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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Mar 05. 2024

비 오는 날 노란 차를 만났을 때

내가 탔던 노란 차에 대한 이야기

비가 온다.

부슬부슬 내리는 것 같은데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 때 내리는 비는 그냥 비가 아니다.

바람을 타고 내리는 비는 그 방향이 순식간에 바뀌면서 우산을 조종하는 나를 헷갈리게 만든다.

그냥 포기하고 걷다 보면 발이 젖어간다.

발이 젖으니까 온몸이 젖는 느낌이다.

이렇게 비가 오면 몸과 마음이 물에 잠긴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보니 노란 차들이 바삐 어딘가로 향해 달리고 있다.

아이들의 하교시간이 다되었나 보다.

나에게도 노란 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가 생각이 났다.

노란색 학원차

중학생 때였다.

나는 그다지 학구열이 높은 학생이 아니었다.

많은 분야가 부족했지만, 특히 영어가 좀 많이 부족했다.

그 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마치 홀린 것처럼 집에서는 멀지만 꽤나 유명한 학원을 친구랑 같이 다니게 되었다.

영어학원에서 학습한 것은 차치하고, 학원버스에 대해서 친구들이랑 늘 이야기하고 다녔다.

이 차를 계속 타면 곧 사고가 날 것 같다.

집에서 학원까지의 코스가 결코 길지가 않았는데 폭주를 하는 기사님이 운전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를 탈 때마다 오늘은 사고 나지 않겠지 친구랑 꼭 얘기를 나누곤 했다.

말의 힘은 무섭다.

그렇게 학원을 다닌 지 한 달이 채 안되어서 결국 사고가 나버렸다.

학교 앞을 지나가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그 당시 학교 옆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라 덤프트럭이 도로에 많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덤프트럭에 학원차가 박힌 것이다.

공격받았던 덤프트럭

학원차의 오른쪽이 덤프트럭에게 공격당했다.

학원차에 타고 있던 사람은 기사를 포함해 다섯 명이 착석하고 있었다.

차의 오른쪽이 박혔기 때문에 우리는 나갈 문을 잃어버렸다.

커다란 충격에 창문이 박살 나있어서 창을 통해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곧 구급차가 와서 원생들과 기사를 태우고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진짜 신기한 일이었다.

차가 반이나 부서졌는데, 정밀 검사를 했음에도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다.

창문으로 나오다가 부서진 유리에 긁힌 정도.

천운이었나?

아니면 모든 원생들이 이미 일어날 사고에 대한 대비로 쪽으로만 착석을 하고 있었고, 안전벨트를 하면서 미리 사고를 대비했던 건 아닐까.

저는 덤프트럭에 받히는 사고를 당하고도 무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사건은 종료되었고, 학원에서 든 보험 덕분에 사고보상금으로 10만 원을 받았다?!

그 돈으로 그 당시 나에게 필요했던 머리카락을 펴는 고데기를 구매했던 아련한 기억.

값지게 썼었다. 목숨값이 10만 원이었던가.

차를 폐차시켜서 1주일간은 다른 아저씨가 운전하는 학원차를 타고 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일주일 후,

예의 그 사고 기사가 등장을 해버렸다.

새 학원차와 함께.

그리고 나와 함께 학원을 다녔던 친구를 포함한, 사고당시 학원차에 승차해 있던 모든 원생들이 학원을 그만두었다.

사고가 났는데 또 그 아저씨가 운전을 한다는 것은 또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300%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 학원기사는 학원장과 아주 긴밀한 관계에 있지 않을까.

그만큼의 학구열도 없었거니와 사고를 마주했던 기억이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그의 화려한 복귀는 이 학원을 단호하게 그만둘 수 있는 확신을 주었다.

그 당시에 느꼈던 그들만의 리그에 깔끔히 백기 들고 포기를 선언했던 아련한 기억이 있는 노란 차였다.


또, 도로에는 다른 노란 차가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있으면 좋은데 없으면 불편한 자격증이 하나 있다.

바로 운전면허증

나의 꿈은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택시를 타든, 버스를 타든, 가족이 운전하는 차를 타든. 나는 절대 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늘 마음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인생은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기도 한다.

일을 하다 보니 어쩌다 내가 직접 차를 몰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렇게 운전학원을 등록하고 필기시험 치고, 도로연수를 금방 마치고, 실기시험을 치게 되었다.

나의 첫 번째 실기시험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몇 번 연습을 하긴 했지만 많이 긴장을 하고 있었다.

비가 와서 더 긴장했지만, 자신은 있었다. 하기 싫어했을 뿐 운전에는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기수험료는 그 당시, 1회에 5만 원이었기 때문에, 한 번에 끝내자는 마음으로 도전을 했다.

잘 가다가 신호가 노란색으로 바뀌고 곧 빨간색으로 변하는 때였다.

브레이크를 밟는데 옆에 착석하고 있던 감독관이 더 긴장한 듯했다.

앞 차와의 간격이 여유로웠는데 감독관이 보조석에서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다.

비가 오고 길이 미끄럽다고 생각하셨나 보다.(그렇게 생각해야 내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나는 바로 탈락해버렸다.

나는 감독관을 허무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아휴

그렇게 나는 맑은 날 두 번째 도전을 해서 성공을 해버렸다.

그래서 나는 비 오는 날 운전하다가 도로연수중인 노란 차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도로주행하는 노란 차

그대여 비 오는 날은 시험 치지 마요. 내가 아무리 잘해도 감독관이 브레이크를 밟으면 무조건 탈락이에요.

누구에게나 초보시절은 당연히 존재한다.

바로 앞에 이 노란 차가 들어오면 그러려니 하다가도 답답한 모습에 마음이 조급해질 때가 있다.

오래가지 않는다.

곧 지나갈 시간이다.

노란 차는 우리가 지켜줘야 하는 차다.

비 오는 날 노란 차를 보면 지난날 어린 나를 마주하곤 한다.

기억을 더듬으며 오랜만에 색연필까지 꺼내서 그림까지 그려보았다.

마치 그림일기를 쓰는 기분이다.

젖은 몸과 마음이 어려지는 기분이다.

혹시 당신에게도 노란 차의 다른 기억이 있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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