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에 오면 주흘산을 가야지

해발 1106m 최고봉 영봉은 등산보다 하산이 진수다

by 천둥벌거숭숭이

문경에서 매일 보는 산이 있다.

바로 주흘산이다.

드디어 주흘산 등산을 하는 날이다. 문경새재를 다녀온 지 며칠도 되지 않아 바로 간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환절기의 날씨는 언제나 변덕스러워 오늘로 결정되었다. 등산은 아침 일찍 하는 것이 좋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그동안 간간히 등산을 했지만, 소요시간이 6시간인 등산을 처음 하게 되어 더욱 설레는지도 모른다.

무더운 여름을 피해 4개월 만에 하는 등산을 잘 해낼 수 있겠지?


평소보다 일찍 눈을 뜨고, 공유주방으로 달려가 계란부터 삶는다. 그레놀라에 우유를 야무지게 말아먹고, 어제 발대식에서 남은 롤케이크 조각들을 해치운다. 식욕보다 생존욕이 앞선 배 채우기를 완료한다.

산에서 먹을 계란은 공들여 반숙으로 만들었다. 텁텁하게 익은 계란 노른자도 맛있지만, 산에서는 부드럽게 먹는 것이 최고다. 7시 40분에 창구망구님이 오셨고, 편의점에 먼저 들러 김밥과 주전부리들을 야무지게 구매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이다. 생수 500ml 두 병까지 가방에 넣으니 이미 돌이다.

이렇게 등산을 가게 될 줄 알았다면 백팩을 챙겼을 테지만,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한다. 에코백이 오늘 내 등산 메이트다. 좌우로 바꿔메며 오늘 하루 잘 지내보자.

주흘산 등산의 시작점. 제 1관문 주흘관

며칠 전에 온 문경새재가 이미 익숙하다.

8시 20분 등산 시작. 오늘 날씨가 마치 등산을 반기는 듯, 하늘은 높고 구름이 마치 솜이불 같이 문경새재를 덮고 있다. 선선해서 등산을 하는데 더욱 힘이 난다.

꼭 가고 싶은 문경미로공원을 지나며, 등산하고 힘이 남으면 미로 공원에 가야지 다짐한다.

이 생각은 나중에 쓸데없는 다짐이었다는 것을 혼자 생각한다.

절대로 가볍게 볼 산이 아니다.

새원마을에서 바라본 주흘산

주흘산은 문경의 진산(鎭山)으로 문경을 지켜주는 '우두머리 의연한 산'이다.

진산은 도읍지 혹은 각 고을의 뒤에 있는 큰 산으로, 나라나 마을을 지켜주는 주산(主山)이다. 주흘산은 고려 공민왕 재위했던 시절, 몽골군을 피해 안동으로 향할 때 왕이 머물렀던 산이라고 하여 주흘산이라고 불린다는 유래가 있다.


첫날 문경에 막 도착했을 때, 마을 이장님이 주흘산을 보며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전국의 모든 산이 임금이 있는 한양 쪽을 향하고 있는데 유독 문경 주흘산만이 돌아 앉아있다는 이야기.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자 전국의 산들이 주산이 되기를 바랐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주흘산이 부랴부랴 쫓아가다가 삼각산(현 북한산)이 주산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고, 낙심하여 삼각산에 돌아 앉아 아래쪽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주흘산이 주산은 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하는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아래쪽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가 조총부대를 이끌고 한반도를 침략해 많은 피해를 입은 사실이 있지만, 이는 요새를 전략적으로 이용하지 못한 인간의 잘못이지, 주흘산은 잘못이 없다고 한다.

조령천과 여궁폭포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주흘산의 등산로는 유독 재미있는 코스가 많다.

산길을 유유히 걷다 보면 만나는 여궁폭포. 전날 내린 비 덕에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폭포수가 힘차게 느껴진다. 여성의 생식기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여궁폭포는 습하면서도 짙고 신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문경새재에서 만날 수 있는 폭포와 조금은 결이 다른 폭포다. 주로 넓은 바위에서 부드럽게 아래로 흐르는 폭포와는 떨어지는 물줄기가 얇지만 강한 힘이 느껴진다.

오늘 오지 않았으면 보기 힘들었을 분위기의 폭포를 보며 좋은 시작의 기운을 느낀다.

가파른 등산길, 조령천 위를 걷는 다리가 많은 조흘산 등산코스

시작부터 꽤 높은 경사도와 산길 옆으로 보이는 다양한 모양의 바윗돌과 아래로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는 자연의 위대함을 알려준다. 여름에 이곳으로 와서 바위에 마냥 누워만 있어도 해방감을 만끽할 것만 같다.

물 위를 건너기 위해 이곳저곳에 설치된 아치형 다리를 걷는 것도 좋다.

무흘산은 문경 사람들에게, 혹은 산악인들에게 사랑받는 산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낀다.

등산의 초입부터 이렇게 다양한 풍경들을 보게 되니 등산이 재미없을 리가 없는 것이다.

등산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시작된 후부터 힘들기 시작한다. 그렇지. 뭐든 쉽게 생각하고 판단 내리면 안 된다.

저질체력이 벌써부터 발동된다. 역시 운동은 꾸준하게 해야 체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주흘산은 쉬이 자신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차근히 부지런하게 올라가야지 겨우 자신을 열어주는 것이다.

조흘산의 중반에서 만나는 혜국사
혜국사의 전경이 유난히 아름답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혜국사가 얼마나 반갑던지.

가방을 의자에 두고 하늘을 바라본다.

오늘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구름마저 한 편의 그림 같다.

신라시대 체징이 창건하였고, 창건 당시의 이름은 법흥사였다. 고려 말 홍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민왕이 이곳으로 피난하였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 절의 승려들이 승병을 육성하며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주흘산의 중턱에 위치한 혜국사는 주변의 거친 협곡 사이에 위치해 있어 오고 가는 등산인들에게 휴식의 장이자 등산객들에게 물을 내어주는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공존한다.


반드시 이곳에서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이제 산을 올라가는 길의 1/2를 온 것이라는 오늘의 가이드 창구망구님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산은 더욱 나를 고난과 역경에 빠뜨릴 거란 사실을.

오래 산 나무들이 쓰러진 길 위를 걷는 등산, 903계단은 죽을맛이다.
주흘산 주봉 직전에 만나는 절벽과 절경

산을 오를 때는 반드시 백팩을 준비해야 한다. 집에서부터 가져오지 않은 나는 에코백을 이리 메었다 저리 메었다 하며 가까스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경사도가 더욱 높아질 때마다, 발 디딜 곳이 높이 있을 때마다 체력은 뚝뚝 떨어지고, 산 밑에서부터 안고 왔던 가방을 내던지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만난 903 계단은 눈물날만큼 반갑지도, 원망스럽지도 않고 그저 무서울 뿐이다.

이미 다리의 체력은 혜국사에 두고 온 터였다.

손잡이에 의지해 위를 보지 않고, 앞만 보고 하나하나 올라간다. 300 계단에 한 번씩 쉬어가면서. 포기하고 싶던 순간 뒤를 돌아보면 보이는 풍경은 내가 지금 얼마큼 높은 곳에 와 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높은 고도와 한껏 가까워진 하늘이 증명한다.

이래서 내가 등산을 한다. 한 번하면 끝까지 가야만 하는, 포기가 쉬운 자에게 오롯이 자연의 힘으로 등을 밀어주는 등산을 할 수밖에 없다.

주흘산 정상석과 별미인 경양식 등심돈까스 김밥
주흘산 주봉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한국의 산지와 인간의 삶

옆에서 창구망구님이 얼마만 더 가면 된다. 끊임없이 위로와 희망을 주신다. 물론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는 희망의 끈을 붙잡고 없던 힘을 쥐어짜본다.

올해 등산이 처음이라는 지니 님의 체력이 부럽다. 그래도 저질체력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산을 오르고 있는 나 자신 칭찬해.

완전히 정신줄을 놓기 직전에 드디어 첫 번째 목표였던 주흘산 주봉에 도착.

문경에 있는 산들보다 더 높게 위치한 주봉에서 바라보는 산맥과 그 안에 안전하게 보호받는 마을을 바라보는 조망은, 이제까지 힘들었던 순간들을 깔끔하게 잊게 만든다.


천하의 절경이다. 이렇게 힘든 등산을 하는 완벽한 이유가 되어주는 경치다. 자연의 힘은 위대하고 그 안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력이 함께 느껴진다. 반드시 사진 많이 찍어가야지. 소중하고 귀한 순간을 눈과 마음으로, 사진으로 많이 저장한다.

그 위에서 먹는 김밥이 어찌나 꿀맛이던지.

산 위에서 먹는 경양식 돈가스 김밥의 맛은 어떤 산해진미보다 뛰어난 별미였다.

산을 오른 지 4시간 만에 맞이하는 행복의 시간.

주흘산 최고봉 영봉과 영봉에서 바라본 풍경

분명 산을 오르기 전에는 소요시간이 6시간이라고 했지만, 4시간이 걸렸다. 역시 쉽지 않은 산이었어.

하지만 바로 하산하지 않는다. 주흘산의 최고봉 영봉까지 올라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주봉에서 영봉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다. 산맥을 타고 걷기 때문이다.

이제 페이스메이커는 지니 님이 돼버렸다. 등산에 익숙하지 않지만, 일정한 속도감이 우리를 안내하기에 제격이다. 지니 님은 아마 여기서 적성을 찾지 않았을까.


최고봉을 오르는 길은 쉽지 않다. 거친 바위와 높은 경사도는 쉬이 숨을 헐떡이게 만들지만, 페이스메이커의 안정감 있는 속도감이 우리를 지배한다. 고로 느리지만 안전하게 최고봉 영봉을 만날 수 있었다.

주변에 높게 자란 나무들로 인해 조망이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최고봉까지 올랐다는 뿌듯함이 차오른다.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이 힘든 여정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만날 고난 앞에서 나에게 힘을 줄 것이다.

조흘산 산악인의 코스는 물을 건너야합니다

10분 정도를 쉬고 즐거운 하산길에 오른다.

산은 오르는 일보다 내려가는 일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영봉에서 문경새재 2 관문으로 향하는 길은 내가 이제껏 다녔던 산들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에 속한다.

길에 굉장히 가파르고 발 디딜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힘든 길을 사람들은 어떻게 오고 갔을까.

모두들 강하게 휘청거리다 몇 번씩 미끄러지고, 발목이 꺾이고. 산에서 미끄러지는 일은 생사를 오고 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런 길이 약 1시간 이상 이어졌다. 상상 이상의 힘든 길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노력했지만, 정상에 오르기 위해 다 쓴 체력과 힘이 풀려버린 다리는 내 맘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지형지물을 이용해 바위, 나무를 붙잡고 내려가기를 한 세월. 그리고 만나는 시내에는 징검다리처럼 바위들이 있지만, 간밤의 비로 물이 불어 발 디딜 곳이 없다.

함께 걷는 창구망구님은 돌 위를 걷다 미끄러져 물에 빠지기도 했다. 우리가 영봉에서 내려가는 코스는 등산코스가 아니라 산악인의 코스였다. 결코 쉽지 않다.

부산의 산에서 흔히 보던 돌바다와 부산에서 보기 힘든 냇가를 지나는 일, 징검다리는 생각보다 튼튼하지 않고 물을 머금은 바윗돌은 굉장히 미끄럽다. 평평한 평지가 그리워지고 굉장히 보고 싶은 순간이다.

뭇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꽃밭서덜과 야생화

힘든 코스인 만큼 볼거리가 풍성하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꽃밭서덜이다.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있는 탑들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꽃밭서덜은 너덜지대(암석들이 절편모양으로 조각난 지역)이어서 탑을 쌓기 좋은 돌들이 많은 곳이었기에 다른 곳보다 조성되기 쉬었을 것이다.

누가 이곳에 언제부터 돌탑을 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 오래 살고 계신 어른들 말에 의하면 근대사 이전부터 만들어졌다고 추정할 뿐이다.

수 십 년 된 물박달나무와 진달래, 그리고 다양한 야생화와 함께 피어나 꽃밭서덜이라는 예쁜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이름 모를 이들의 수많은 염원이 담긴 돌탑과 꽃들이 절경을 이루는 꽃밭서덜이다.

제 2관문 조곡관과 산불됴심 표석
평일 오후 문경새재는 평온하다

오매불망 나타나기를 기다렸던 제2관문, 조곡관은 진짜 눈물 나도록 반갑다.

문경새재를 오르고 내릴 때는 쉬이 끝이 났지만, 이미 풀린 다리로는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전동차를 타고 싶었지만,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끝까지 걸어서 완주하기로 한다.

몸은 걷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숙소 한편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몸이 힘들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이 제일이다.

4시 20분. 제1관문 주흘관을 만난 시간이다. 등산시작 8시간 만에 만나는 출발지가 눈물겹게 반갑지만, 내 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서 흘릴 눈물 따위는 없지.

문경약돌한우 타운은 맛집이다
육회비빔냉면은 별미 중의 별미다

점심으로 김밥을 아주 맛나게 먹어서 저녁 생각은 없었지만, 모든 체력을 소진하였고, 똑똑한 ai가 오늘 우리가 주흘산에서 소비한 칼로리가 2천이 넘는다고 전하여 부랴부랴 저녁으로 먹을 메뉴를 이미 선정했다.

현지인 추천 맛집, 문경약돌한우타운에 가서 육회비빔냉면을 먹는 것.

아무리 맛집을 찾아보아도 현지인 추천 맛집만큼 믿음직한 것은 없다.

차로 날듯이 달려간 문경약돌한우타운에 앉자마자 육회비빔냉면 3개를 주문했다. 힘들어 보여 넉넉하게 주셨다는 점원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 내 눈앞에 먹을 것.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한다.

약돌 육회라 그런가 더욱 야들야들, 부드러움이 마치 구름과 같다.

새콤달콤한 비빔양념 또한 일품이다. 겨자, 식초 안 넣어도 맛있는 냉면을 오랜만에 먹는다.

함께 서빙되는 육수는 한 입씩 먹다가 중반 즈음에 냉면 그릇에 부으면 다시 물냉면이 된다.

주흘산 등산 후에 먹는 육회비빔냉면의 맛을 절대 잊지 못할 별미 중의 별미다.


숙소로 돌아와 풀린 다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샤워를 하니 체력 점수 0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리를 위로하고 쉬다가 다시 사랑채로 나와 발목과 무릎에 얼음찜질을 한다. 주물러도 소용이 없다. 그저 아프다. 한동안 이 근육통이 오래갈 것만 같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해냈다는 뿌듯함과 쉽게 볼 수 없는 절경이 가득 담겨있다.

주흘산 등산은 문경을 방문한 사람 중 건강한 사람이라면 꼭 체험해 보아야 할 귀한 추천 코스다.


막막한 현실에 부딪힐 때 중요한 것은 건강한 체력이다.

쉬이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잃지 않고 사는 것, 그것이 등산으로 체력을 단련하는 이유가 아닐까.

문경을 찾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픈 여행지다.

주흘산 등산은 결코 당신을 쉬이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당신에게 집중하고 앞으로의 나를 생각한다면 상상 그 이상의 성취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흘산을 오를 때는 본인이 생각하는 등산필수품을 반드시 챙길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을 최소한 1L 이상 챙겨가야 하는 것이다.

땀과 안 좋은 기억과 저질체력을 모두 주흘산에 주고 가볍게 훌훌 날아왔다.

주흘산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