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맷길 1 임랑에서 일광까지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임랑해수욕장으로 도착했다.
예전에 한 번 가봤던 길이라 쉽게 찾아올 수 있었다.
갈맷길의 시작은 바로 여기다.
다듬어진 해안길을 걸으면 기분이 좋다.
아직까지 새해의 기운이 이어지는 것 같다.
걸으면서 새롭게 시작한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하면서 걷기로 했다.
그러나 생각을 하기엔 날이 좋고 풍경이 몹시 좋았다.
해안드라이브를 즐기는 차들이 옆을 쌩쌩 지나다니고 있다.
아는 길로 가려니 새로운 안내판이 등장했다.
2년 전에 왔을 때도 허술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안전한 길로 우회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가지 못하게 막혀있지는 않았다.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이전 길로 갈 것 같은데 나는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는다.
왜 굳이 위험한 길로 가려고 하는가.
이 길은 해안길이고 생각보다 바다 가까이에서는 바람이 많이 분다.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안전한 우회길로 걸어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회하는 길은 조금 위험하다.
애초에 해안 드라이브코스로 만들어진 길이라 따로 인도가 없기 때문에 실선 안 쪽으로 안전하게 걸어가야 한다.
오전이라 차도에 지나가는 차량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다행인 하루라고 생각했다.
역시 좋은 마음에 시작하는 일은 좋은 일을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눈앞에는 믿기 힘든 경이로운 경치가 펼쳐져 있었다.
도심을 보는 여행도 좋지만 평화로운 바다를 보며 걷는 도보여행도 꽤나 추천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갈맷길이라고 부산시에서 만들어진 산책길이기 때문에 곳곳에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성인 어른 속도로 쉬엄쉬엄 걸어도 15분가량 사이사이에 화장실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그것이 참 좋다.
임랑해수욕장에서 일광해수욕장으로 걸어가는 길은 퍽 아름답다.
가끔 차를 타고 지나다니면서 보았던 그곳에 홀린 듯이 섰다.
200m 정도면 가볍게 갈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호기롭게 걸어갔는데...
200m가 온전히 오르막길이었다.
평지만 걷다가 오르막길이 계속되니까 숨이 거칠어졌다.
중간에 한 번 쉬었다가 부지런히 올라가니 개 짖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작은 암자가 있었다.
관광객이 갈만한 절은 아니었다.
위치는 참 좋았다. 조용하게 다녀가기에는 좋을 듯하다.
외부인의 침입에 제 일을 열심히 하는 강아지 두 마리에게 인사 한번 하고,
스님들의 사리를 봉인한 석탑이 있었다.
내 새해 소망을 담아 소원을 빌고 조용히 내려왔다.
호기심을 해결한 나에게 칭찬의 쓰다듬을 해줬다.
이제부터 나오는 길이 참 좋다.
바다가 보이는 길인데 높다란 나무들이 강한 햇살을 가려준다.
이 좋은 자리를 많은 텐트족들이 침범하는 중에 있었다.
쓰레기나 잘 치우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텐트에서 나와 불법 쓰레기 투기하려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부디 업을 저지르지 말고 순리대로 잘 행동하길.
이쯤 걸으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반 정도 온 셈이다.
내가 가는 길의 정도를 아는 것은 미래의 나를 예측하는데 도움을 준다.
많은 경험은 나를 더 알아가는 것과 같다.
혼자 걸으니 생각도 많아지고 또 나에 대해 성찰을 많이 하게 되었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은 길이다.
나를 더욱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간중간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맛집이 눈에 보였다.
다음번에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눈요기, 먹요기 시켜줘야지.
행복은 나눌 때 더 커지는 걸 아는 나이니까.
평화로운 바다에 사라들이 어디로 가고 있다.
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양식장으로 가는 걸까. 낚시를 하러 가는 걸까.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바다를 보며 맞는 햇살에 정신이 몽롱해질 무렵.
자갈이 있는 바다를 만나 파도와 자갈이 만들어내는 평화로운 소음에 잠시 매료되었다.
고즈넉함의 극치다.
다채로운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건 역시 느리게 보는 것이다.
갈맷길을 걷는 지금이 아니라면 누릴수 없는 호사다.
눈에 담고 귀에 담고 마음에 가득 퍼담았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리가 조금 아파지려나 할 무렵, 다시 안내판을 마주했다.
2년 전에 갔을 때도 위험한 길이라고 생각한 곳이 역시 다른 길로 우회하라는 안내판을 보고 또 생각이 났다.
내 생각엔 숲길처럼 나 있어서 혼자 가기에는 위험하겠다고 생각했던 길이었다.
역시 안전한 게 최고다.
이번 대체노선은 자전거도로와 함께 만들어진 길이라 좀 넓어서 좋았다.
얼마 안 가 바로 일광이 보였다.
다리가 후들거릴 것 같았다.
해수욕장과 마주 서니 바람이 강렬하게 불었다.
이거지, 이게 해수욕장 오는 맛이지.
주말 가족들과 바다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나는 혼자 왔으니까 바다만 보고 재빠르게 발길을 돌렸다.
그래도 좋았다.
바로 돌아섰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보물을 내 마음에 넣고 돌아오는 길이니까.
버스정류장에 곧 도착했고, 내가 탈 버스도 금방 돌아왔다.
시간을 보니, 내가 2시간 남짓 걸었던 길이 버스를 타고 가니 12분가량 소요되었다.
조금의 허무함이 들었지만, 2시간 동안 일어났던 내 안의 변화는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오늘의 외출도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