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자 축제와 비, 피로에도 기대감을 주는 문경의 하루

오미자는 피로회복과 진득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by 천둥벌거숭숭이

이제 제법 선선해졌다. 싸늘함에 눈을 뜨는 계절을 낯선 곳에서 맞이한다.

뜨끈한 국물을 먹기 위해 1년에 채 10번도 먹지 않는 컵라면을 먹고 아침을 시작한다.

날이 흐려서 오늘 일정의 변수가 예상되지만, 나중 일은 나중에 해결하면 될 일이다.

가볍게 새원마을을 돌아본 후, 이제는 익숙해진 가이드들과 함께 차를 타고 떠난다.

문경 찹쌀떡 달인 뉴욕제과 달인
뉴욕제과 찹쌀떡의 팥앙금이 예술이다

누군가의 열정에 감복한다.

문경에는 유명한 것들이 많지만, 특히나 궁금했던 것이 바로 뉴욕제과의 찹쌀떡이었다. 언제나 찾는 사람이 많아 처음부터 포기했지만, 분명 아닌 사람도 존재한다.

하쿠나 님과 나나 님의 뉴욕제과 찹쌀떡에 대한 열정은 첫날부터 계속되었다. 현지인 꿀팁을 이용해 미리 전화주문을 하고 다음날 받으러 간다.

열정을 소유한 사람이 곁에 있던 덕에 뉴욕제과 찹쌀떡을 맛보게 되었다. 나오자마자 먹는 떡이 쫄깃 진득하다.

특히나 맛있었던 것은 알알이 씹히는 팥과 앙금의 조화다.

미각이란 신기하다. 손으로 집는 질감과 코끝을 자극하는 후각, 씹는 맛과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 모두를 '미각'에 포함시키니 이 모든 것이 예술처럼 느껴진다.

기대감을 만족시키는 찹쌀떡에 기분이 좋고 속이 든든한 하루의 시작이다.

문경오미자축제 오미자로 만든 다양한 제품들
오미자축제의 오미자게임

오늘은 문경의 오미자 축제가 있는 날.

문경의 중심지에 위치한 새원마을에서 오미자 축제가 진행되는 동로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커다란 산이 있어 지금은 그 산을 뚫는 터널을 짓는 중이라고, 터널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돌아서 가야 한다. 지나는 길에 만난 경천호의 물이 말라 있다.

마치 지금 뉴스에서 열심히 떠들고 있는 강릉의 모습이 떠오른다. 올여름의 장마가 생각보다 짧았다. 물부족 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체감되는 순간이다.


드디어 오미자 축제장에 도착.

축제 첫날이라 여기저기 어수선한 분위기가 한창이다.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가 우리를 환영한다. 판매부스에서 맛보기로 주시는 오미자주스와 사과가 들어간 뻥튀기 맛이 일품이다.

즐길거리로는 오징어게임을 차용하여 만든 전통놀이 체험이 있다.

딱지치기, 비석치기, 공기놀이, 팽이 돌리기, 제기차기. 총 5가지 관문을 거치면 부상이 주어진다. 바로 오징어게임의 주역, 달고나다.

인내가 쓰면 열매는 달다. 오랜만에 치는 딱지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고, 제기차기할 때의 내 발은 맘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완성하고 받아낸 도장이 뿌듯하다.

문경 동로 맛집 바로 한식뷔페
문경 동로 한식뷔페 비담의 음식

오미자 축제를 몸으로 즐기다 보니 점심시간이 금세 도래한다. 오늘은 축제장에서 식사하지 않고, 바로 주변상점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한식뷔페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예상과는 다른 결과물이지만, 오히려 좋아.

한식의 묘미는 다양한 반찬에 있다. 뷔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퍼 먹을 수 있다는 강한 장점이 있다. 이 좋은 것을 합한 것이 바로 한식 뷔페.

밖에 나와서 생활할 때는 점심시간에 하루의 영양분을 섭취하려고 노력한다.

두부, 어묵, 햄, 과일 사라다와 오이무침, 그리고 호박무침. 국은 콩나물 국이다. 그 외에 많은 반찬들이 있었지만, 그 이상을 접시에 담는다면, 과한 욕심일 뿐이다. 뷔페에서는 항상 먹을 만큼만 담는다. 이 모든 것이 단 돈 만 원.


든든한 식사를 마치고 다시 오미자 축제 행사장에 들러 행사 부스를 둘러보다, sns에 오미자 행사 홍보물을 올리면 선물 추첨하는 행사가 있어 참여하게 된다. 선물은 바로 오미자가 들어간 에센스. 선물은 언제나 받는 이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좋았다.

문경 예쁜 한옥 카페 화수헌 메뉴
화수헌 떡와플과 아메리카노

다음 일정은 원래 산북 돌리네습지였으나 비가 오는 관계로 바로 한옥카페로 유명한 화수헌으로 변경한다. 드넓은 논밭에 한옥집들이 너른 마당과 함께 하고 있는 집성촌인 현리 도착.

화수헌은 한옥의 매력을 한껏 살린 모습이 인상적이다. 널따란 마루에 놓인 다과상이 앙증맞고 귀엽다.

작은 방들 안에 옛 물건들이 놓인 모습이 마치 할머니 집에 온 기분을 들게 만든다.

차를 마시고, 옛 기억들을 먹는다.

책장 위에 가지런히 줄 서있는 책 제목을 바라보다가 눈에 띈 책이 하나 있다.

화수헌 내부 모습과 바이런의 시

바로 바이런의 시집이다.

그의 시 ‘죽음과 결혼’의 첫 문구가 인상적이다.

모든 비극은 죽음으로, 모든 희극은 결혼으로 막을 내린다.

모든 이야기의 비극적인 끝은 죽음이고, 이야기의 행복한 결말은 결혼이다. 과연 현실에서도 그러할까. 많은 생각을 연상시키는 문구다. 덕분에 오랜만에 시 한 편을 읽고 생각에 잠긴다.

한껏 분위기에 취해 즐기다가 함께 다음 일정을 향해 또다시 길을 나선다.

배 위에 떠 있는 모습같은 주암정과 주암정 가는 길은 좁다

이번에는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비를 맞으며 가는 길이 재밌다.

주택과 논 사이의 길이 좁아 차가 지나가면 사람이 서 있을 수 없이 좁은 공간이라, 사람을 보면 차는 무조건 STOP, 그리고 ‘빵.’ 클락션 울리기.

민가를 스쳐 지나가다 보면 주암정의 지붕이 보인다. 주암정은 정면에서 바라보니 진짜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 앞에 연밭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주암 채익하 선생을 기리기 위해 인천 채 씨 후손들이 1944년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한다.

주암정 바위 앞에 앉아보니, 자세도 곧게 앉게 된다. 그러면서 조선시대 선비와 양반들의 삶을 그려 본다. 느긋한 마음은 경제적 여유와 풍류를 즐길 줄 아는 깜냥에서 나오는 것이다.

양조장을 개조한 산양정행소와 내부모습
막걸리를 넣고 발효시킨 버터 풍미 가득한 소금빵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는 ‘산양정행소’다.

문경시 산양면에 위치한 산양양조장을 리모델링하여 베이커리 카페 겸 소품샵으로 재생된 공간이다.

문경시의 청년지원사업으로 시작된 리플레이스 운영진이 직접 운영하는 베이커리의 빵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가마솥에 들어간 소금빵과 크림이 가득 들어간 빵은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을 자극한다. 양조장이었던 건물이 뻥 뚫리고 현대적인 감각의 가구들이 배치되어 이색적이면서도 포근한 분위기를 띤다. 베이커리와 함께 판매하는 하이볼 세트가 구미를 당긴다. 흐린 날씨와 양조장을 꾸며 만든 공간은 저절로 막걸리를 생각나게 만든다.

수제 소품샵의 아기자기한 물건들도 구매욕을 불러일으킨다. 소원을 들어주는 실팔찌와 실반지, 호롱각으로 만든 한국형 캔들워머를 내 방에 놓으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만 같다. 쉽게 볼 수 없는 가격 13만 원이 흔들리는 마음을 굳게 만든다. 여러모로 마음을 홀리는 산양 정행소다.


아침에는 그저 흐리기만 했는데, 오늘 하루가 서서히 젖어 들어 일정을 마칠 즈음에는 빗방울의 굵기가 제법 굵어졌다. 매일매일 체험하는 일정은 피로도를 증폭시킨다.

드라이빙하는 시간이 길어서 차에서 잠깐 졸기도 했지만, 떨어진 체력은 쉬이 올라가지 않는다. 아마도 전날 도파민을 많이 분포되어 몸이 지쳤나 보다.

오미자는 활기를 주었지만, 그 활기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자는 그저 지쳤을 뿐이다.

축제의 첫날은 생각보다 고요했고, 비가 오면 사람의 기운이 축 쳐진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내일은 하루 종일 비가 올 예정이다.

그래도 좋아. 오늘 밤 푹 쉬고 내일은 새로운 내가 되어, 또 다른 하루를 즐길 테니까.

오늘 먹은 오미자가 나의 피로를 가져가고 내일의 활기를 되찾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