰였다.

항상 올 때마다 반하는 바다다.

특히나 바람에 늘 혼쭐이 나면서도 또 혼나고 싶은 강렬한 바람이다.

코리아둘레길 안내도 - 해파랑길 1코스 걷기

나는 오늘 해파랑길 1코스를 걷기로 했다.

총 17km. 예상 소요시간 6시간.

아침 먹고 바로 출발했음에도 오륙도에 11시에 도착했다.

해운대에 도착하면 안 쉬고 가도 5시라니. 시작부터 굉장히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준비해 간 피크닉 사과맛을 마시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마음의 긴장을 눌러주는 것은 액상과당의 당분이 큰 몫을 한다.

준비를 마치고 11시 20분. 나는 그렇게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물론 힘들면 중간에 가야지 하는 생각을 분명히 하고 출발했다.

해파랑길 1의 시작. 길 바로 옆은 멋진 바다다.

오르막을 오르면 바로 계단이 마주한다.

역시 트레킹의 길의 시작은 끝없는 오르막이다.

하지만 이 길은 아주 매력적인 해파랑길이다.

하늘과 맞닿은 바다의 절경에 눈을 뗄 수 없다.

아 힘들다 하고 고개를 들면 보이는 하늘이 정말 멋져 넋을 잃는다.

특히나 오늘은 비행운까지 있어서 마치 저 하늘길이 하늘에서 누군가 노니는 길인 듯한 기분마저 든다.

해파랑길 1 코스 우리가 트레킹을 하는 이유

오랜만의 맑은 하늘에 트레킹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산 길은 좁아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길을 내어주고 인사하고 제갈길을 가는 아름다운 문화를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사람이 없는 구간을 운 좋게 걷다가 옆을 보면 시원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좋은 건 또 보고 같이 보고 즐기는 거라고 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풍광에 힘들 줄 모르고 열심히 걸었다.

오륙도에서 이기대로 가는 트레킹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산길은 거칠고 계단은 가파르다.

앞만 보고 열심히 가다 보니 광안대교가 눈에 보였다.

훗. 광안대교 앞에 광안리가 있으니까.

생각보다 쉽겠는데. 힘들이지 않고 금방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시각이 고작 오후 12시 24분이다.

고작 1시간 걷고 쉽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참고로 나는 해운대 해수욕장까지 가까스로 당도했고 도착시간은 오후 4시 정각이었다.

12시 24분의 나는 완전한 애송이였다. 그대여 겸손하여야 합니다.

오륙도에서 이기대 도착기점 어울마당 50m전

해파랑길 1 시작지점에서 1시간가량 걸으면 화장실을 만날 수 있다.

별로 치안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들어가자마자 범죄가 일어날 시 경찰이 바로 출동할 수 있다는 알람이 계속 울렸다. 여기서 범죄가 일어나면 안 될 것 같다. 범죄자가 크게 혼날 것 같이 알람이 계속 울렸다.

오륙도에서 이기대까지의 트레킹 길은 적당히 땀을 내면서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가볍게 걷기에는 이 길도 좋은 것 같다.

데이트를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이기대에서 제일 유명한 팥죽과 팥빙수를 먹고 다음 여정을 가는 것도 썩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 진짜 달고 시원하고 맛있어요.

기교 없이 맛있는 집.

하지만 나는 갈길이 멀기 때문에 팥죽과 팥빙수를 포기하고 계속 앞으로 전진을 했다.

구름다리와 이기대 동생말 전망대

구름다리는 튼튼한 골조로 만들어진 다리지만 절벽을 가로지르는 풍경과 강렬한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 것 또한 별거 아닌 것. 그렇게 걷고 걷고 또 걸으면 트레킹 구간이 끝나고 도로가 나타난다.

해파랑길 1 코스 갈맷길과 함께 갑니다.

심각한 길치는 이 길이 맞는지 당황하고 다급히 맵을 켰다가 길도 못 찾고 방황하다가 가까스로 찾은 안내판.

이렇게 안내판이 곳곳에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고마워요.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제 길로 잘 갈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광안리 해수욕장의 끝, 삼익비치의 입구에 위치한 수영구 공영자전거 무료 대여소

신분증만 제출하면 당일 2시간 대여가 가능하다.

나는 힘들게 걸어왔는데 이렇게 좋은 것이 있다니.

다음에는 걷기 말고 여기 와서 자전거를 대여해서 삼익비치를 즐기러 와야겠다.

삼익비치의 벚꽃은 정말 흐드러지게 펴서 보면 기분이 참 좋아지거든요.

그렇게 또 여기 올 이유를 만들어버렸다.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광안대교와 삼익비치

여기까지가 좋았던 것 같다.

벤치에 앉아서 10분 정도 쉬었다.

지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래서 그 10분을 고민했다.

그래도 나는 여기까지 걸어오지 않았는가.

지금 시각 2시 24분. 3시간을 걸었다. 이제 슬슬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가면 해운대를 만날 수 있다.

그 아쉬움이 나를 더 망설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일어서서 나는 다시 앞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나는 적극 추천한다.

독한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오륙도에서 광안리 해수욕장까지 걷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즐기며 걷기에는 참 좋은 거리와 코스다.

그렇게 나는 조금 무리를 해서 민락수변공원을 향해 걸어갔다.

수변공원 들어가는 길과 수변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태풍매미 때 자리잡은 바위

나는 태풍매미를 기억한다.

기차 타고 가다가 태풍매미를 만나 화명기차역에 갇혀서 아파트들이 차례로 정전되는 것을 기차 안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나는 기억의 한 자락을 또 꺼내볼 수 있었다.

내 마음속의 서랍을 이렇게 불현듯 꺼내볼 수 있는 것도 참 좋다.

갈맷길 안내판과 해파랑길 안내표는 좋은 안내자다.

이 길은 광안대교와 함께 한다.

이기대에서부터는 광안대교가 내 목표인 듯이 전진하다가 광안대교 입구를 지나고, 광안대교 옆모습을 보면서 걷다 보면 해운대를 만날 수 있다.

이때 걸을 때는 내가 걷는다는 생각 없이 머리가 이끄는 대로 몸이 끌려가는 느낌으로 걸었다.

조금은 무리했지만, 그래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나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막대사탕을 입에 물렸다.

단 것을 먹으니 다시 활력이 솟는다.

하늘과 바다가 나를 반기고 있지 아니한가.

그리고 지금 포기하기에는 고지가 코앞에 있다. 나그네여. 힘을 더 내시게나.

해운대 표석과 해운대 전경

그렇게 나는 달성하고 말았다.

몸은 지치는데 정신이 한없이 맑아진다.

성취감이란 이런 것일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 자신 스스로가 만족하는 것.

그리고 도착시간 정각 4시. 총 소요시간 4시간 40분.

예상보다 1시간 앞당겨진 이유는 식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운동할 때는 중간에 식사를 하지 않는다. 다하고 먹어야 개운하다.

고약한 성질머리는 소화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하던 일을 다 끝내야 직성이 풀린다.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얼른 집에 가고 싶기도 하고.

앉아서 쉴 겨를이 없이 바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오고 가는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내 발걸음은 고되었지만,

오늘도 내 몸과 마음은 어제보다 더 건강해졌을 것이다.

마음이 몸을 다독인 하루.

내가 나를 위로하는 참신한 걷는 여행이었다.

오늘 고생한 몸을 위해 오랜만에 반신욕을 했다.

오랜 걷기로 쌓인 피로는 내가 풀어줘야지.

그리고 오늘은 꿀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모두 같이 꿀잠 자는 멋진 밤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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