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생태미로공원과 남부떡볶이, 웅상 All That Jazz
잠자리를 가리는 편이다.
하지만 문경에서는 언제나 깊은 밤을 보내는 중이다.
매일매일 외출하고, 다녀와서 혼자 보는 일기가 아닌, 모두가 보는 일지를 쓰다 보니 매일을 알차게 쓰고 있다.
누우면 바로 잠이 들고, 새벽이면 기가 막히게 일어난다.
항상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유튜브 영상이나 쇼츠를 보며 늦잠에 들었는데, 타인과의 잠자리는 휴대폰을 보지 않고 일찍 잠드는 버릇을 만들어 주었다.
언제나 좋은 일이 일어나는 문경에서의 아침이 반갑다.
오늘은 자유일정 3번째 날.
다른 이들은 문경도자기박물관과 오미나리 체험을 간다고 했지만, 나는 홀로 문경생태미로공원 가는 일을 택했다.
여행코스를 짜기 위해서도 있지만, 문경새재라는 거대한 문화유적 공간에는 정말 볼거리가 많았다.
벌써 문경새재를 2번이나 다녀왔지만 보지 못한 곳이 2곳이 있다. 문경생태미로공원과 오픈세트장이다.
오픈세트장은 문경새재 달항아리 야행 때 가기로 했으니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나의 동심과 도전의식을 고취시키는 미로공원이 좋겠어.
밤새 내린 비는 정오까지 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미로공원에 도착할 즈음되어서는 그쳐 있었다.
비옷까지 준비했지만, 이것 참 좋은 일이구먼.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체험한 미로공원 이후로 처음이다.
나의 동심을 물씬 자극하는 곳. 머릿속의 계산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건강한 두 다리에 의지 되는 곳.
그 첫 번째 관문인 도자기 미로에 드디어 입성한다.
예전에는 유료였지만, 지금 현재는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도자기 미로에서는 중간중간 재미있는 모형물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무엇이 나올 것인가.
간밤에 내린 비로 길이 축축하고 곳곳에 물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다.
이용객이 별로 없었는지, 나를 맞이하는 것은 부지런한 거미의 거미줄이었다.
도자기 미로 공원의 나무들이 빽빽하지 않고 숭숭 비어있다. 잘 관리되지 않은 모습이다. 나무들이 어디 아픈가? 덕분에 나는 미로 찾기가 더 수월했다. 막다른 길이 나무 사이로 보였기 때문이다.
헤매다가 만난 도자기 조형물이 반갑다. 도자기 공원에 가서 도자기를 보는 것은 내가 잘 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생각보다 길고, 갈랫길이 많고, 흥미롭다.
길의 중간에서 만난 움막에는 새재와 사기장이 도자기 조각으로 만들어져 있다.
문경새재와 도자기는 문경이 자랑스러워하는 소중한 자원이다.
처음에 이곳에 왔다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제 10일이 지난 지금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문경은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곳이며, 사람들이 느긋하고, 자신이 가진 것과 지켜야 하는 것을 알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곳이다.
첫 번째로 만나는 도자기미로는 약 10분 만에 성공. 뿌듯하구먼. 혼자서도 미로를 정복했어.
생태공원을 지나 만나게 되는 연인의 미로. 철저하게 독파를 해주겠다.
도자기 미로와 결이 비슷한가 싶다가도 금세 만나는 하트 모형에 압도된다.
사랑이 넘치는 연인의 미로다. 순간의 감정과 바람을 담은 문구는 앞으로도 영원할까?
확신이 없기에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사랑에 참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각자의 순간에 최선인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곳에서 누군가를 비난하기보다는 그냥 사랑을 하는 것이 참 좋을 텐데. 막 퍼주어도 다시 샘솟는 것이 사랑 아닌가.
드디어 진짜가 나타났다.
돌미로는 완벽히 내 스타일이다. 물론 입구의 조형물이 내 스타일인 것도 맞다.
짓궂은 아이의 허술한 뒷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함을 선사한다.
돌담이 높아 옆 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정말로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다.
심지어 여태껏 들리지 않았던 효과음까지 으스스하게 들린다.
마치 누군가 뒤에서 쫓아오고, 나는 혼자 이 미로를 독파해 나가야 하는 순간에 처한 것처럼.
돌미로는 돌담의 압박감을 주지만, 이미 2개의 미로를 독파했기에 나는 미로에 익숙해졌다.
헤매지 않고 5분 만에 돌미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3번째 미로에서 느껴보는 첫 해방감이다. 그리고 미로를 잘 해쳐 나왔다는 뿌듯함까지 안겨준다.
돌미로의 출구 바로 앞에는 문경새재 생태문화갤러리가 위풍도 당당히 서있다.
그렇다면 들어가 보는 것이 인지상정.
문경미술협회 동행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문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여유롭게 관람 가능하다.
한지에 수묵화로 그린 그림은 개나리의 노란색으로 뒤덮였다. 하늘재를 그린 걸까. 노랑의 포근함이 보는 것만으로도 따스함이 느껴진다.
자기의 도시답게 구워 만든 '너와 나의 이야기'라는 작품도 인상적이다.
손으로 모양을 잡고, 조각칼로 모양을 내고, 색을 칠하여 굽고.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작품들은 말없이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미로공원에 들렀다가 감상하는 작품의 세계의 폭이 넓고 감명 깊다.
미술작품들을 보면서 충분히 휴식하였나 보다.
마지막 관문 생태미로공원에서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미로가 쉬웠는지, 혹은 미로에 익숙해진 건지.
생각보다 일찍 완료하여 기분 좋은 어른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이었지만, 30분 만에 미로공원이 끝나버렸다. 오히려 좋아.
미로공원 전망대에 올라 백두대간의 산자락을 구경하고 하늘을 본다. 먹구름이 잔뜩 하늘을 덮고 있지만, 그조차도 오늘의 한 부분이다. 마음껏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가야지.
옛길박물관 앞에 있는 조형물도 자세히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휴식'. 열심히 움직인 자에게 정말 달콤한 순간이다. 한반도의 중심지로 많은 이들이 문경을 지나다녔을 테지만, 특히나 많이 오고 갔을 보부상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요즘같이 상거래가 편리한 시대와는 다르게 예전에는 사람이 직접 이고 지고 나르며 필요한 것을 말하면 사다 주기도 하고, 가치에 맞게 물물교환 하기도 했다.
한참을 걸어야 했던 그들에게 경사스러운 곳에서의 달콤한 휴식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주었을 것이다.
나 또한 문경에서 기쁜 소식과 경사스러운 희망을 나의 내일에 담아 힘차게 하루를 살아가야지.
열심히 걸은 자, 먹으라. 먹어야 산다.
오늘의 점심은 남부 떡볶이. 문경에서 제일 유명한 떡볶이를 드디어 맛보는 날이다.
같이 먹자고 권해주신 가이드 도미닉 님과 도봉님.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
튀김을 마구 접시에 올려 담는 재미, 특히나 고기튀김이 맛있는 집이라고 한다. 현지인 추천 맛집은 언제나 행복감을 선사한다. 떡볶이 2인분과 순대 1인분. 식탁을 채우기에 더없이 충만한 메뉴들이다.
떡볶이를 한 입 먹자마자 옛 추억이 떠오른다. 남부 떡볶이는 처음 먹지만, 익숙한 맛이 난다.
학창 시절, 학교 앞 분식집에서 먹던 바로 그 맛이다. 어떻게 다른 집에서 이토록 똑같은 맛을 낼 수 있을까.
비결은 방앗간에서 만든 다대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혼자서는 절대로 이 맛을 낼 수 없기에 감사히 먹는다. 문경에는 내가 좋아하는 맛집이 정말 많다.
심지어 곁들여 먹는 어묵 국물의 맛이 일품이다. 술을 먹지 않았지만 해장되는 기분까지 든다.
추억의 떡볶이와 뜨끈한 어묵국물은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근래에 이렇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적이 얼마나 있던가. 다시 한번 함께 해준 도미닉 님과 도봉님께 축복의 감사를.
그다음 나의 일정은 휴식과 문경에서의 1박 2일 여행 추천 코스 짜기이다.
노트북이 한 대여서 작업하기 신경 쓰인다는 나나님과 하쿠나님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내가 먼저 PPT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다른 분들은 문경을 더 돌아보기로 하셨지만, 등산의 피로가 아직 풀리지도 않았고, 그냥 여유롭게 쓰는 것이 좋아 일부러 그렇게 선택한 것이다. 오히려 좋아.
오랜만에 만들어보는 PPT가 어색하다. 그래도 해야지. 하면 하는 것이 우리 한국인의 특성 아닌가.
갈 곳을 생각해 보니 문경에서의 여행은 1박 2일로는 터무니없이 모자라다.
그래서 함께 와서 따로 보고 경험을 공유하고, 다음을 기약하게 만드는, 또 올 수밖에 없는 여행 코스를 만들어 본다. 전문가가 아니니, 부담감을 지우고 나의 개성을 담아 만든 1박 2일 코스를 사람들이 좋아해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득 담는다.
겨우겨우 PPT를 완성하고 조금 쉬고 나니, 또 나갈 시간이다.
대망의 '웅상 All That Jazz'공연을 보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쿠나 님이 가고 싶다 말하여, 가이드 도미닉 님이 새벽부터 나가 줄을 서서 표를 구해주셨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그 귀한 공연이다.
'웅상'은 한국 재즈를 대표하는 뮤지션이자 아티스트, 장인이자 진정한 가수다.
문경에서 나고 자라 문경 홍보대사인 '웅상'을 드디어 만날 시간이다.
장소는 문경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표 값은 3,000원.
온라인 예매는 2분 만에 매진, 오프라인 예매는 1번으로 받으신 분은 발권 전날부터 줄을 서 계셨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득 찬 예술회관은 오랜만에 본다. 그만큼 웅상은 문경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계셨다.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관객층이 그녀의 파워를 입증하고 있었다.
정말 군더더기 없는 공연이었다.
그녀의 의상은 눈이 부셨고,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재즈를 마음껏 선보이셨다.
완벽한 라이브는 기본이고, 재즈는 가수보다 연주가 좌우한다는 말처럼, 연주가들의 실력이 음악을 잘 모르는 나에게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게스트로 나온 김장훈 가수의 노래도 꽤 괜찮게 들었다. 올해 특히 멋진 공연을 위해 금연을 실천하고 계시다는 장훈님의 라이브와 쇼맨십에 흠뻑 빠졌다. 백숙 같은 의상도, 발차기도,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곡을 부를 때는 눈물도 약간 흘렀다. 진심은 전해지는 것이다. 그 마음을 나는 느꼈던 것 같다.
색소폰과 대금의 앙상블, 특히 10년 넘게 판소리 공부도 같이 하셨다는 '웅상'의 노래실력은 계속해서 일취월장하는 듯하다. 이미 재즈의 대가의 반열에 들어섰음에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무대에서 보인다. 노력하는 사람은 빛이 난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김추자의 봄비, 정훈희의 안개, 쑥대머리까지. 익숙한 음악을 들으니 평소 어렵게 생각했던 재즈가 가깝게 느껴진다.
음악의 장르를 넘나드는 웅상만의 깜냥에 흠뻑 빠진 순간을 한껏 즐겼다.
표를 끊어주신 도미닉 님, 제의해주신 하쿠나님, 안전하게 귀가시켜주신 도봉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정말 좋은 시간 즐기고 돌아갑니다.
2주간의 문경살이에도 끝은 온다.
자유일정의 시간이 아름다운 공연으로 끝나 미련이 없다.
문화의 도시 문경의 매력은 한도 끝도 없다.
많은 이들이 찾는 문경새재는 하루를 온전히 다 써도 돌아보기 힘들 만큼 넓고 크다.
문경새재, 주흘산 등산, 옛길박물관, 문경생태미로공원, 문경새재 생태미술갤러리. 총 다섯 곳만 살짝 맛보았을 뿐이다. 문경새재를 아우르는 산은 하나가 아니다.
문경에 또 와야 하는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추억을 지켜주는 남부떡볶이는 한 박스를 사서 가져가고 싶은 맛을 나에게 선물했다.
거기에 덧붙여 어묵국물은 필수다. 의사들이 선정한 가장 피해야 할 음식 1위가 떡볶이이지만, 나는 떡볶이 없이는 못 삽니다. 그렇다면 맛있게 떡볶이를 먹고 열심히 운동하겠습니다.
공연은 매일 있는 일이 아니다. 문경살이 일정에 맞게 공연이 있었고, 또 표를 구해주신 귀한 분이 있기에 좋은 시간을 보냈다. 문경에서의 매일이 기쁜 소식이며, 경사스러운 일이 계속된다.
문경의 오늘은 미로처럼 복잡했고, 떡볶이처럼 포근했으며, 재즈처럼 자유로웠다.
이제 오늘 밤이 지나면 단 두 밤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문희경서. 문경의 밤은 달콤하고 느긋하며 내일의 설렘을 안겨다 주는 선물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