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스러운 일은 문경 4일 차에도 계속된다
간밤에 푹 잤다.
처음은 언제나 낯설고 서투르다.
3일 차의 밤은 깊은 피로도와 익숙한 잠자리로 인해 8시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낯선 곳에서는 선잠을 자지만, 아주 오랜만에 깊은 잠과 짙은 꿈을 꾸었다.
정해진 일정은 있지만, 약속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아침은 한없이 느긋해진다.
룸메인 나나님과의 아침 산책을 시작한다.
시골에서 편의점은 아주 귀하다. 도로변에 위치한 편의점은 지나는 행랑객에게도, 지역주민에게도 빛과 소금이 된다. 오늘은 사고 싶은 것이 없지만, 또 와서 많이 사가겠습니다.
사랑채에 모여 참가자들끼리 오늘 무얼 할지를 이야기한다.
족욕과 출렁다리 코스, 명주박물관과 명주공원이 나왔지만, 최종 코스는 족욕과 출렁다리로 정해졌다.
함께하는 이유는 토론하며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랑비가 머리 위를 두드린다. 가을비가 이렇게 변덕스러웠나.
매일매일이 나가는 일정에, 비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하니 어느새 우산의 존재가 무의미해졌다.
쓰기도 애매하고, 안 쓰기도 상그러운, 될 대로 되라의 마음으로 거리를 걷게 된다.
그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말이다.
출렁다리로 향하는 길은 오롯이 두 다리로만 가능하다. 이제 문경의 볼거리에 조금은 익숙해졌다 싶다가도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면 또 괜히 간다고 했나, 하는 후회감이 조금씩 밀려온다.
산으로 향하는 계단을 다 오른 뒤에도 출렁다리로 향하는 철제계단을 또다시 올라야 한다.
비인지 눈물인지, 그래도 좋다. 얼마나 좋은지 꼭 내 눈으로 확인하리라.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출렁다리다.
특히나 비가 오는 오전시간이었기에 출렁다리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공중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걷는 것이 마치 하늘 위를 걷는 것과 같다.
문경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소백산맥의 자락을 온몸으로 느껴진다.
역시 오길 잘했어, 오늘 못 하면, 내일도 못 하는 것이 인생이다.
사람 없는 출렁다리를 뛰어도 보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문경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즐겁다.
요즘 나는 문경에서 계속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중이다.
출렁다리를 한껏 즐기고 되돌아가기 위해 뒤를 돌아본 순간, 다시 숨이 멎는다.
중국 장가계까지 갈 필요가 있는가. 문경에 오면 되는 거지.
천혜의 요소가 바로 이곳 문경에 있다.
아침을 먹고 바로 출렁다리를 다녀왔을 뿐인데 벌써 배가 고프다. 역시 등산은 전신 운동이다. 그리고 아직도 성장기인가 보다. 그럴 때는 기꺼이 든든한 한 끼를 맞이해야 한다.
현지인 추천 맛집, 오늘의 점심은 채가네 들깨칼국수 정식이다.
정식에 비빔밥과 보쌈이 포함되어 있는 굉장히 합리적인 가격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어지는 보리밥이 고소하다. 무채와 콩나물무침, 그리고 고추장에 비벼먹기만 해도 감질맛이 난다. 입맛을 돋우기에 최고의 애피타이저다.
뜨끈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들깨칼국수는 한입에 진국임을 알 수 있는 맛이다.
문경에 와서 잘 먹고 잘 다녀서 돌아갈 때쯤이면 아주 건강해질 예정이다.
평소에 좋아하지 않았던 음식들을 보약처럼 먹고 있다.
곁들임 음식으로 먹는 보쌈과 생김치 또한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알짜배기 메뉴에 먹는 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들깨칼국수 정식이다.
채가네 들깨국수에서 도보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한 온천지구 족욕장에 입성.
오후 12시 30분 개장, 오후 7시 마감이다. 데워진 온천물이 수조에 담겨있는 형식으로 추운 겨울에는 물이 금방 식기 때문에 4월에서 11월까지 운영된다.
우선 족욕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발부터 씻어야 한다. 관리인이 한 분 상주해 계시지만 넓은 공간을 두루 관리하기에는 이용객이 정말 많다.
발부터 씻고 들어오세요를 하루에 100번도 넘게 말하실 것 같다. 공용의 공간을 위생적으로 사용해야 서로에게 좋다.
개장하자마자 만나는 온천수는 굉장히 뜨겁다. 역시 쉬운 것이 없다.
발바닥을 대어보다가 뜨거워서 발을 올리고, 이렇게 잠깐씩 물에 담갔다가 빼보면 어느새 온천수의 온도에 적응한 발을 볼 수 있다. 뜨끈함이 속까지 차오른다.
물에 들어갔다가 나온 발은 금세 새빨게진다. 건강해지는 비결이 이러한가.
방금 다녀온 출렁다리의 피로가 뜨끈함에 녹는다. 문경에 오면 꼭 추천하고픈 여행 코스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족욕은 10분에서 15분이 딱 적당한 것 같다. 처음에 뜨겁던 온천수가 익숙해질수록 미지근하게 느껴진다.
금방 물이 식은 것이 아니라, 내 몸이 그만큼 따뜻해졌다는 뜻이리라.
관리인의 말씀이 발을 닦지 말고 그냥 말려서 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 경험자의 말을 듣는 것이 좋다.
발은 금방 말랐고, 양말을 신은 발 안의 느낌이 뽀독뽀독해져서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힐링되는 야외 족욕장이다.
드디어 고대하던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시간.
패러글라이딩 전용 복장을 하고 활공장으로 향하는 트럭이 액티비티다. 가파른 경사와 급커브에도 완벽한 드라이빙에 벌써부터 기대감이 고조된다. 하지만 구름이 산 정상을 뒤덮었고, 비까지 야무지게 뿌려댔다. 분명 산 아래에서는 맑았지만, 활공장으로 가는 도중에 구름을 만났고, 정상에 비까지 내려대니 패러글라이딩을 못하나 하는 실망감이 밀려왔다.
“1시간 후에 다시 올라옵시다.”는 말에 자그마한 희망을 붙잡고 스릴 넘치는 하강 드라이브를 즐겼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접수처에서 잠깐 차 한잔하고 바깥 경치를 보니 예사롭지가 않다.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푸른 잔디와 아기자기한 마을이 알프스를 연상케 한다. 문경 안에서 동서양을 넘나드는 여행 중이다.
다시 올라간 자리에 구름은 사라지고, 환한 해와 드넓은 대륙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함이 가득 차는 기분이다. 지금도 이렇게 좋은데 저 하늘을 날면 어떻게 될까. 순간순간의 기대감이 쌓여 도파민이 분출되고 있었다.
곧 이름이 불리고, 꽤 묵직한 의자가 있는 가방을 메고, 끈을 조이고 아래로 내려간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어 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드디어 하늘 위를 날았다.
자연의 바람을 느끼고 오롯이, 그리고 온전히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본다. 눈 감는 시간조차 아깝다. 하늘 의자는 생각보다 든든하고 안정감이 있었고, 두 팔을 벌려 하늘을 나는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벅찬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문경에 오면 꼭 경험해야 할 소중한 순간임이 확실했다. 단 10분을 위해 차로 2번 오고 내려왔고, 비바람이 우리를 저지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하늘에서 바라본 소백산맥의 웅장함과 평화로운 논과 밭,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이 아름답다. 최고의 순간이다.
안정적으로 하강한 순간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타기 전에는 그저 설레고 덤덤했다면, 이 비행을 즐긴 순간부터 벅찬 감정이 심장을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정신과 육체의 괴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오늘은 액티비티의 날이다.
잠깐의 고민 끝에 EVA 산악바이크 체험을 시작한다.
패러글라이딩에 지친 참가자들은 모두 꽃카페에 가서 쉬기를 선택했지만, 나는 포기를 모르는 소시민. 오늘 못하면 내일도 못한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도전.
1인탑승 27,500원. 소인동승 38,500원. 성인동승 44,000원.
나는 혼자 탑승 27,500원. 혼자 타는 나를 위해 도미닉 님께서 함께 달려주셨다. 스태프들이 세심하게 잘 챙겨주신다. 초행길에 혼자가 아니라 참 다행이야.
결제와 동시에 산악바이크 안전교육이 시작된다. 운전조작 미숙으로 인한 사고는 본인이 져야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거나 지정코스 이탈 시 요금이 부과된다. 바짝 긴장하고 타야겠다.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자동차 운전만 했던 나에게 바이크는 낯설었지만, 바이크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조금은 감이 왔다. 그대로 직진.
왼쪽 브레이크에 손을 고정시키고, 오른손으로 엑셀을 잡으면 쭈욱 힘 있게 바이크가 앞으로 나간다. 구불구불, 고르지 못한 돌길을 스피드 하게 달린다. 오전에 내린 비로 물웅덩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그마저도 나의 흥을 돋우는 기폭제가 될 뿐이다. 자동차로 운전할 때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도파민이 팡팡 터지기 시작한다. 안전운전이 필수이지만, 산악바이크의 명성을 온몸으로 느낀다. 패러글라이딩과는 또 다른 액티비티에 심장의 파동이 강하게 느껴진다. 진심으로 좋아서 소리도 지르고, 오르막 내리막의 속도 조절과 급커브, 돌길을 차고 올라가는 바이크를 운전하는 내가 다시 좋아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다시 만나는 최고의 순간.
액티비티의 날이었지만, 오늘 나는 문경이라는 도시에 다른 매력에 흠뻑 빠졌다.
조금은 급한 경사도의 계단을 힘겹게 오른 후 만나는 문경시내의 모습이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높은 산맥들이 서로 마주 보며 문경 시내를 든든히 지켜주는 기분이 들었다.
아파트 하나 없는 단조로운 건물들이 마을을 이루고, 산만큼 높은 곳에 위치한 출렁다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하늘 위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중국의 장가계를 따로 갈 필요가 없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무릉도원이고 하늘과 한층 더 가까워졌을 뿐이다.
잠깐이었지만 힘든 산행 후에 즐기는 따뜻한 온천 족욕은 몸과 마음에 위로감을 선사하고, 한결 부드럽고 뽀송해진 피부를 느꼈다.
평지와 산의 온도와 기후가 확연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활공장으로 향하는 드라이빙을 두 번이나 하는 것이 어떤 놀이기구의 스릴보다 더 커다란 도파민을 선사했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딩은 내 생에 처음 맛보는 완전한 해방감이자 형용할 수 없는 충만감의 연속이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또 있었다. 패러글라이딩만큼 기대하진 않았지만, 땅 위의 스릴을 야무지게 맛볼 수 있는 그곳이 바로 ATV 산악바이크이다.
두 발로, 자전거로, 자동차로 가기 힘든 돌길을 4륜 바이크로 힘차게 달리는 기분은 상상 이상의 스릴을 맛보게 한다. 오전에 내린 비로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있었지만, 피하지 않고 그 위를 달리는 경험을 해보신 적 있으신지. 젖어도 좋고, 중간중간 만나는 급커브와 오르막길, 고급코스로 가면 즐길 수 있는 둔덕을 오르내리는 박진감은 소심히 뛰던 심장을 봉인하는 것과 같다.
도로 위에서 안전운전만 하던 드라이빙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곳.
이것 또한 안전하게 하는 것이 필수이지만, 그에 더해 상상할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하는 곳이다.
오늘 하루 느낀 충만감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문경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매력을 가득 품고 있는 곳이다.
이 매력을 안 이상, 나에게 문경은 그저 경북에 있는 문경새재가 있는 곳만이 아니다.
스릴이 넘치고 행복을 넘어 충만감을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여행지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반드시 와야 하는 최고의 도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손잡이를 놓는 순간이도,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중에도, 샤워를 하고 이불 위에 몸을 뉘었을 때도 붕 뜬 기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오늘 나의 도파민은 최고조에 이르렀고, 이보다 더 액티브한 하루가 또 있을까 싶은 깊은 밤을 맞이한다.
이렇게 재밌는데, 내일은 또 어떤 경사스러운 일들이 나를 기다릴까.
그렇게 까무룩 잠에, 문경에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