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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Feb 23. 2024

타의적 가내수공업자의 하루

나는 이 파우치를 내 것만 만들 예정이었다.

이번주는 내내 날이 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실비실거리며 밖을 쏘다녔고,

예상하는 바와 같이 감기에 걸려버렸다.

어제 그네도 타지 않았는데,

이럴 거면 그냥 그네 탈걸 그랬다.

약을 먹고 앉아있으니 마냥 좀이 쑤신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나는 일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가방에 넣고 다닐 파우치를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천이 넉넉해서 만들 때 여러 개를 만들어 놓았다.

쿠팡에서 구입한 원단으로 만들었는데 특가로 구매를 해서 좋은 천을 저렴하게 구매해서 기분 좋게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분명 8개가량 만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하나도 없다.

생각보다 만든 품새가 괜찮았는지, 평소에는 내가 만든 것에 관심이 없던 엄마가 탐을 냈다.

평소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 욕심을 내면 당황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내 것을 다 내주어버렸다.

그런데 엄마는 좋다고 자기가 가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준 것이다.

좋은 게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마음은 참 좋은 마음이다.

그러나 그걸 받는 사람은 좋지, 왜 나는 다 주어야 하는가.

특히나 좋은 원단이라 다음을 위해 넉넉히 만들어 놓은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아서 마음이 힘들었다.

그래서 아예 새로 천을 주문했다.

이전보다는 얇지만 이제 곧 날이 풀리면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원단으로 구매를 했다.

이왕에 줄 거면 기분 좋게 주자 하는 마음으로 다시 파우치를 만들기로 했다.

아파서 못 나가는데 집에서 오늘 이걸 만들면 좋겠다는 빠른 판단이 빠른 시작에 한몫을 했다.

천 재단하기. 나는 재단이 가장 힘들고 귀찮고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시작이 가장 힘들다.

가방이든, 파우치든, 지갑이든.

뭐든 만들어내려고 할 때 재단이 가장 힘들다.

가장 기초적이고 계산이 정확해야 하는 과정이다.

일단 재단부터 시작하면 그 일은 50%의 과정을 해온 거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모든 과정 중에서 재단이 가장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사실 이것만 해놓고 좀 쉬다가 다시 했다.

벌써 반은 하지 않았는가.

파우치만들기 - 끈 들어갈 부분 만들기

바느질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시침질을 제외하고 본딩을 하고 바느질을 한다.

교과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은 생활에 필요한 과정들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중학교 기술가정시간에 배운 바느질을 지금껏 잘 써먹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팔토시 만들기 해서 A+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수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기 때문에 더 정성 들여 보이지만, 땀을 여러 번 넣고 하는 바느질이라 그렇게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것이 나만의 노하우.

손재주 없는 엄마가, 손재주 많은 나를 낳아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다 시켜보았기 때문에 웬만한 건 다 하는 내가 조금은 눈물겹다.

그동안 십자수, 직접 뜬 목도리, 가죽카드지갑, 가방. 다 어디로 갔는지.

베풀기 좋아하는 엄마를 곁에 두면 짐이 많이 없어서 참 좋다.

그러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결과도 중시하지만 과정을 더 중시하는 내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런 것도 양육의 한 방법인가.

무서운 엄마이다.

결국 나는 이번 파우치 만들기를 엄마를 위해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누군가가 이것으로 인해 행복해진다면 그것 만으로 또 좋은 게 있을까.

파우치 만들기 - 양 쪽을 본딩 후 바느질하기

다음 과정은 더 간단하다.

바느질 모양이 안 보이게 뒷면으로 양면을 본딩 한 후 바느질 하면 이 파우치는 90% 완성한 것이다.

근데 이때 주의해야 한다.

이 과정만 하면 끝이라고 긴장의 끈을 금방 놓기 십상이다.

결국 바늘에 찔리고 말았다.

그러나 괜찮다.

늘 바늘에 찔리기 때문에 파상풍주사를 미리 맞았기 때문이다.

파상풍의 무서움을 나는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기도 전에 알아버렸다.

고등학생 시절, 그 당시 존재했던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빠지기 위해 담임 선생님에게 체해서 집에 가겠다고 말을 했다.

그러나 그녀가 핀을 들고 체했을 때는 따야 한다고, 내 손가락에 핀을 찔러 피를 내었을 때.

그날 피를 보고 나는 야간자율학습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다음 날부터는 강제로 야간자율학습을 갈 수 없었다.

파상풍에 걸려서 손가락이 엄청나게 크게 부은 것이다.

병원 가서 감염된 부분을 칼로 찢어서 고름을 짜낼 때의 고통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나의 야간자율학습은 오로지 나의 기분에 달린 일이 되어버렸지만.

("선생님 때문에 파상풍 걸렸어요."의 내 말에 선생님은 나에게 자유를 주셨다.)

파상풍은 무시무시한 병이다.

혹여나 시간적 여유나 재무적으로 조금의 여유가 있는 분이시라면 파상풍 주사 꼭 맞으시라.

언제 어디서 찔리거나 베일수 있을지는. 예측불가능한 일이니까.

파우치 만들기 - 뒤집기

이 과정만 하면 99% 다 끝났다.

하지만 1%가 완성되지 않으면 그것은 파우치가 아니다.

끈을 넣어서 조이면 예쁜 파우치 완성.

이 과정은 간단해서 유튜브 영상 틀어놓고 여유롭게 해 버렸다.

간단하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 만들고 보니까.

파우치 만들기 - 완성본

8개나 만들어버렸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좀 억울했나 보다 내가.

만든 품삯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좋은 천인데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냥 준 것이.

막 선물 할 때는 부담 없고, 내가 줘도 아깝지 않은 것을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좋은 수제 파우치가 아닌가.

그렇게 나는 또 파우치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얌전히 집에서 엄마를 기다린다.

완성된 파우치를 보고 또 좋아하겠지.

"아 좋다, 하면서 누구를 주지."라고 말하겠지.

그리고 나는 못 이기는 척 "아 또 뺏기는군."이라고 포장을 해서 엄마 손에 쥐어주겠지.

환상의 콤비다.

그렇게 오늘 나의 하루는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해 보내는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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