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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May 07. 2024

빨간 월요일은 특별한 하루를 선물한다.

동래 충렬사에서 온천장까지 걸어가면 2만 보

월요일은 냄새부터가 다르다.

시끄러운 일요일밤이 가고 짧은 새벽을 지나 아침이 온다.

월요일의 냄새는 냉장고 속에서 오래 숨어있다가 끌려 나온 차가운 계란 냄새와 같다.

계란프라이를 우적우적 먹으면서 달력을 보니 오늘은 빨간 월요일이다.

빨간 월요일은 싱그럽다.

그리고 오늘은 나가는 날이다.

푸른 오월에 좋은 일을 더하고자 로또 명당에 가서 이번주의 행운을 빌어본다.

충렬사의 기운을 받는 로또방

로또를 사람들이 많이 사러 와서 로또판매점 입구를 따로 만든 세븐일레븐을 들른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거다.

시작이 좋다.

다음에는 로또 성지 투어를 해봐야겠다.

내 일주일의 희망을 가방에 소중히 넣고 길을 건넜다.

그리고 마주한 충렬사

충렬공 송상현을 모신 송공사가 있는 장소

교차로의 바로 앞에 위치한 충렬사의 지리적 입지가 참 좋다.

주차장소는 여유롭지 않지만 버스, 지하철역의 근방에 위치해서 걸어가 보기가 수월하다.

가족단위의 관람객이 많았다.

어렸을 때 참 자주 왔던 곳이다.

그러나 계단을 올라 위로 올라간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처음인 것이 많은 것이 참 좋다.

충렬사 안내도와 본전

경건함이 느껴지는 장소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묵념하고 방명록을 작성했다.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방문해서 발도장을 찍고 있었다.

많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 처음이라 신기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고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나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려오는 길은 계단이 아닌 옆 길을 향했다.

충렬사 안에서 즐기는 넓은 정원의 모습

오래전부터 조성된 공원은 높게 솟은 나무가 장엄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5보 걸으면 나무의자가 있다.

어르신분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하루를 나누고 계셨다.

유적지를 지역민들과 어우러지게 조성하는 것도 좋은 모습인 것 같다.

조용하지 않은 장소였지만, 친근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찬찬히 내리막길을 걸으면 연못의 잉어를 만날 수 있다.

연못 안에 사는 힘찬 잉어의 모습

여유로움의 극치다.

바람에 나부끼는 버드나무, 오월의 푸르름을 한 아름 안고 있는 창포꽃, 그리고 힘찬 잉어

고여있는 연못의 물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것은 열심히 헤엄치는 잉어들의 몸짓.

좋은 기운을 받는 것 같다.

기세를 몰아 이 근처의 유적지를 찾아보고자 한다.

문화재청에 들어가 검색해 보니 바로 나왔다.

조선의열단 단장 김원봉의 아내이자 치열한 독립투사였던 박차정 의사의 생가가 가까이 있었다.

박차정 의사의 생가 표지판만 보면 바로 찾아갈 수있습니다.

동래고등학교를 돌아가면 바로 만날 수 있다.

표지판이 크게 있어서 찾기가 수월했다.

인도와 자전거 도로의 모호한 경계로 도보에 불편함을 겪었지만 어찌어찌 무사히 박차정 의사의 생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분명 아침에 일어나서 월요일임을 인지했지만, 나와서 또 잊어버린 것 같다.

박차정 의사의 생가

월요일의 닫힘으로, 굳게 잠긴 대문을 볼 수 있었다.

골목 안에 위치한 박차정 의사의 생가를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특별한 환경이 특별한 사람을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특별한 사람은 단지 내 옆의 이웃일 수도 있고, 동네에서 자주 스치는 얼굴만 낯익은 동네 주민일 수도 있다.

깨어있는 의식과 실천하는 행동으로 거룩한 불꽃같은 삶을 살아낸 사람.

내가 오늘을 소중하게 보내야 할 이유를 여기서도 찾았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

비장한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월요일의 닫힘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담을 기웃거리며 구경을 마쳤다.

그리고 곧 동래시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길치는 금방 길을 헤맨다.

직진으로 쭈욱 갔는데, 눈앞에 나타난 곳은 바로 동래향교

동래향교도 월요일의 닫힘을 굳건히 하는 중이다.

오른쪽은 경찰서고 왼쪽은 학교가 있었다.

지리적으로 위치가 참 좋다.

향교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유학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관학교육기관이다.

반화루 바로 뒤에 보이는 높이 솟은 아파트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공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장소다.

이곳은 부산에서 지정한 기념물로 부산시에서 잘 관리하는 중이었다.

주차장이 가장 깔끔하고 넓었다.

역시 월요일의 닫힘을 열심히 수행 중이라서 내부를 볼 수 없었지만, 부지런히 앞을 돌아보았다.

동래향교의 전경

장소 자체가 주는 힘이 있다.

공부하기 싫은 사람들도 저절로 정숙하게 되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인접성이 참 좋았다.

잘 관리된 유적지는 일반시민에게 뿌듯함을 안겨준다.

두 다리만을 이용해 돌아보는 동래유적지 투어는 지칠 틈이 없었다.

눈이 즐거우면 몸도 같이 흥겨워한다.

그렇게 사색에 잠긴 채 걷다 보니 어느새 온천장에 다다랐다.

지붕없는 온천거리 박물관

처음 보는 장소.

지붕 없는 온천거리 박물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개방되어 있지만, 오늘은 빨간 월요일이므로 닫혀있는 박물관이었다.

아쉬움이 가득하다.

다음에 또다시 방문할 이유를 이렇게 만드는 거지.

6월까지 목요일이면 일러스트 체험을 해볼 수 있었다.

경성시대 의상 체험도 무료로 오후에 가능했다.

지인과 함께 즐거운 데이트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좋은 정보는 공유하는 것이 더 좋다.

어렸을 때 친척집이 온천장 근처에 있어서 나에게 온천장은 그리움의 장소다.

그리움에 추억이 쌓이면 상상만 해도 좋은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빠른 시일 내에 재방문을 예약한다.

여기까지 오니 몸이 몹시 지쳤다.

혹시나 하고 내가 오늘 몇 보 걸었나 확인을 해보니.

하루 2만 보 걷기는 힘들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느낌이다.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하니 몸에 기운이 더 빠지는 느낌이다.

아 당떨어져.

나를 챙길 이유도 명확해졌다.

발걸음은 무겁지만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마트로 향했다.

단거 단거 단거.

내가 사랑하는 단 것들을 모아서 결제를 하고 나오는 발걸음은 결코 무겁지 않다.


월요일의 닫힘을 철저히 경험한 하루는 전혀 허무하지 않았다.

닫힌 문에 좌절하지 않고, 더 열심히 안내문을 읽고 정보를 찾아보고 내부를 엿볼 수 있었다.

몸은 지치지만 마음을 운동한 하루는 내 배를 뚠뚠하게 했다.

완전히 제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한 발목에게 심심치 않은 냉찜질로 위로해 준다.

오늘 나를 위해 지치지 않고 버텨줘서 참 고맙다.

빨간 월요일로 인해 특별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당신에게 특별한 하루는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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