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어 더 좋았던 문경의 하루

가은아자개장터, 문경에코월드, 오픈세트장 탐방기

by 천둥벌거숭숭이

간밤에 비가 힘차게 내렸다. 지붕으로 쏟아지는 빗방울의 소리가 그대로 느껴진다.

유난히도 변덕스러운 날씨와 함께 하는 문경의 아침이다.

아침저녁으로 과자와 빵류를 많이 먹은 관계로 오랜만에 쌀밥을 아침으로 먹는다.

편식이 심한 자도 문경에 오면 골고루 챙겨 먹게 만든다. 쌀밥에 김치, 그리고 김으로 한 끼 해결.

11시에 시작하는 일정은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을 느슨하게 만든다. 그래도 이것저것 하다 보니 벌써 나갈 시간이 된다.

가은아자개장터
문경특산물을 살린 아자개장터

차가 도착한 곳은 가은터미널 앞. 가은아자개장터 앞이 혼잡할 것을 예상하여 가은 터미널 주차장에 차를 가져갔지만, 이미 만석이다. 결국 가은역 앞으로 차는 떠났다.

아자개는 견훤의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금은 꽤 시끄러운 백종원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아자개장터에 드디어 입성한다.

지역특산물을 살린 메뉴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아자개장터 별미인 분식과 약돌고기
아자개장터 문경오미자매콤비빔국수 추천

주문하는 음식에도 각자의 취향이 담긴다. 도봉님은 문경배추쌀떡볶이 세트메뉴, 지니 님은 문경동파육덮밥, 나나님과 하쿠나님은 문경약돌 석쇠불고기, 나는 문경오미자매콤비빔국수를 시켰다.

문경배추쌀떡볶이는 생각보다 매콤하면서 시원한 맛이 좋고, 동파육덮밥은 지니 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문경약돌 석쇠불고기는 고기양이 실하나 공깃밥을 따로 시켜야 했고, 문경오미자매콤비빔국수는 매콤하지 않았지만, 오미자의 새콤함이 더해진 감칠맛에 국물까지 다 마셔버렸다.

정오가 넘어가니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여러분, 오미자 비빔국수가 맛있습니다.

든든한 식사를 하고 난 후 아자개장터를 돌아보니 5분도 안 되어 끝이 났다. 덕분에 가은성당에도 방문할 수 있었다. 악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종교의 신성함이 느껴진다. 거짓보다는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언젠간 고해성사를 꼭 해보고 싶은 곳이다.

문경에코월드 안내와 석탄박물관
석탄박물관의 주인공 광부의 사진

가은아자개장터에서 문경에코월드는 걸어서 3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입장료 만원에 석탄박물관, 거미열차, 모노레일, 옛 은성광업소 사택 전시관, 가은오픈세트장 등 여러 곳을 볼 수 있는 곳이라 꼭 가고 싶었다.

석탄박물관에 드디어 입성.

문경의 가은에는 예전 은성광산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폐광한 곳을 석탄박물관으로 만든 곳이다. 광부들의 삶, 그들이 광산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여성 광부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여성 광부들은 주로 석탄 생산 과정의 마지막 단계인 석탄과 돌을 분리해 내는 선탄작업을 많이 하였다. 주로 광부의 가족 또는 유족들이 이 작업에 많이 투입되었다. 선탄작업은 겨울이 힘든데, 장갑을 끼고 있어도 얼어붙은 석탄과 돌에 손이 달라붙기 일쑤어서 선탄장에서 오래 일한 여성 광부들은 관절로 손마디가 굵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탄광에서는 1주일을 주기로 3교대로 쉬지 않고 작업한다. 식사시간은 작업량만큼 급여를 지급하는 ‘도급제’ 방식이므로 길게 가질 수 없다. 그래서 갱내 식사는 도시락이 주류였다.

갱내 작업을 마치고 나오면 모든 작업자 얼굴이 까맣게 변하는데, 남편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내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읽다 보니 금방 관람이 끝난다. 아쉬울 뻔한 마음을 거미열차가 가져간다. 한참을 기다려서 탄 거미열차는 의외의 스릴과 어린이도 이해하기 쉬운 정보를 알려준다. 광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또 갱도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과 폐광 이후 대체되는 재생에너지로 변한 미래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은성갱도 안의 모습
은성갱도 내의 사무실 모습

다음은 은성갱도에 가서 꿈을 캐러 가는 길을 직접 체험한다. 축축하고 답답한 곳에서 쥐와 새에 의지해서 목숨을 걸고 일했던 사람들의 진한 인생사가 갱도에 그대로 담겨있다.

옛 은성광업소 사택 전시관에서는 옛날 사람들의 모형과 집을 직접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음성까지 나와 옛 정취가 물씬 풍긴다. 문경의 말투가 강원도와 비슷하게 들린다. 정겨운 옛사람들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다.

은성광업소 사택 전시관
눈물의 여왕에 나온 용두리 슈퍼

가은오픈세트장에 가는 길이 꽤 높고 멀다. 모노레일을 타기 위해 한참을 기다렸지만, 쉬이 차례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직접 걸어가게 되었다.

참가자분들이 피곤해하셔서 안시성, 요동성이 있는 2길로 향했다. 모노레일 승강장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소요된다. 제2 촬영장인 안시성과 성내마을은 안전공사 중이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고, 제3 촬영장인 요동성과 성내마을을 둘러볼 수 있었다. 초가지붕과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만들어 실제처럼 보일 정도였다. 요동성에 올라가 마을을 내려다보니 이 마을은 곧 사라질 것처럼 여기저기가 헐빈해 보인다.

다른 참가자들은 지쳐서 다음 일정인 가은역에 바로 가려고 했지만, 나는 제1 촬영장까지 보고 싶었다. 담당자님께 말씀드리고 부랴부랴 위로 올라가니 드디어 평양성과 고려궁, 고려마을과 신라마을을 볼 수 있었다. 제3 촬영장보다 윤택한 제1 촬영장을 봐서 참 다행이다.

한옥과 초가집이 산재해 있고, 마을의 중심에 가마와 건물 안에 계단이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어떠한 설명이 없어서 내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어서 더 재미있다.

촬영장인만큼 서민적인 마을 바로 앞에 궁전이 있는 이상함마저도 재밌게 느껴진다. 뜬금없는 웅장함이 그저 유쾌하게만 보인다.

올라와보길 참 잘했다. 그러나 올라올 때 너무 힘들어서 내려갈 때는 모노레일을 타고 빨리 출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 두 다리로 오르내리는 것보다 모노레일을 타고 다니는 게 더 좋다.

문경에코월드 오픈세트장2 요동성과 성내마을
문경에코월드 내의 궁궐모습

혼자 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겼으니, 이제는 일행에게 바삐 달려가야 할 타이밍이다.

예전에는 석탄을 옮기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던 가은역이 이제는 폐역이 되었다.

비어있던 역을 사람들이 다시 찾을 수 있는 카페가 되어 있었다.

음료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카페에 앉아 창의 바깥을 바라본다.

백 년도 훌쩍 넘게 세월을 버텨온 은행나무 하나가 덩그러니 역 앞을 지키고 서 있다.

사라지지 않아서 좋은 것들, 이 모든 것들이 가은역 카페에 있었다.

마지막 일정인 가은역 카페에서 먹는 어린이 주스의 맛이 꽤 고급지다. 어린이들은 좋은 것을 먹나 보다. 카페에서 쉬고 있던 다른 참가자들은 저녁의 일정을 준비하지만, 나는 지금이 딱 좋다. 오늘 하루 알차게 보냈다. 장하다 나 자신.

가은역(폐역) 내외부 모습
가은역 앞에 단 하나만 남아있는 은행나무

들어가는 문과 나가는 문의 디자인이 역사의 모습을 고증하고자 노력한 모습이 보인다.

액자에 그림처럼 있는 것은 바로 옛 시절의 기차표다.

작은 전시관 같은 가은역 카페를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이미 충분히 쉬고 대화를 나누었던 참가자들과 조우하고, 건강한 주스를 마시며 얼른 자리를 정리한다.

카페 가은역을 온전히 즐기지는 못했지만, 좋은 곳이라는 눈도장을 확실히 찍어둔다.


혼자였다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바로 오늘과 같은 날.

함께 가은아자개장터에서 지역특산물이 들어간 음식을 시켜 함께 나누어 먹는 경험.

열린 성당에 들어가 종교가 주는 신성함을 보고, 고해성사할 수 있는 고해실과 사제실을 직접 목도했다. 주로 가족과 친구, 여러 모임의 관광객들이 모여 가는 문경에코월드에 가서 거미열차를 함께 타고, 전시실을 둘러보며 각자의 기억을 공유하는 경험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정해진 일정이지만, 좋아하는 것을 더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을 기다려주는 이가 있어 특별히 좋았던 오늘이다.

함께가 아니었다면 오늘이 이렇게 좋았을까.

아침부터 오락가락했던 비와 휘몰아치던 바람이 어느새 잔잔해졌고, 해를 가리던 비구름이 사라지니 해가 비쳐 저녁이 다되었는데도 눈이 부실 지경이다.

예측불가한 하루가 이렇게 따뜻하게 마무리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내일은 드디어 기다리고 기대했던 문경새재를 걷는 날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 저녁은 완전한 휴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