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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May 02. 2024

부끄럼 많은 생애를 살았다는 것은

인간실격인 사람이 다만 한 사람뿐인가

날이 흐리면 몸이 뻐근해진다.

도서관엘 가야 하는데 몸이 쳐지면서 방 안을 나서기가 싫어진다.

그래도 괜찮다.

전자도서관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평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늘 대출상태다.

사고의 전환.

인간실격&사양 단편집 합본이 대출가능 상태에 있었다.

기분 좋게 인간실격을 시작할 수 있었다.


좋은 책의 기준은 첫 시작문장의 강렬함이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나를 위한 삶보다 남의 시선에 맞춘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만 생각하기에도 부족할 어린 나이에도 책이 갖고 싶다 자신 있게 말 못 하고 아빠가 선물하고 싶어 했던 이상한 가면을 선물로 주세요라고 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괴롭힘에도 아무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호구로 보는 사람과 친구하고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의 삶을 똑 부러지게 살아가는 여인들의 모성애를 받으며 끊임없는 자기 비하를 했습니다.

순수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악을 저지하지 못하고 도망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인공의 삶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윤택한 삶을 살았지만, 자유롭지는 못했다.

아버지라는 튼튼한 울타리가 있었지만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상대방의 기대에 맞춘 틀에 자신을 맞추려고만 했다.

그렇게 쌓인 내재적 불안감과 자신감 결여는 어느덧 자기혐오로 성장해 버린다.

작가 자신의 생애와 글 속 주인공의 삶이 결을 같이하고 있었다.

수차례 자신을 버리는 행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쉽게 종료되지 않고 그 비참함이 그의 삶과 함께하고 있었다.

안타깝게 바라보는 주위 시선. 뭐가 불만이냐는 언짢은 시선.

그 모든 것이 버겁기만 하다.

본인이 유일하게 할 수 있던 일은 바로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

누군가를 죽이기는 어려워도 나 스스로 죽이는 일은 참 쉽다.

누구보다 사람들이 주는 사랑을 원했지만, 자기 자신은 사랑하지 않았던 외로운 사람.

시작부터 끝까지 불쾌함과 불편함이 함께하는 이야기였지만 그의 글은 중간에 멈출 수 없을 만큼 묘한 중독성이 있다.

불편함이 주는 쾌감은 글을 읽는 사람으로부터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걸까.

나는 이처럼 부끄럼 많은 생애를 살지 않았다는 안도감일까.

자신은 해피엔딩을 바라면서도 불행한 결말을 보는 것은 단지 엿보는 쾌감일까.


생각보다 짧은 글이다.

한 사람의 삶을 아주 간결하게, 죄책감 없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의 글을 읽고 난 나의 소감은 간단하다.

남의 시선에 나를 맞추기보다는 내 안의 나를 더 드러내 보일 것.

순간의 쾌락보다는 여운이 남는 행복한 기억으로 삶을 채워 볼 것.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길 것.

작가가 말하는 삶의 이상향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외롭기만 한 삶에도 희망이 깃들어 있기를.

희망은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은 영원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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