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일정은 언제나 즉흥이 함께 한다. 오히려 좋아.

운강 이강년 기념관과 또 비빔국수, 명주박물관과 한국한복진흥원, 올무

by 천둥벌거숭숭이

엄청난 근육통에 잠에서 확 깼다. 8시간 등산의 여파는 쉬이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준비운동 없이 무작정 등산을 한 사람에게 밀려오는 아주 당연한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아픈 건 아픈 것이다.

일찍 일어난 김에 주흘산 등산 감상평을 써보자.

근육통보다 주흘산을 오를 때의 감정과 주흘산 이야기를 쓰다 보니 어느새 분노의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주흘산은 아주 강력한 여운을 남겼나 보다. A4용지 1장을 목표로 했던 글이 결말에 이르러서는 5장에 달했다.

문경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추천합니다. 주흘산 등산.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등산장비를 챙기시는 게 좋을 겁니다.


허벅지에 몰린 근육통은 다리를 10cm 이상 벌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리해서 걷지 않고 조용히 다니기로 했다.

첫 일정이 문희농원이다. 개미취가 아름답게 피어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많이 걸어야 하는 일정을 기꺼이 포기하고, 이장님께서 적극 추천하신 운강 이강년 기념관으로 홀로 향한다. 가은에 위치한 이강년 기념관은 논과 도로를 경계로 우뚝 서 있다. 가이드 님이 1시간 후에 돌아오겠다고 하시며, 관람이 금방 끝날 수도 있다고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나는 전시를 천천히, 여유롭게 돌아보면 되는 것이다.

박물관을 공들여 관람하는 것, 느긋하게 알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운강 이강년 버스정류장과 이강년 동상

운강 이강년은 효령대군(조선 태종의 차남)의 19 세손으로 호가 운강이다. 22세에 1879년(고종 16년) 무과에 합격하여 종 6품 선전관이 되었으나,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으로 나라가 혼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학문에 매진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더욱 어수선해진 나라 분위기와 흔들리는 민심에 운강은 1896년 가은 도태장터에서 의병을 일으킨다. 무관출신이었던 운강은 사람들을 모아 조직적으로 의병을 군대처럼 지휘하여 일제에 많은 타격을 안겨주었다. 승패의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일제에 쉬이 굴복하지 않고 자주독립을 염원하는 민초들의 강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다.

영남의 입구에서 나아가 충북과 경북, 강원도와 경기도를 아우르는 광범한 지역에서 전개된 일본 군경과의 대유격전과 산악전을 벌였다. 운강의 전략은 게릴라전이었다. 한반도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일제를 교란시킨 운강은 일제에 많은 혼란과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1908년 제천 적성산 전투에서 일제에 의해 발목에 총탄을 맞고 붙잡혀 대한제국의 법원에서 사형을 판결받는다. 1907년에 문을 연 서대문 형무소에서 최초로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운강 이강년이 직접 서술한 의병술[속오작대도]와 그의 사상적 지주 화서학

기념관의 크기가 보통 기대하는 박물관에 비해 크지는 않지만, 찬찬히 내용을 살펴보면 깊이가 있다.

구한말 조선의 상황, 사람들이 가진 시대의식, 의병전쟁의 사상적 연원이 되었던 위정척사와 그 이론의 뿌리가 되는 화서 이항로 이야기까지. 국사책을 배웠던 근현대사가 더 자세하고 우리의 삶과 가깝게 느껴진다.

격변하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에 의지할 수 있었을까. 대세에 흔들리는 나라님?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굶주린 군인? 도대체 누구 편인지 알 수 없는 관리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지켜야 했다.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나서야 하는 시대였다.

맨손으로 나와 우리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의병들을 규합하고 지휘하는 데에 무관출신만큼 꼭 필요한 사람이 바로 운강 이강년이었다. [속오대작도]에는 그의 의병작전 경험을 토대로 의병부대 전투 편제 및 전술을 연구하여 작성한 것으로, 후에 의병을 다시 일으켜 적과 싸울 때 적절히 위력을 발휘하였다.

의병대장 이강술의 저서와 필서가 많이 남아있다. 이는 그의 공적을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기 위해 지키고 보존해 온 것들이다. 왕족의 후예로써 자신이 나라를 위해 행해야 할 사명감을 가지고 병사들과 함께 전선을 내달렸던 의병 이강년을 우리는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새콤함이 주를 이루는 아자개장터 문경오미자새콤매콤비빔국수

넉넉하게 주어졌던 1시간이 촉박하게 끝났다. 전시내용이 알차고 영상은 누가 보아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져서 의병대장 이강년을 배우기에 충분하다. 문경에, 그리고 역사에 더욱 가까워진 기분이다.

겨우 첫 일정을 마쳤을 뿐인데 배가 고프다. 정말 열심히 학습했나 보다.

오늘 점심 식사 장소는 가은 아자개장터다. 나나님과 하쿠나님은 문경 민들레식당에서 백반을, 나와 지니 님은 아자개장터에서 문경오미자새콤매콤비빔국수와 김말이, 문경약돌소시지를 먹었다. 문경에서 즐기는 새콤한 맛에 중독되는 중이다. 식사를 야무지게 하고 희양상회를 구경하는 일마저도 유쾌하다. 뚝심 있는 사장님의 주문방식에 맞게 기다리다가 가게를 둘러보며 지난번에는 못 본 새로운 장소를 보게 된다. 바로 청소년 카공, 청소년들이 만화책과 다양한 도서들을 읽을 수 있고, 2 천 원에서 3천 원의 가격에 구매를 할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나 책을 보면 또 반갑다. 구매하고 싶은 책이 있었지만, 더 이상 짐을 늘릴 수 없어 다음으로 기약한다.

문경은 알면 알수록 또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게 만드는 마성이 있다.

문경 숙소 고결 스테이 곁창과 내부모습
고결 스테이 소담한 정원

자유일정 속에 담긴 문경 로컬 강의가 하나 있었다.

바로 지역체험숙소 [고결]의 주인장 이야기다.

[고결]을 만든 사람은 문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건축을 전공했던 사람들이 모여, 이미 지방에 흔하게 존재하는 빈집, 폐허를 개조해 쓸모 있는 공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선정하기 위해 전국을 누비다 발견한 문경은 그들의 눈에도 매력적인 곳이었다.

부지선정에만 6개월이 걸렸고, 문경을 담아내기 위해 많은 장인분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고결]은 숙박시설 뿐만 아니라, 문경이라는 지역을 담아내기 위한 진심이 담긴 지역체험시설로 어느새 변모해 있었다. 공간에서 나는 향과 직접 만든 어매니티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고결]을 찾는 이에게 문경을 문경답게 기억하도록 만든다. 숙소 내부에는 문경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숙소 고결 어매니티와 문경 작가 작품

곁창으로 만든 한지문으로 통해 들어오는 햇볕, 단단하고 고풍스러운 찻잔,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걸어놓은 천, 문경과 고결을 생각하고 만든 그림을 방 안에서 볼 수 있다.

넓은 창으로 바라보는 정원이 소담하고 정겹다.

정원을 이루는 돌담은 시멘트로 접합하지 않고 오로지 지역의 돌을 쌓아둔 모습이다.

평소에 작업하던 사람들이 아닌, 온전히 이 지역 사람들과의 협업은 문경을 그대로 담아내기에 최적의 선택이었다.

특히 조식서비스를 다예가 선생님과 함께하는 티 클래스로 변경한 것이 신의 한 수다. 문경 도기를 이용해 다양한 차를 맛볼 수 있고, 느긋함이 주는 안정감은 이용객들에게 휴식이란 무어인지 정확히 알려주는 포인트가 된다.

여유로운 게스트하우스와는 또 다른 매력의 고결 스테이였다. 지역체험형 숙소.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만들어내는 무한한 창조성을 흡수하고 언젠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이 저장해 둔다.

매일매일 문경에 또 와야 하는 이유들이 하나씩 늘어난다.

상주 명주박물관과 명주로 만든 작품들

잠깐 카페에 들러 모두의 카페인을 충전하고 명주박물관으로 향한다. 명주박물관은 상주시 함창읍에 위치해 있다. 함창읍은 문경시 점천동과 매우 근접해 있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생활 경계권이 모호해 상주와 문경을 자주 넘나 든다. 개방적인 도시, 함창과 점촌, 그리고 문경이다.

함창 명주는 천연섬유인 명주를 전통방식으로 생산하는 유일한 국내 최대 생산지역이다. 현재 함창명주는 손으로 짜던 베틀의 원리를 이용, 전통 명주폭을 유지하여 토속적인 투박함, 우아한 고전미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민감하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움을 유지 중에 있다. 천연염색과 감물 염색을 이용한 명주 스카프와 명주한복을 생산하여 전국적으로 유통되어 우리나라 전통명주의 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베틀로 명주짜기와 누에 똥따기

박물관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넘친다.

차를 먹다가 우연히 찻잔에 빠진 누에고치에서 실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그 실을 이용해 옷을 지어 입었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이후 평소에 입던 옷보다 부드러워 착용을 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갔다.

명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우리나라 한지를 이용해 만든 인형을 모형으로 귀엽게 만들어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누에고치를 선별해 실을 풀고, 명주실 날기를 통해 더 단단하게 만들어 베틀을 이용해 직접 직물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옛사람들이 어떻게 고안해 냈을까. 언제나 똑똑한 사람은 존재하고, 그들의 발명에 의해 지금 우리가 이토록 편하게 살고 있음을 또다시 깨닫는다.

APEC기념 한복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
염색은 사용하면서 변하는 색까지가 완성이다

자유여행이지만, 함께하는 가이드의 추천하는 곳도 가봐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한국한복진흥원이 명주박물관 바로 뒤에 위치해 있었다. 말하지 않았다면 못 가봤을 정말 멋있는 곳이다.

현재 1층 로비에서 APEC을 위한 한복대전을 실시해, 8 작가의 작품을 선정, 그 전시의 마지막 날이었다.

APEC참가국의 국빈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최종 1 작품을 이미 선정하였단다. 어떤 작품이 간택되었을까.

한국의 멋을 담아야 하고, 한글을 사용해야 했던 조건을 아주 영리하게 풀어낸 작가들의 작품이 한눈에 보아도 마냥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귀한 옷을 선물 받는 사람들을 얼마나 좋을까.

또한 명품관에서 진행되는 '백송천연염색지도사협회 정기회원전'의 전시 첫날이기도 했다.

천연의 색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움과 강인함이 사람의 손으로 표현된다. 얇디얇은 명주 천에 금색 실로 수를 놓은 사람, 염색에 실패해 좌절하였다가 그 위에 다른 색을 입혀 호랑무늬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

힘든 과정에도 굴하지 않고 기어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의지와 뛰어난 상상력의 산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순간이다. 또한 이 모든 작품을 만든 작가들을 가르친 선생님의 혜안과 실력이 역시 제일 뛰어나 보였다. 힘들게 제 손으로 만든 작품을 액자화 하는 것도 좋지만, 무릇 염색이란 것은 쓰면서 자연스레 세월의 색을 담아내는 것이기에 입고 쓰는 것까지가 염색의 과정이라고.

그게 맞는 말 같다. 힘들게 만들었어도 써야 완전한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나 또한 힘들게 만들었다고 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다 써버려야겠다는 생각이, 집안에 고이 모셔둔 몇몇 수제품들이 눈에 선하다. 내가 쓰지 못하면 미련 없이 선물하자. 그렇게 또 비우고 다른 것들로 채우고. 그게 삶이지 싶다.

문경 예쁜카페 나무창고
목공 카페 나무창고 프랑켄슈타인

즐겁게 전시관을 나와 이제 예쁜 카페를 향해 달린다.

처음 예정했던 곳이 임시휴업이라, 내일 가기로 했던 곳으로 달려 도착.

9월 말이지만, 이미 핼러윈 파티가 시작된 곳이다. 해골과 프랑켄슈타인, 호박모형의 조명과 나무로 만든 작품들이 어우러진 멋있는 공간이다.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봐야 하지만, 곧 저녁시간이 다되어 카페 구경만 하고 나왔다. 10월에 문경으로 다시 와서 즐기고 싶은 공간이다.

문경 수제 햄버거 맛집 올모

[카페 나무창고]에서 나와 걸어서 영신숲으로 향한다.

오늘만은 기필코 영신숲을 걸으리. 하지만 수제버거 [올무]는 맛집으로 소문나 재료소진이 빨리 되기 때문에 그곳으로 먼저 향한다.

열심히 조사한 지나 님의 추천으로 나 또한 치즈버거(8,500원)와 감자튀김+음료세트(4,000원)를 주문한다.

문경사랑상품권을 이용하면 15% 할인되니, 문경에 사는 사람이나 문경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면 굉장히 좋을 것이다(총 결제금액 10,625원).

수제로 만든 고기패티의 맛이 일품이다. 왜 재료소진이 일찍 끝나는지 이해가 되는 맛이다.

우리 뒤로 3팀의 손님이 들어왔고, 곧 재료소진이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집임에도 생산량을 늘리지 않고 할 만큼만 하는 뚝심, 장사를 오래 이어 나가기 위한 사장님의 혜안이다. 그래서 먹는 이도 만족하고 판매하는 이도 남는 재료 없이 끝나는 완벽한 앙상블이 [올모]에 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감자튀김과 찍어먹는 소스가 일품이다. 채소가 없는데 술술 잘 넘어가는 햄버거는 처음이다.

그리고 햄버거를 먹는 동안 폭우가 내려 결국 영신숲 걷기는 오늘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젖지 않은 행운을 맛본 순간이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곳이 무궁무진하게 포진해 있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소중한 순간들을 매일 맞이하고 있다.

운강 이강년 기념관부터 시작된 역사의 길은,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장터에서 두 번째로 먹은 문경오미자새콤매콤비빔국수와 함께 함창의 명주, 그리고 그 실로 만들어낸 직물에서 완성되는 한복까지.

영웅은 이름을 남기지만, 진정한 명인들은 언제 어디서든 존재했고, 그들에게서 이어져온 것들이 지금에까지 존재하는 것이다.

장인정신. '나만 아니면 돼.'라고 외면하는 요즘의 세태와는 결이 다른 어른들의 굳건한 마음이 담겨있는 문경과 함창을 제대로 배워가는 중이다.

지키고자 하는 마음들을 나 또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자유여행은 언제나 즉흥을 유발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좋아.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해도 덤덤히 받아들이고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 그리고 뚝심과 강단을 지키며 강직한 사람들의 궤적을 쫓아보며 앞으로의 나는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 깊게 고찰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매일매일 배움이 있어 언제나 배부른 문경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