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위한 집이 갖고 싶어진 나
완벽한 집순이다.
하루 종일 집에서 누군가 무얼 하냐고 묻는다면 쉽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주말에 뭐하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
세세한 나를 알려주기에 당신은 나의 말을 끝까지 들을 여유가 없고, 허투루 짧게 말할 수 없는 나는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만 했는지를 말할 애정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 쓰고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입으로 뱉어내는 말, 손으로 전하는 마음에 진심을 담기 위해 노력한다.
책장에 꽂힌 아직도 읽지 않은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면서 유튜브로 책소개 영상을 보거나,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브이로그나 예능을 찾아보기도 한다.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 그로기 상태로 멈춰버린다.
그럴 땐 짧은 도파민에 도취된다.
그 속에서도 나에게 꼭 맞는 것들을 찾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렇게 찾은 오늘의 목표.
[나의집이나].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전시를 보러 가는 것.
월요일은 도서관, 박물관이 쉬는 날이니 꼭 확인해 보고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예외의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융통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2시간이 넘게 달려간 길에서 실망하는 것은 싫기 때문에 이번만은 계획적인 인간이 된다.
1월 1일. 월요일 휴관.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장 마감은 오후 5시 30분).
관람료는 무료이지만, 기획전과 특별전은 유료로 운영될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하단환승센터에서 버스를 타는 것이 수월하다.
나의 경우는 멀기 때문에 가면서부터 설렌 즐거운 길이었다.
2시간 30분이 걸려 도착한 부산현대미술관의 벽면을 잠식한 잔디는 메말랐지만, 계절의 색을 입은 모습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나를 이끈 문구. 나의 집이 나.
전시 포스터에 그려진 그림은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떠오르게 만든다.
각자가 좋아하는 부분들을 모아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든 집.
다른 사람의 생각을 합법적으로 들여다보는 전시관에 설레는 마음으로 입장한다.
집은 각자의 삶을 닮아있다.
시대에 따라, 문화에 맞춰 자연스럽게 변화해오고 있다.
산업발전, 도시 간 인구격차, 노령화와 지방도시 인구감소, 핵가족화.
함께 살아가던 주거공간이 어느새 혼자만의 공간으로 바뀐 것 또한 지금의 문화가 되었다.
<인피니트 루프>.
투명한 터널은 집의 확장된 모습을 하고 있다.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흐리고, 튼튼하지만은 않은 벽으로부터 불완전한 안정감을 느끼게 만든다.
공간이 주는 오묘한 매력에 흡수된다. 공기로 채워진 비닐벽으로 나를 지켜낼 수 있을까.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보호받는 입장이 된다면 꼭 필요한 공간이 아닐까. 작가의 생각에 나의 사념을 한 스푼 집어넣어 본다.
토대와 사는 사람은 그대로지만, 그들을 담아내는 공간은 변한다.
자갈치, 영도, 부산역 부근 등. 한 곳에 오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다.
한국전쟁 발발로 피란을 온 사람들이 살기 위해 만든 임시적 공간들이 시대와 문화를 대변한다.
판잣집에서 시멘트벽, 석면지붕이 친환경 재료로 바뀌게 되었다.
변화하는 도시는 끊임없이 진화 중이다.
비계로 이어진 공간을 걸을 때마다 층간소음이 지대하다. 부산의 특색이 담긴 영상이 곳곳에 상영 중이다.
누군가의 집, 벽과 벽사이의 공간은 사람이 들어가기도 힘든 협소한 공간이다. 조만간 골목투어가 하고 싶어지는 공감각을 물씬 느낀다.
어릴 적 나의 집이 돼주었던 정글짐이 생각나는 작품이다.
다각형의 벽에 푸르른 빛이 담겨있다. 가까이 다가가 작품에 대한 설명을 가만히 읽어보니 충격적이다.
한쪽의 균형이 흔들리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집과 푸른빛은 곰팡이를 형상화한 모습이라니.
서울 반지하 원룸에서 곰팡이와 강제 공생했던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했다는 작가의 말에 크게 공감된다.
인간이 만든 건축에 비인간 생명체가 점령하는 것은 쉬이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전시 작품에 대한 완벽한 이해도를 위해 곰팡이를 키워 아크릴 상자에 고이 모셔둔 것이 특히 인상 깊게 와닿았다.
이것이 바로 진정성 아닌가.
밀집한 주택가에서 해는 잘 들지 않으면 곰팡이는 피할 수 없는 공생관계가 되곤 한다. 나 역시 곰팡이를 없애기 위해 꽉 찬 공간을 비우고 환기를 시키고 약을 뿌렸지만, 결국 그 집을 나가게 되는 것은 인간인 나였다.
곰팡이와의 집 쟁탈전에서 패배한 사람은 '공감각'의 공간에서는 살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런 발상 참 좋아한다.
아예 만물 트럭을 전시장에 가져다 놓은 것.
만물상. 이동이 힘든 취약자들을 위한 최대의 복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어지는 돌봄과 신뢰의 연이 오래도록 이어지는 고객님과 사장님의 관계는 특별하다.
다른 이의 집에 들르면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하던 서랍장이 모두 열려있다. 함부로 볼 수 없는 것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영광을 한껏 누린다.
만물트럭의 지붕은 누군가의 집이다. 자개상에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하루를 소화하는 누군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드디어 나도 이런 공간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나의 집이 나. 사는 공간이 때로는 나를 증명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서랍을 선심 쓰듯 열어 보이고 싶다. 내 마음대로 눕고 앉을 수 있다면 그곳을 나의 안식처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도시의 이야기를 듣는다.
땅은 자신의 자리에서 그저 버텨내고 있을 뿐이지만 그 가치는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지가가 오르면 집가격이 뛰고,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집이 있기는 있을까 하는 의문은 결국 결론을 도출해내지 못한다. 은행과 함께 소유를 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경제상식, 부동산지식이 담긴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 게임 안에서 나는 승리자.
언젠가 주어질 기회를 위해 정보습득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함께 짓는 도시. 내 손으로 만든 나만의 공간.
어린 시절 즐겨했던 소꿉놀이가 생각나는 전시에 재미있는 과제가 주어진다.
종이를 오리고 접으면 전시공간과 같은 모습의 미니어처가 완성된다.
내 맘에 꼭 들지는 않지만, 전시를 기획한 사람들을 공감하기에 충분한 매개체가 된다.
마치 집안에 들여놓고 싶은 가구를 연상시키는 무형의 존재에 금방 감화된다.
의자, 책장, 그리고 창틀에서 연장된 받침책상이 내가 그리는 나만의 가구.
나의 집이 나. 나를 완전하게 만들 공간을 다른 사람의 생각 속에서 파생시킨다.
집과 도시, 삶에 대한 인터뷰를 듣다가 천장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든다.
관객참여형 전시. 나이 듦과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리고 앞에 있는 방음 부스. 도전 안 할 이유가 없다.
마이크와 방음판, 빨간 버튼을 누르면 나의 목소리가 앞의 스피커로 흘러나올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8분.
1. 내가 살고 있는 곳과 살고 싶은 곳
- 영남권 안에서만 살았다. 살고 싶은 곳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2. 주변인들이 나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느낀 점
- 주변에 좋은 사람들만 존재하는지, 혹은 내 사람들의 좋은 점만 보려고 노력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주변사람들의 나이 듦에 대해서 장하고 기특하다는 생각을 한다. 늙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그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3. 지금의 나이 듦을 스스로 어떻게 느끼는가.
- 인생은 스스로를 알아가는 여정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나에 대해 다른 이보다 조금 더 알고 있는 상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고 평정심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이제야 알게 된 나를 유용하게 써먹을 궁리를 하는 중. 나는 나이를 먹어도 철없고 해맑고 싶은데 지금 딱 그렇게 사는 것 같아서 조금 만족하는 편.
4. 자신의 노년이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나.
- 장수를 꿈꿔 본 적 없어서 처음 해보는 생각. 나의 노년. 지금보다 느긋하게, 쉽게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나를 더 알아가고 싶다.
방음 부스 안은 오롯이 혼자였지만, 전시장 안에는 사람들이 존재했기에 처음엔 부끄러웠다.
하지만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쉬이 말할 수 있었다.
질문을 좋아하는 이유.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언제나 단명을 꿈꿨지만, 생각보다 나이 듦에 관심이 꽤 있었던 나.
지금의 나를 꽤 좋아하는 편이구나. 그래도 부족하다는 생각은 기저에 깔려있다.
안정적인 기반. 경제적 여유를 획득해서 더 나를 펼치고 살고 싶은 나를 느꼈다.
나의 집이 나.
나는 집을 나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과연 온전한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의 혼란스러운 머리와 같이 내가 지내는 집은 엉망인 상태다.
이번 전시를 보고 올해의 목표가 생겨버렸다.
바로 출가. 온전히 나만의 공간에서 살아보는 것.
나를 덕질하면서 내가 잘하는 것, 나의 능력으로 나를 지켜내는 것.
다른 사람이 생각한 집의 모습을 보면서 나를 그려가는 것.
어릴 적부터 품어왔던 로망과 현실의 나를 접목시킨 단 하나뿐인 집. 그리고 나.
행복한 결말은 상상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내야 할, 그리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자신이다.
나의 집이 나. 상상은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