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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Mar 11. 2024

식욕을 부르는 부산 걷기 여행

갈맷길 1-2구간 도보여행

부산에 있는 남파랑길 걷기를 하다가 길을 잘 몰라서 갈맷길 투어 라운지를 들렀었다.

거기서 우연히 갈맷길 안내 책자를 발견하고 가져왔다.

욜로 갈맷길 안내책자

잘못 들어간 길에도 꼭 수확을 해낸다.

그래서 오늘은 갈맷길 1-2구간

욜로 2코스. 일명 시크릿 커피로드를 걷기로 했다.

선택 이유는 간단하다.

욜로 갈맷길 전체 난이도 중에서 가장 어렵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걸 해내면 그다음은 쉬운 길 뿐이다.

그리고 나는 기장군청 앞을 10시 10분에 도착했다.

기장군청 앞 갈맷길 안내도

처음은 늘 설렌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도 처음 하는 것에 설레는 나 자신이 좋아진다.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오늘도 시작이 좋다.

봉대산 들어가는 입구

길치는 처음 가는 길은 늘 헤맨다.

오늘은 다행히 안내책자가 옆에 있어서 든든하다.

국밥집을 지나쳐 왼쪽으로 오르는 길로 쭉 가다 보면 우신네오빌아파트가 보인다.

106동까지 걸어서 오른쪽으로 가면 봉대산 종합안내도를 만날 수 있다.

이 욜로 갈맷길 코스의 난이도를 높인 장본인인 봉대산이 시작하는 지점이다.

높이가 낮은 산(봉대산 정상 229.4m)이라고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된다.

봉대산 등산로는 오로지 오르막 뿐이다.

평지가 없다.

계속 올라가야만 한다.

중간중간 의자가 있는 것이 신의 한 수다.

앉지는 않고 의자가 있는 자리에 서서 숨을 고른다.

거친 숨을 진정시키고 나면 앞으로 나갈 힘이 생긴다.

산을 잘 오르기 위해서는 위를 보고 걸으면 결코 그 끝에 다다를 수 없다.

앞만 보고 걷는다. 이것이 인생을 가야 하는 지침서와 같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내 앞에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정상에 서 있는 것이다.

봉대산 정상

앞에 표지판 있는 곳이 봉대산의 정상이다.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자료조사를 했으므로 봉대산 정상의 표지석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무양마을 방면으로 5m만 걸어가면 정상 표시점 위에 작은 바윗돌에 봉대산이라고 누군가의 흔적이 남겨져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아름다운 배려가 아닐까.

누군가의 예쁜 마음이 담긴 정상을 밟고 죽성리를 향해 가다 보면 두 갈래 길을 만난다.

봉대산 정상에서 봉화대 사이의 갈림길

이 표지판을 만났다면 그대는 망설이지 말고 죽성리 쪽으로 바로 직진해서 가면 됩니다.

길치인 나는 월전, 대변 쪽으로 가다가 다시 올라왔거든요.

하지만 괜찮아요. 혼자 걷는 걸음이 조금 늘어났을 뿐, 틀린 길을 간 건 아니니까요.

바로 길을 돌려 가다 보니 봉수대를 만날 수 있었다.

기장 남산 봉수대에서 내려다보는 기장의 바다

봉수대의 흔적은 없고 바위와 폐컨테이너만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이 자리가 봉수대로서 좋은 위치에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소식을 빠르게 알려주는 봉수대 중에 하나의 몫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산을 오르면서 흘렸던 땀이 사르르 녹는 시원한 바람의 봉수대였다.

그리고 그다음은 끝없는 내리막이었다.

문득 산을 돌아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산을 오를 때는 오르막이 좋고, 내려갈 때는 계단이 좋다는 것을.

성큼성큼 올라갔다가 사뿐사뿐 내려오는.

특히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더 조심해서 내려와야 그다음을 잘 갈 수 있다는 것을.

늘 가르침을 준다. 산을 오를 때마다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이 겸손해진다.

월전마을에서 변경된 갈맷길 안내판을 만나면 사랑애펜션 쪽으로 가면 됩니다.

봉대산을 내려와서 갈맷길을 따라가다 보면 월전마을을 만날 수 있다.

노선이 변경된 안내판을 잘 확인하고 갈맷길 스티커를 따라가다 보면 사랑애펜션을 볼 수 있다.

공사장 같은 길을 직진해서 쭈욱 가면 다시 봉대산 등산로를 만날 수 있다.

봉대산은 높이는 높지 않으나 그 넓이가 상당한가 보다.

내려왔는데 또 봉대산으로 오른다.

갈맷길이 재미있게 만들어져 있다.

산을 오르내리고, 바다를 만나고 다시 산을 오르고. 그리고 또 흐르는 시냇물을 만날 수 있다.

봉대산을 흐르는 시냇물

물 흐르는 소리가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산과 바다와 시냇물이라니. 풍류가 있는 길이다.

혹여나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욜로 2 갈맷길 코스를 추천한다.

볼거리가 풍성하고 몸을 충분히 지치게 해서 그 끝에 다다랐을 때 뭐든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대변항에서 만나는 공중화장실은 음성인식 비상호출이 가능하다.

2시간 남짓한 산행이 좀 지쳤다.

화장실이 고팠다.

입구부터 재미있는 화장실이었다.

"살려주세요." 나 "사람 살려"라고 외치면 바로 신고가 가능한 화장실이다.

허위신고하면 잡혀간다고 공지되어 있었는데 나 같은 사람이 있었나 보다.

궁금한데, "사람 살려" 하면 바로 사람이 오나?

생각만 하고 끝냈다. 의심은 사고를 부른다. 위급할 때 꼭 써봐야지.

대변항의 멸치광장과 멸치액젖, 새우젓 등 다채로운 건어물 식료품점

멸치로 유명한 곳인가 보다. 다음엔 여기 와서 멸치 쌈밥을 사 먹어 봐야겠다.

대변항.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고 했는데, 초등학생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한 것이 생각났다.

학교 이름이 대변초등학교라 다른 사람들이 놀려요. 예쁜 이름으로 바꾸면 안 될까요.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교명 변경 조례로 대변초등학교가 용암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생각을 의문으로만 두지 말고 주위 사람들과 대화하고 의견을 모아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기운이 좋다.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연화리의 죽도

기장에서 유일하게 있는 섬으로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다.

섬 안에 대나무가 많아서 죽도라고 불린다고 한다.

개인 사유지라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보기만 했다.

그리고 연화리에는 바로 앞에 해녀촌이 들어서 있다.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신선한 해산물과 전복죽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해산물을 그다지 즐기지 않고, 또 혼자라서 재빨리 앞을 지나갔다.

이모님들의 강렬한 눈빛에 몸이 녹을 지경이었다.

밥은 집에서 먹을 겁니다. 다음에 여럿이서 올게요.

오랑대공원의 모습과 용왕단

연화리를 지나 앞으로 쭈욱 걷다 보면 오랑대 공원을 만날 수 있다.

바다와 함께하는 길은 눈이 즐겁고 몸이 바람과 만나는 길이다.

오래 걸어서 흘린 땀이 바람에 씻겨나간다.

신기하게 오늘 내가 걸은 길은 혼자 걷는 길이었다.

봉대산을 등산할 때도, 대변항과 연화리를 지날 때도 혼자였다.

갈맷길이나 남파랑길을 걸을 땐 늘 음악을 들으면서 걸었는데, 길에 완전히 혼자 있으니 음악을 듣기가 아까웠다. 온전히 혼자만의 길을 걸으며 자연의 소리를 마음껏 들었다.

오랑대공원에 오니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말인즉슨 이 길은 걷기가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평탄하게 잘 관리된 길과 바다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풍경이 함께하는 길이다.

오랑대공원에 주차장이 고즈넉하니 좋았고, 용왕단에까지 가보니 이곳은 무속인들이 기도를 드리는 신성한 곳이었다.

용의 머리가 있는 곳이다. 나도 조용히 갔다가 염원을 드리고 조용히 나왔다.

갈맷길 1-2 도보인증대 동암항 모습과 코스 변경 알림판

진짜 많이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반밖에 안 온 거라니.

이것은 착각이다. 조금만 더 가면 용궁사이고 곧 송정이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길을 아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변경된 길은 기존의 갈맷길과 다른 옆으로 가서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지나가는 것이다.

이 길을 지나가다 보면 바보낙지를 만날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외식을 하는 곳이다.

오동통한 낙지와 성찬을 드시고 싶다면 반드시 추천하는 곳이다.

오늘은 먹지 않지만 다음 주에는 꼭 올 것 같다.

용궁사는 자주 왔던 곳이니까 오늘은 그냥 스쳐 지나가기로 한다.

이제 몸이 지쳤다.

도보로 걸어온 시간이 4시간이다.

이제 내 목표는 송정해수욕장까지 완주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 끝을 알고 있으므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멀리서 바라본 용궁사와 스치듯 지나간 공수항
오시리아에서 송정해수욕장까지는 걷기만 했습니다.

정신과 육체가 만나지 못하고 앞만 보고 직진만 했다.

역시 중간에 밥을 먹어야 한다.

집에 두고 온 떡볶이 생각에 적당한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은 마무리가 영 시원치 않았다.

다음엔 꼭 액상과당을 챙겨 와서 먹어야겠다.

그래도 잘 만들어진 길을 걸으니 결국은 목표를 달성했다.

처음에 힘든 길을 선택해서 걸으니 나중이 편하고 좋구나.

죽도공원의 나무들이 더없이 푸르러 보이고 편했다.

그리고 마주한 송정해수욕장

송정해수욕장과 도보인증

신발을 벗고 여유롭게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내 지친 발은 어디 앉아 쉬기를 바다보다 더 원하는 것 같다.

가져온 갈맷길 안내책자에 인증도장을 찍고 이 걷기 여행을 마무리했다.

5시간에 걸쳐 얻어낸 수확.

나는 이렇게 기장을 알아가고 또 부산을 배우게 되었다.

산과 함께하는 이 갈맷길 코스는 힘들지만 그 끝이 달콤한 여정이었다.

송정역과 맞은편 돈가스 맛집

송정역이 마지막 코스였다. 도착시간 2시 50분.

이제 발을 쉬고 몸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차를 기다리려고 보니 바로 앞에 돈가스집이 보였다.

급히 검색을 해보니 송정 현지인들의 맛집이었다.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수제 생돈가스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다음에 오면 꼭 먹겠다고 다짐했다.

정말 먹고 싶지만, 나는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떡볶이를 절대 잊지 않고 있었다.

오늘 2만 4 천보.

수고한 나에게 맛있는 떡볶이를 먹이며 보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집에 무사히 도착했고, 나는 올해 들어 가장 맛있는 떡볶이를 먹을 수 있었다.

꿀맛 같은 보상을 받았다.

잊지 못할 부산 여행을 하고픈 사람이라면, 정말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이라면.

기장군청에서 송정해수욕장까지 이르는 이 길을 추천드립니다.

원수와 먹어도 행복한 식사시간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식욕이 오릅니다.

다만, 아주 편한 신발을 신고 가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오늘도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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