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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덕천에서 가장 핫한 곳

새 단장한 헌혈의 집과 구포시장 통통김밥

by 천둥벌거숭숭이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계절이 도래했다.

길가엔 상사화가 아름드리 피어있다.

꽃과 잎이 만나지 않는 상사화. 이별 혹은 그리움의 꽃말을 가진 상사화의 계절. 가을이다.

짧지만 밀도 깊었던 여행을 마친 뒤의 여독이 쉬이 떨쳐지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부지런히 나가야 일상의 나로 돌아오기 쉽다.

그래서 오늘도 무작정 나왔지만, 소소한 계획은 언제나 함께한다.

오늘은 북구 덕천에서 하루를 보낸다.

요즘 덕천에서 가장 핫한 곳을 찾아가 보는 것이 오늘의 목표다.

새롭게 꾸며진 덕천 헌혈의 집

특별한 봉사의식을 가지기보다는, 습관 같은 것이다.

시간이 날 때, 혹은 전날 잠을 푹 잤을 때 방문하는 곳.

어제의 나는 깊은 잠을 잤나 보다. 헌혈의 집에 가고 싶었던 것을 보니,

연중무휴 운영하는 헌혈의 집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다.

피를 기부하는 것.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죽음이 있지만, 피를 많이 흘려 부족한 피가 채워지지 않은 죽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젠가 내가 그동안 했던 헌혈이 나에게로 돌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건강할 때 또 한 번 해보는 것이다.

비밀번호 네자리 보관함과 쾌적해진 휴게공간
스마트폰 살균충전기까지 비치된 탕비실

한층 쾌적하게 바뀐 덕천 헌혈의 집이다.

새하얀 이미지가 크게 와닿는다. 빨간 피는 건강의 상징. 하얀색은 청결의 상징!

가자마자 번호표를 뽑는 것은 빠른 것을 좋아하는 한민족의 특성.

이미 69번째 헌혈이기 때문에 절차는 이미 알고 있다.

숫자 4개만 입력하면 되는 사물함에 외투와 가방을 보관하고 탕비실의 물을 두 컵 마신다.

번호가 불리면 준비된 공간으로 가 혈압압을 재고, 혈액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정상인지 검사 후에 오늘의 몸상태를 체크한다. 그리고 오늘도 당당히 전혈에 도전한다.

헌혈 전에는 물을 많이 마시고, 헌혈 후에도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물 한잔 하며 새롭게 도입된 스마트폰 살균충전기를 이용한다. 생각보다 꽤 빠르게 충전돼서 좋다.

헌혈의 집에서 진행되는 헌혈 종류와 예약 선물
부산에서만 진행되는 추석 연휴 헌혈 프로모션

헌혈의 집에 가면 할 수 있는 헌혈의 종류는 총 3가지.

전혈과 혈장은 경험이 있지만, 혈소판은 전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혈장은 의약품을 만드는데 쓰였구나.

천천히 보아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여기서 지식 한 조각을 모았다. 오늘 나는 전혈이다.

예약 헌혈로 도장 4개를 받아 편의점 쿠폰을 받을 예정이고, 추석연휴 동안 헌혈하면 부산시 전 헌혈지점에서 온누리 상품권 1만 원권을 추가 증정한다는 소식을 문자로 접했기 때문이다.

유용하게 모았다가 배고픈 미래의 나에게 선물해야지.

헌혈하고 받은 사은품과 열쇠로 여는 화장실은 오랜만이라.

헌혈의 집 덕천점이 새롭게 리모델링되면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새사람으로 바뀌었나 보다.

다른 사람보다 유독 혈관이 작은 나는 항상 오른팔로만 헌혈을 해왔다. 자주 쓰는 팔이 적게 쓰는 팔보다 혈관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보는 잘 찾지 못한다. 그래서 바늘을 꽂고도 수축한 혈관의 혈류를 잘 찾기 위해 바늘 방향을 바꾸는, 난생처음 보는 행위를 당했다.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불편했다. 미안했는지 멍이 잘 빠지는 연고라며 하나 주었다. 아마 덕천점은 당분간 방문하지 않을 듯. 숙련자가 언제나 편하다.

새 단장한 헌혈의 집에서는 사은품이 푸짐하다.

보냉백과 덕천 nc에서 7만 원 이상 구매하면 5천 원 상품권을 주는 쿠폰까지 덤으로 준다.

헌혈을 자주한 사람에게는 비타민을 자주 준다.

빈 가방에 새 가방을 더 받아 빵빵한 가방이 되었다.

헌혈하면 선물이 이렇게 많다. 소소한 즐거움이다.

화장실이 안 보여 봉사자분께 물으니 키를 주셨다.

오랜만에 잠겨있는 화장실을 열쇠를 통해 열었다.

화장실 사용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구나 추정할 뿐이다.

구포시장 김밥 맛집 통통김밥
통통김밥 메뉴

오전 헌혈을 마치니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린다.

덕천의 바로 옆에는 구포시장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은 구포시장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지.

특정하게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마냥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지.

400g이 내 몸에서 나갔기 때문에, 충분히 채워줘야 하는 것이다.

추석즈음의 시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줄이 많이 선 곳에 나도 합류한다.

좋았어. 굉장히 자연스러웠어.

고개를 들어 간판을 확인해 보니, 김밥집이다. 구포시장에 김밥 맛집이 있었던가.

줄을 선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시장 안쪽에 있던 통통김밥이 시장의 중심가로 이전을 했고, 예전에는 떡볶이도 같이 판매를 했지만, 지금은 시설이 미비하여 김밥만 판매 중이다. 옆에 있는 방앗간을 매입했기 때문에, 공사가 끝나면 떡볶이도 같이 판매할 것이라는 아주 상세한 내용까지 알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보통 단골이 아닌 듯하다.

내 앞에 10명 남짓한 사람의 줄임에도 5분 정도 기다린 듯, 주문을 하고 3분 후 김밥을 쟁취할 수 있었다.

계란이 끊임없이 나오는 기계가 있는 김밥집이라니, 포슬포슬한 계란이 가득 들어간 김밥이 얼마나 맛있을까.

구포시장 통통김밥 주차장이용과 영업시간. 밥은 꼭 챙겨드세요.
통통김밥과 매운오뎅김밥

통통김밥에서 12,000원 이상 구매 시 1시간 주차장 이용권을 드립니다.

김밥 사고 장 보면 딱 맞는 알맞은 시간이다. 김밥 사는데도 복지가 꽤 괜찮다.

욕심부리지 않고, 딱 오늘 먹을 양만 산다. 맛있으면 다음에는 다섯 줄 사야지.

뜨끈한 김밥을 안고 돌아가는 길이 따뜻하다.

버스 차임벨 위에 누군가 적어놓은 문장. 밥은 꼭 챙겨드세요.

네, 맛있는 김밥으로 한 끼 든든하게 채워보려고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김밥부터 꺼내든다. 이미 곱게 잘린 김밥의 단면이 아름답다.

얇은 지단이 김밥의 반을 차지한다. 기본 김밥인 통통김밥이 제법 통통하다.

계란의 부드러움이 입안을 황홀하게 만든다. 삼삼한 간의 통통김밥과 매운오뎅김밥의 감칠맛의 조화가 훌륭하다. 제법 잘 골랐구나. 먹데이터는 항상 대기 중이어서 사람들의 구매메뉴와 그들의 이야기에 경청한 결과가 꽤나 만족스럽다.

잘 되는 집은 이유가 있다. 줄 서서 구매하니 오래 묵은 재료일 수 없고, 판매자는 재고걱정 없어 좋고.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는 음식은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킨다.

중간중간에 다른 상인들이 아침에 구매한 김밥을 달라고 사장님을 부르기도 했다.

시장 식구들마저도 사랑하는 김밥집에 또다시 방문을 안 할 이유가 없다.


추석의 풍요로움을 한껏 맛본 덕천 나들이였다.

누군가는 나누기 위한 마음으로, 또 다른 이는 사은품에, 어떤 이는 알찬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각자의 이유로 모인 사람들의 헌혈의 집은 훈훈함으로 벌써부터 겨울의 따스함이 차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꾸준히 들어옴으로 인해 느껴지는 활기가, 아직도 세상은 따뜻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준다.

물론 바늘은 따끔하고 초보의 실수는 뜨끈하다.

하지만 선물 받은 버건디색 보냉백은 엄마의 소소한 기쁨이 되어줄 것이고, 상품권은 든든한 보루가 되어줄 것이다. 영화관람권 품절이 조금 아쉬울 뿐.

구포시장에는 명절준비에 여념 없는 사람들의 방문으로 발 디딜 틈 없었고, 그중에 가장 핫한 김밥집의 회전율은 놀라울 만큼 빠르고 질서 정연했다.

단 한 사람이 주문받고 결제를 끝내면, 주방 쪽의 포스기로 주문내용이 전달된다. 김밥 재료를 준비하는 직원들과 끊임없이 계란을 줄 세우는 어르신은 계란 쫓아가기 바쁘다.

완연한 바쁜 시장의 모습에 내 눈도 바삐 돌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이게 시장 보는 재미지.

각자의 삶에 하나의 이야기가 조금씩 더해진다.

오늘 장을 보러 구포시장에 갔는데, 김밥집이 몫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갔더라, 떡볶이를 지금은 안 하는데, 조만간 다시 판다더라, 민생지원금으로 고기를 많이 샀다더라. 등등.

혼자 왔지만, 혼자가 아닌 듯, 함께여서 더욱 따뜻했던 덕천 나들이었다.

막연하게 외로울 때, 괜스레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아보는 것도 나를 위로하는 특별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당신의 선택이 선물로 다가오는 것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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