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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Feb 08. 2024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드라마

귀를 열고 버스를 타야 하는 이유

일상이 소란하다.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버스투어에 나서기로 한다.

자리에 앉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으면 완벽한 나로 가능한다.

근데 그 마저도 방해받는 순간이 찾아온다.

예를 들어 내 뒷자리에서 전화통화를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닫힌 내 귓구멍에 박힐 때.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다가 슬며시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앳된 남자애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인가, 중학생인가.

꽤나 흥미로운 얘기라 처음의 소음이 점점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 엄마, 할머니 집에 가는데 빈 손으로 가기 그런 거 같아. 2만 원만 돈 부쳐줘."

2만 원? 확실히 어른 집에 갈 때 뭔갈 사가기에 2만 원은 적당한 것 같다. 요즘 물가는 만원으로 뭔갈 사기가 송구스러워지는 가격이 돼버렸다.

상대방은 꽤나 단호했다. 몇 번을 그래도 사가야 하지 않냐며 상대방을 설득시키려 했지만 실패했나 보다.

곧바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할머니 집에 가는데 뭘 좀 사가려고 하는데 돈 좀 부쳐주세요."

구체적 가격이 명시되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아니라 친할머니였나 보다.

아이의 말투는 공손했지만, 내용은 조금 허술했다.

이번 상대방도 단호했다. 아이는 협상에 실패한 것 같았다.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다.

너의 신용도가 그 정도인 것인가. 정말로 겉치레 선물이 필요 없었던 것일까.

곧 다시 전화벨이 울리고 뒷좌석의 아이는 전화를 받았다.

"어.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고 사가라고? 알겠어요."

고민 후에 아이에게 돈을 부치기로 결정을 하셨나 보다.

망설임 없이 바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나 보다.

"할머니, 내가 갑자기 할머니 집에 가는데 뭐 좀 사가야 되지 않겠나?"

이번 상대방은 목소리가 좀 커서 통화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안 사 와도 됩니다. 그냥 오세요."

"아니 할머니, 아빠가 전화로 물어보고 사가라고 했어요. 엑셀런트 아이스크림 사갈까, 아니면 델몬트 오렌지주스 사갈까?"

꽤나 정확한 브랜드명과 어르신이 드실만한 품목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간단하게 거절한 듯하다.

현재의 위치를 묻고 곧 보자 하고 통화는 끝이 났다.

짧은 통화 여러 번에 나는 곧 생각에 빠졌다.

엄마와 아빠는 냉전 중에 있다.

주말에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아이를 할머니집에 보낸 것이다.

예정에도 없던 할머니집 외박에 설레기도 하지만 걱정도 된 아이는 할머니에게 뭘 사줘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전혀 돈을 보내줄 생각이 없다. 생각보다 엄마가 가진 아빠에 대한 분노가 컸다.

엄마와의 냉전 중인 아빠도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

결전을 준비 중에 아이의 전화는 성가시기만 하다.

생각해 보니 그래도 할머니한테 뭔갈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기특하기도 하다.

여유롭게 돈을 보내고 얼른 업무에 복귀한다.

그리고 화려한 주말을 맞이하겠지.

좋은 결과를 가지길.

모든 가정은 한 가지 이유로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돌고 돌아 행복한 가정을 가지길.

10분 남짓한 시간에 책 한 권을 읽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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