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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Feb 27. 2024

노인과 함께하는 하루

나는 오늘 엄마와 부산 나들이를 했다.

오늘 엄마의 일정이 꼬여버렸다.

등산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아침부터 흐린 하늘이 엄마의 표정마저 어둡게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데리고 외출을 하기로 했다.

부산 시내를 다닐 때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도보를 애용한다.

그렇게 오늘도 버스를 타고 일정을 시작했다.

한 정거장에서 승객들이 버스에 많이 탔다.

엄마랑 나는 버스의 끝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두 노인이 반대쪽 끝 좌석에 앉으셨다.

오랜만에 만나셨는지 신이 나게 담소를 나누셨다.

나는 옆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자기는 78년도에 이 지역에 왔는데, 그때 이 동네가 논밭밖에 없었어. 그때 땅을 샀으면 지금 잘 살 텐데. 하는 으레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옆자리 친구분이 정말 잘 듣고 호응을 해주셨다.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 두 분이시네. 생각하는데 그 앞자리에 앉으신 분은 대화가 좀 시끄럽게 느껴지셨나 보다. 창문을 휙휙 열었다 닫기도 하고, 갑자기 손장난을 하기도 하고 입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셨다.

그러나 뒤의 두 노인분들은 자기들 만의 세상에 푹 잠겨있어서 앞은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그 두 노인의 담소는 버스를 지나 지하철에서까지 계속되었다.

한참 떠들다가 내리셨는데, 그 옆에 앉아있던 다른 노인 한 분이 그 두 노인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말했다.

"진짜 말 많네."

그러나 나는 이해가 되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혼자가 익숙해지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일상이 당연해지면서 나눌 대화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그저 했던 얘기를 또 해도 즐거울 때가 있다.

그 두 분에게는 지금이 그때가 아닐까.


그리고 지하철은 계속 다음 역을 향해 달려갔고, 점점 승객이 늘어갔다.

자리가 애매하게 남아서 두 학생이 자리에 앉을까 말까 고민하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다른 사람도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한 노인이 좌석을 향해 소리쳤다.

"나이 든 사람이 노약자석에 앉아야지. 일반석 중간에 자리 차지하고 앉으니까, 젊은 사람이 눈치를 보고 못 앉잖아요, 여기 노약자석에 자리 많은데 여기 와서 앉아요."

당황했다. 처음엔 우리 엄마한테 그러나? 엄마가 노인으로 보이나? 다시 봐도 우리 엄마는 그냥 아줌마일 뿐이다. 내 옆자리를 보니 반백의 노인이 짐짓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고 앉아계셨다.

나는 이 노인의 외침이 내 옆에 앉아계신 노인에게 무안을 주기 위해 소리치신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위한 배려라고, 미움받기 전에 먼저 말을 걸어오는 용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지하철 안은 만석이 되었고, 남녀노소가 가득한 지하철 안을 보게 되었다.

앉는 좌석이 다 차있는 지하철 안을 보면 사람들이 지하철을 탈 때부터 노인들은 노약자석으로 바로 직진을 하고 그 외의 사람들은 일반석 앞으로 서서 갔다.

암묵적인 약속을 서로 잘 지키는 것 같다.

모든 것이 용기다. 왜 노인은 일반석에 앉으면 안 되는가. 그 자리를 지키는 것도, 말을 거는 것도, 모든 것이 다 용기다. 바로 내 앞자리에서 시장에서 산 엿을 꺼내 드시던 노인 한 분에게 당신이 승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보고 싶은 책이 생각나서 갑자기 도서관엘 가기로 했다.

즉흥적인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그래서 밥을 배불리 먹고 소화시킬 겸 도보로 중앙도서관으로 끝없이 올라갔다.

계단이 많은 곳인데, 또한 노인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다.

오르막을 계속 오르다 보니 엄마가 지쳐하는 것 같아서 이 동네의 특별한 이동수단인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승강장엔 아무도 없었다. 탈 수 있겠다.

오름길 모노레일 타기 전 설렘 가득한 샷

모노레일이 도착하자 어디선가 노인분들이 대거 나타나셨다.

어떻게 딱 6명이 동시에 오시냐.

결국 떠나보내고 말았다.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그냥 걸어가라고 하는가 보다.

모노레일 타고 싶다 정말 타고 싶다.

그래도 또 덕분에 걸어가면서 엄마에게 최고로 예쁜 사진을 찍어주는 효도를 시행했다.

뭐든 마음먹기 나름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질량이 정해져 있어서 마음이 서운할 만하면 또 좋은 일이 생긴다.

그렇게 무사히 길을 오르면 중앙공원에 도착할 수 있다.

엄마는 부산 사람이지만 처음 가는 곳이라고 했다.

처음이면 또 사진을 찍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줘야지.

중앙공원은 탑골공원과 흡사한 모습이다.

주로 노인들이 많이 계시고, 남자 어르신들은 바둑과 장기를 두고 계시고, 여자 어르신들은 보다 따뜻하게 관리된 천막으로 쌓인 정자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오늘 날씨가 꽤나 추운데도 공원에서 서로 만나 교우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내시는 듯하다.

오늘 정말 예상치 않게 노인과 함께하는 하루를 보내게 돼서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나는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빌려서 기분 좋게 내려왔고, 엄마는 건강하게 올라갔다가 별일 없이 내려와서 더 좋아했다.

역시 꾸준한 관리는 건강해진 몸을 스스로 느낄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그 점에서 오늘의 외출은 나보다 엄마에게 더 소중한 하루가 되었지 않았나 싶다.


사람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의존형 인간으로 태어나 스스로 자립하는 법을 사회생활을 통해 배우고, 몸이 늙고 마음도 늙어 노인이 된다.

현재 행복한 사람은 지금을 노래하고, 지금이 불행한 사람은 과거를 노래하고 미래를 지향한다.

오랜 생을 살아온 노인이 미래를 지향하는 경우보다 과거를 노래할 때가 더 많다.

때로는 큰 소리로 말하기도 하고, 오해를 하기도 하고, 성질을 있는 대로 내기도 한다.

그들이 겪은 시대가 그러했고, 서로에 대한 기대가 옅어져 가는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어서 이제는 무감각해지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누군가는 고된 삶을 살았을 수도 있고, 희생하는 삶, 착취당하는 삶, 나누어주는 삶,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조금만 더 서로에게 배려하면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

나는 내 옆에서 얌전히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노인으로 향하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내가 더 마음이 건강해지려고 노력해야지 마음의 다짐을 하곤 한다.

오늘 내가 바라본 노인들의 모습은 아이 같았고, 어른 같았고, 학생 같았다.

그리고 모두 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보다 다정하게 이들을 대해야지. 바라봐야지.

후회를 조금만 하는 삶을 살아야지.

오늘은 책을 보는 것보다 더 큰 교훈을 얻는 외출을 했다.

엄마와의 외출 강력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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