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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Apr 23. 2024

누구의 유리고코로가 궁금하신지

내 마음의 안식처는 늘 바뀌었다.

유리고코로

마음의 안식처인 유리도코로를 잘못 들어 인식된 유리고코로.

영화로 잘 알려진 유리고코로를 드디어 읽게 되었다.

단 번에 읽어버렸다.

누마타 마호카루라는 작가의 작법에 알맞은 찝찝하면서도 그다음이 궁금해지는 미스터리함에 금세 매료되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료스케는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송년회에 자신이 운영하는 애견카페의 아르바이트생이면서 애인인 치에를 가족들에게 소개하고, 곧 결혼하고자 마음을 먹는다.

며칠 후 치에가 사라진다. 200만 엔이나 되는 돈을 빌려갔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그녀가 안전한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예상치 못하게 아버지의 췌장암 말기 소식을 듣고, 경황이 없는 가운데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교통사고 사망사건을 접한다.

시련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사라진 여자친구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지만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혼자 계신 아버지를 살피기 위해 본가로 향한다.

마침 아버지가 집에 계시지 않았고, 불현듯 서재로 가게 된다.

짐을 정리하다가 하얀 여성 핸드백을 발견한다.

어릴 적 어머니가 메고 있는 가방인 듯한 기분이 든다.

아스라이 먼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한창 아프다가 깨어보니 내 엄마가 아니었다.

분명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주변 사람들은 엄마가 맞다고 한다.

착각인지 참인지 거짓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러한 시간은 곧 지나갔고 그 엄마는 나의 엄마였고, 지금은 엄마 장례식을 치르고 온 참이었다.

핸드백 속에는 여성의 머리카락이 한 묶음 들어있었다.

혹시 어릴 때 보았던 그 엄마의 머리카락이 아닐까, 아니면 돌아가신 어머니의 머리카락일까.

생각하는 중에 한 상자가 눈에 띈다.

상자를 열어보니 낡은 노트 4권이 있다.


유리고코로.

한 사람의 일기형식의 수기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병원에서 유리고코로가 결여된 사람이라는 의사 진단을 듣게 된다. 초등학교시절 부유한 친구 집에 초대받아 갔다가 우물 같은 곳에 벌레를 던지며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유리고코로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간혹 친구집에 놀러 가곤 했는데, 그 장소에서 친구가 물에 빠지게 된다. 사람을 부를 생각을 하지 않고 지켜보면서 자신의 유리고코로가 단단해지는 기분을 느낀 나를 경험한다.


소설 같기도, 일기 같기도 한 글에 금방 매료되었다.

금세 한 권을 다 읽어버렸다.

더 읽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곧 돌아올 것 같았다.

부리나케 노트와 핸드백을 정리해서 서재에 넣어 놓고 아무 일 없이 아버지를 맞이한다.

그동안 머릿속에 사라진 여자친구와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가득했었는데, 그 노트를 본 후로 줄곧 마음은 아버지 서재에 가 있었다.

애견카페에서 일할 때도 도통 집중하지 못한다.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주 주말, 동생에게 할머니 간병을 가는 아버지를 미행해 달라고 부탁하고 아버지 집에 들러 그 노트의 다음 권을 읽는다.


유리고코로.

중학생이 되어도 유리고코로는 그대로이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을 인정하고 그럴듯해 보이도록 자신을 포장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한 남매의 모습을 본다. 여동생의 모자가 날아가 하수도 밑 부분에 안착한 모습을 본다.

오빠는 모자를 향해 손을 뻗지만 팔 길이가 모자라다.

지나가던 남자 어른이 오빠를 도와주기 위해 하수도를 덮고 있던 철판을 힘을 주어 들어준다.

철판이 무거워 팔이 떨리지만 최선을 다한다.

모자가 오빠의 손에 닿을 무렵, 팔에 힘이 다 빠질 무렵, 한 소녀가 옆으로 다가온다.

그와 동시에 철판이 떨어지면서 오빠가 하수도와 땅지면 사이를 맞닿게 된다.

떨리는 소년의 다리를 보는 동시에 소녀는 사라지고 남자 어른은 망연자실하게 된다.


곧 동생에게 전화가 와서 노트를 덮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다음이 궁금하다. 보던 노트 한 권을 챙겨서 본가를 나온다.

동생을 만나 어릴 때 얘기를 하며, 너와 나는 엄마가 다른 것이 아닐까.

이 노트의 주인공이 너의 엄마일까, 나의 엄마일까.

둘이서 대화를 해보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 노트의 끝까지 다 다른다면 알 수 있을까.


나의 시선도 주인공인 료스케와 함께 달려가고 있었다.

불편한 이야기지만, 그 다음장이 궁금해서 버틸 수 없는 필력이었다.

요즘 책 읽기에 도태되어 있었는데, 다시 흥미가 동해버렸다.

내가 정말 재밌게 읽어버린 유리고코로.

찝찝한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구축해 버린 누마타 마호카루의 글은 토론하기에 적당한 소재지만 답이 없는 이야기들을 그려낸다.

[고백]도 그러했듯이, [유리고코로]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진한 생각거리를 숙제로 남겨주었다.

사이코패스는 사회화되지 못하는가. 치료가 불가능한가.

사이코패스를 낳고 기르는 가족은 범죄자를 양산해 내는 것인가. 오로지 가족의 탓일까.

누구에게 죄를 물어야 하는 것인가.

정말 근본적인 문제이다.

때론 최선을 다해도 최고의 결과에 닿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죄책감을 책임감으로 가족을 지켜낸 사람의 이야기는 눈물겨웠다.

그 갸륵한 마음을 나도 실천할 수 있을까.

유리고코로가 결여된 사람은 죽어야만 하는가.

내 가족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라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문제의 근원을 눈앞에서 없애버리면 해결되는 문제일까.

독자로 하여금 같이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작가가 풀어낸 해법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나의 유리고코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유독 푸른길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나는 학교 마치고 집에 곧장 가는 것이 싫었다.

싫은 것을 천천히 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것을 한다.

푸른길을 걸으며 치토스를 먹으면 모든 감정이 사라졌다.

때론 친구를 곁들일 때도 있었다.

무조건 내가 치토스를 사줘야 했고, 나와 그 공간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나의 유리고코로였다.

푸른길은 한정된 장소가 아니었다.

나무가 주는 그늘이 있는 곳.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

사색에 잠기기 좋고, 나의 감정을 던져놓아도 아무렇지 않은 곳.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 때도 푸른길을 걸으며 감정을 하나하나 풀어보면, 불같았던 감정이 어느새 하얗게 식어버린다.

누구나 마음의 안식처는 제각각이다.

때론 분노로 표출하고 싶었던 나의 감정을 유리고코로에 대입해 보니 주인공이 보였다.

나의 분노가 때로는 나쁜 피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그대로 나쁘게 행동해도 되는 것일까.

그러다가도 감정은 사라지고 기억은 남는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현실과 소설은 엄연히 다르다.

예측가능한 소설과 한 치 앞을 모르는 현실은 과거를 기반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다르다.

소설의 결말은 찝찝하고 불편했지만 그래도 그 자체로 좋았다.

자기 앞에 닥친 문제를 하나하나 곱씹어보고 풀어내려는 노력을 보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을 수긍했기 때문이다.

다음 주말에는 영화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보다 편하게 볼 수 있는 지금을 살고 있는 나니까 참 다행이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좋고, 그로 인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이유를 찾아가는 활력을 얻는 내가 좋다.

또 다른 나의 유리고코로를 찾아야지.

그래서 당신의 마음의 안식처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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