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마주하게 만든 첫 사람
낯선 것이 주는 감정에 두려움이 큰 사람이 있다.
낯설다는 것은 처음 만나는 물건, 사람, 상황. 그 결과에 따른 생경한 감정이 또 다른 나 자신을 만나게 한다.
그 사건은 마치 교통사고처럼 예기치 못하게, 하지만 일어날 법한직한 상황에서 나타났다.
새로운 환경에서 동기라는 이름으로 번호를 교환하고 늦은 저녁에 온 카톡에서 간단한 질문이 들어왔고, 아는 문제였기에 기꺼이 답을 했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연락은 어느새 매일 아침마다 안부를 묻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초등학교가 남녀공학이기에 이성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남사친이 존재하지 않았고, 여중, 여고의 생활은 특히나 이성관계에 대한 호기심이 극에 달하게 만들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이성친구에 대한 나름의 로망을 가지고 있던 아이였다.
일상을 공유하고 동성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마음껏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혹은 관심이 있는 이성친구에 대해 자문을 구할 수 있는 편한 관계의 친구를 나도 가질 수 있다는 설렘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모든 일은 내 예상을 벗어나곤 한다.
연락은 자주 하지만 학교에서 다른 동기들과 만날 때는 어색해한다던지. 물론 여자들이 많은 학과에서 소수의 남학생들은 초미의 관심사이기도 했고, 학기 초라 항상 내 옆에는 대여섯 명의 여자동기들이 늘 함께이기도 했다. 모두와 친하게 지내기 힘들다던 그 아이를 이해하기도 했고, 나 역시 계속 붙어 다녀야 하는 동기들에게 불만을 가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식사시간에는 약속 있다는 말로 여자동기들의 무리에서 벗어나 학교 앞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나는 돈가스, 그 아이는 갈비탕. 전문점이 아닌 작은 식당에서 갈비탕은 언제나 레토르트를 끓여주는 방식이었지만 그 아이는 고집스럽게 갈비탕을 먹었다. 매우 궁금하지만 묻지는 않았다. 그 질문이 갈비탕을 좋아하는 그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으니까.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내 나름의 배려를 베푼다고 생각했지만, 말이 없는 나를 그 아이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조금은 우스워진다.
함께하지 않는 순간에 항상 [뭐 해]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 수업을 듣거나, 도서관에 가 있거나, 동기 여자애들에게 휩쓸려 카페에 덩그러니 앉아있다거나 할 때가 많았다.
그때 오는 연락이 나에게는 구세주와 같았다. 쉬이 거절하는 법을 몰랐던 나는 가기 싫은 모임자리에 앉아있다가 나를 찾는 연락이 오면 부리나케 일어나 나가곤 했다.
그래서 만난 장소는 노래방.
나는 모르는 사람이 노래방 가자고 하면 따라갈 정도로 노래방을 좋아한다. 물론 그 이유는 노래를 잘해서이다. 초등학교 시절 합창단 반장을 하며 소프라노와 알토의 빈자리를 메꿔가며 땜빵을 할 정도의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아이는 친구랑 둘이서 노래방 가는 것이 쑥쑥 해서 날 부른 거지만, 노래방에 환장한 사람은 그저 즐거울 뿐이다. 친구가 부른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다시 번호를 눌러 재시작하는 그 아이가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친구랑 친한 게 아니었나 혼자만 생각할 뿐.
그때 가수 프리스타일의 [수취인불명]이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다. 함께 듀엣을 하자고 했지만 모르는 노래를 부를 수는 없는 노릇. 집에서 찾아 들어보니 목소리가 아름다운 여성의 멜로디가 돋보이는 노래였다.
다음부터 노래방에 가면 항상 나에게 듀엣곡 부르기를 권했지만, 이보시오. 모르는 노래를 계속 함께 부르자고 하면 곤란하오. 그런 것을 보면 나는 참 눈치가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떤 날은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나는 영화 보는 것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고등학생 때는 내가 사는 지역에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하지 않으면 기차를 타고 타 지역에 가서 보고 올 정도였다.
그렇게 신난 마음을 안고 영화관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데, 그 아이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보통은 함께 가는 일행과 같은 자리에 앉던지, 혹은 앞, 뒤로 타던지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서 앉는 것이다.
뭐지? 싸함을 느꼈지만 그게 무슨 감정인지는 몰랐다. 처음 만나는 생경한 감정.
친구사이, 혹은 동기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지인을 만나면 안 되는 그런 사이?!
깊게 생각이 채 잠기기도 전에 버스 안은 만석이 되었고, 그 아이는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고 나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그 아이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별일 없이 영화를 보고, 증명사진을 찍는다는 그 아이를 쫓아 포토 스튜디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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