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미로시장 계란만두는 나의 추억이다
나는 항상 친가보다 외가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걸어서 3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감, 또래의 사촌 형제들, 자주 만나는 사람들보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 만날 수 있는 외가의 간절함이 더 컸다.
엄마가 유독 나이 터울이 꽤 나는 집의 막내이기에 사촌들의 나이가 나보다 훨씬 많았다. 코리안 장녀는 장녀가 아닌 순간을 꽤나 즐기는 편이다. 귀염 받는 막내들의 특권을 외가에 가면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어린데 다들 어른 취급하는 것에 질려했던 것 같다.
미로 같이 언제나 헤매이다 찾아가던 나의 외가에는 역사가 담겨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몇몇의 특권을 누리던 사람들을 제외하고 거의 모두가 가난했던 대한민국이었다. 아픈 남편을 대신해 살림과 경제활동을 도맡아 했던 어미는 한없이 착한 사람이었다. 욕심이 많았던 이웃집 여편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못하고 그저 식구들 먹일 밥만 걱정했던 사람의 자식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자식이 꽤 많았다. 똑똑한 첫째 아들, 경제관념이 뛰어났던 둘째와 셋째 아들, 사고 치고 다니기 바빴던 넷째 아들, 그리고 다섯에 들어선 딸과 막내딸. 누구를 미워할 틈 없이 그저 돈을 벌어먹을 것을 사야 했다.
그랬던 집안의 막내는 언제나 집이 싫었다. 집이 싫어 선택한 시집은 상상 이상의 시련을 선물했다. 차를 타고 가면 1시간 거리의 집안에 시집을 갔지만, 친정으로 가는 일은 언제나 고달팠다. 그래도 가면 언제나 숨통이 트이는 그런 곳이 친정이다. 어릴 때는 그저 제 살기만 바빴던 시간들이 지나가 조금은 여유로울 때 만난 막내의 자식들이 예뻐 보이는 것은, 막내에 대한 미안함일까, 그저 내리사랑일까.
그런 막내의 자식들이 외가에 가면 사랑을 주기 바쁜 사람과, 넘치는 사랑에 흠뻑 빠진 내가 있었다.
동생이 먼저가 아니라 좋았고, 언제나 품속에 고이 간직해 둔 500원 동전을 모아다 주시는 외할머니가 있어서 좋았다.
거동이 불편했지만, 언제나 나에게 최선을 다해 주시는 외할머니가, 자주 보는 친할머니보다 좋았다.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길을 나와 만나는 옷가게에서도 외할머니는 흥정하지 않았다.
내가 이 옷이 좋다. 외치면 말없이 지갑을 꺼내 주인이 달라는 대로 돈을 건네주셨다. 값어치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마음이, 어린 나에게도 전해졌다.
제 엄마아빠도 하지 않는 행동을 외할머니는 기꺼이 나에게 해주셨다. 너는 그래도 되는 존재다.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사람이었다.
외할머니가 사주신, 엄마아빠는 절대로 사주지 않는 치마를 입고, 외할머니가 주신 500원으로 사 먹는 계란만두가 나에게는 고기보다 더 좋은 음식이었다.
물에 불린 당면에 밀가루 푼 물을 붓고, 그 위에 계란을 얹어 만든 계란만두는, 꼭 여기서 먹어야 그 맛이 났다. 엄마를 졸라 만들어보아도, 내가 직접 만들어도 여기서 먹는 맛이 나지 않았다. 다 커서도 이 맛을 잊지 못해 종종 기차를 타고 찾아오기도 한 계란만두는 나에게 맛보다 훌륭한 추억을 상기시키는 타임캡슐과도 같다.
지금은 미로시장이라 불리는 나의 외가는 지금도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
외할머니와 함께 걷던 거리는 그대로지만, 상점들은 그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띄고 있다.
무인 떡집과 방앗간에는 정찰제로 소분된 쌀과 콩, 계란과 떡들을 판매하고 있다. 따로 키오스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소비자의 양심에 맡기는 종이박스만이 자리를 지킬 뿐이다. 옷가게는 보세가게로 바뀌었고, 슈퍼가 없어졌다. 없어진 슈퍼자리는 누군가의 좌판이 매일 바뀔 뿐이다.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엄마보다 더 오래 골목을 지키는 원조 죽집과 계란만두를 파는 가게뿐이다.
친가와 외가는 둘 다 제 손으로 지은 집이다.
국가유공자이며 건설업에 종사했던 친할아버지는 풍요로웠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많은 자식들을 건사했던 외할머니는 당장 저녁의 끼니를 걱정할 만큼 부족한 삶을 살았다. 건설업에 뛰어들었던 아들들이 집을 재건축했지만, 이모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본을 투자하는 사람과 직접 실무를 보는 사람 사이가 가까울수록 불신감이 팽배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듯하다.
도로확장 계획이 실행됨에 따라 친가는 많은 토지보상금을 받았고, 새로 지은 친가는 드라마에 나오는 지역유지의 집과 닮았다.
재건축 바람에 순풍을 그대로 이어받을 것만 같던 외가는 바로 앞 건물까지 철거확정 되었지만, 지금껏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운명은 교묘하게 이 둘을 빗겨나갔다.
그래도 나는 외갓집이 더 좋다.
지금은 푸근한 외할머니가 없지만, 사랑스러운 기억이 존재하고 있으니까.
500원이면 먹을 수 있던 계란만두가 지금은 1500원이 되었지만, 그때와 똑같은 맛을 유지하고 있다. 가끔씩 맛집으로 영상이 올라가면 사람들로 문전성시가 되지만, 그래도 좋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면 이 가게가 조금 더 오래가지 않을까.
추억에 젖어 급작스레 찾은 서동 미로시장의 맛나분식은 언제 찾아도 문전성시다.
BTS 지민의 추억이 담긴 맛집이라고 잘 알려진 맛나분식은 나에게도 온전한 추억을 선물하는 곳이다.
들어가는 재료가 한없이 간단하지만, 절대 이맛을 흉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철판에 투박하게 부쳐낸 당면과 계란의 콜라보는 이 집만의 특색이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500원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흔치 않았으니까.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생각나는 음식, 내 곁에 사랑하는 존재들이 생겼을 때 함께하고픈 내 어린 시절 그 자체다. 거동이 불편해도 손녀가 그저 좋다고 하니 따라와서 사주었던 계란만두는 나에게 그리움의 맛이다.
갓 구워진 계란만두 위에 떡볶이 양념 소스를 얹고, 간장에 절여진 파와 곁들이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포근하고 짭조름하면서 입안 가득 충만함이 가득 차오른다. 이 행복은 길게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먹는 순간도 찰나에 끝난다. 그리고 미련 없이 일어서 다음 손님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여유까지 선사한다.
감정은 휘발되는 것이고, 사랑했던 모든 존재는 사라지거나 없어지게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도 나의 추억을 지켜주는 외가, 그리고 미로시장이 있어 좋다. 마음이 외로울 때나 자존감이 떨어졌을 때, 언제든지 찾아가면 반겨주는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있는 장소가 내게도 있다.
나를 받쳐주는 기둥이 되는 기억을 재생시켜 주는 나만의 저장소가 나에게도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