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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May 08. 2024

버스 안은 언제나 전쟁터다

상대방의 무례에 대한 내 반응은 무응답이다

부산시내를 돌아다닐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복잡한 도로와 현지인도 헷갈리는 신호체계에 나를 보호하고 다른 운전자를 지키기 위한 아름다운 선택이다.

그렇게 목적지를 정하고 오른 버스에서 예기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

버스 안의 바람분쟁이다.

오월의 부산은 더웠다가 쌀쌀했다가 아주 오락가락한다.

나는 1년 중 10달 동안 감기에 걸려있다.

오늘도 무장을 하고 외출했지만 버스 안의 에어컨 바람은 나를 춥게 할 뿐이다

에어컨 바람이 나를 향하고 있어 옆자리 지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에어컨 송풍구방향을 아래로 돌렸다.

그런데도 바람이 나에게 오는 것이다.

올려다보니 송풍구가 나를 향해 있는 것이다.

뒷사람이 내가 내린 송풍구 방향을 위로 돌린 것이다.

아 이 사람은 더운가 보다.

그래서 송풍구를 뒷사람을 향해 돌리니 다시 제자리.

내 머리 쪽으로 바람이 향하는 것이다.

자기 쪽으로 바람이 오는 것이 싫은가 보다.

다시 송풍구 방향을 아래쪽을 향하니 다시 내 쪽으로 바로 돌리는 것이다.

결국 뒤를 돌아 상대방을 볼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제가 추워서 바람 방향을 아래로 돌렸는데 왜 자꾸 제 쪽으로 방향을 돌려요?"

"더우니까 그러지."

"제가 에어컨을 끈 게 아니라 바람이 제 쪽으로 오는 게 싫어서 아래 방향으로 돌렸잖아요. 아래쪽으로도 바람은 나옵니다. 아래로 하면 더우신 것 같아서 뒤쪽으로 돌렸는데 왜 자꾸 제 방향으로 돌리세요?"

"나도 내 쪽으로 바람 오는 거 싫어."

"그래서 아래쪽으로 방향을 바꿨잖아요. 왜 그러시는 거예요?"

"나한테 양해를 안 구했잖아."

대화의지를 상실했다.

에어컨 바람을 아래로 향하면 창가 쪽 사람에게 바람이 간다.

나는 내 동승인에게 양해를 구했고 그래서 안 쪽으로 방향을 옮긴 건데, 자신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은 모습이 고까워서 내 쪽으로 계속 바람을 가게 하는 못된 심보에 전의를 상실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무대응이 답이다.

공공재를 상대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깨끗이 보존하면서 사용하는 것은 좋지만, 그 주인의식으로 상대방에게 무례를 범한다면 그것은 굉장한 실례다.

자신의 잘못된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이 옳다고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살게 된다.

버스에 내려서 잠시 동승자와 대화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그냥 상대방 말이 맞다고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지, 맞대응을 했어야 했는지.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상대방에게 너의 생각이 맞다고 맞장구쳐주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침이라 화내기가 싫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에너지를 모르는 이를 위해 사용하기 싫었다.

양해는 옆 사람에게 구해야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쁜 감정은 버스에 두고 내린다.

당신 아집의 옳고 그름을 설파하기에 내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당신의 삶은 그대로 쭈욱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버스 에어컨 송풍구의 주인은 누구인가. 공공재다.

그리고 집으로 가기 위해 탑승한 버스 안도 소란하다.

버스 출발 직전 급하게 탑승한 여성 한 분.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전날 남자 소개받은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중요한 내용도 아닌데 계속해서 떠들어 대는 것이다.

처음의 흥미로움은 끝이 나고 만원 버스에서 자기는 별론데 계속 연락 오는 남자가 귀찮네, 내 스타일 아니네.

잡스러운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왔다.

돌아보니 말소리를 줄이는 척 하지만 그뿐이다.

본인의 행동이 무례라는 걸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일까.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의 마음을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마음이 여기서 적용되는 것일까.

본인이 하차할 때까지 전화통화를 계속했다.

만원 버스 안에서 자기 가방 무겁다고 옆자리에 가방 놓고 자리를 비켜주지 않은 어르신 한 분은 그냥 덤이다.

이기적인 사람들로 인해 피해 보는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니다.

버스기사가 모두를 아우를 수 없고, 그렇다고 옆에 가서 한 마디 건네기에는 흉흉한 세상이다.

(아침에 한소리 했다가 본전도 못 찾은 패자의 변명)

즐거운 야외활동이었지만, 차 안에서 사람에게 진이 빠지는 하루였다.

덕분에 집에 와서 당분을 듬뿍 섭취했다.

당이 차오르니 금방 노곤해진다.

몸에 당이 들어오면 기운이 난다.

그다음엔 실내자전거 타기로 땀 빼기다.

묵은 감정들을 땀에 실어 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소란한 세상에서 요란한 삶을 살아내는 인간들.

그저 조용하게만 살고픈 소시민이 주춤한 하루였다.

그래도 내가 오랜만에 단 음식을 방해 없이 먹을 수 있는 아주 소중한 하루였다.

아무리 방해해 봐라, 내가 눈하나 깜짝할까.

그럼 또 단거 먹고 운동하면 되지.

세상 단순하게 사는 것이 내가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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