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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May 10. 2024

엄마랑 추억 만들기는 일단 사진부터

동대신동에서 남포동까지 걸어서 참외까지

나는 주로 부산 시내를 도보로 여행하는 글을 쓰고 있다.

가끔씩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엄마에게 보여주곤 한다.

분명 나는 글을 보여주는데 엄마는 사진만 본다.

짱구벽화사진에 마음이 끌렸나 보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나는 너와 거기를 가겠다.

거기가 어디? 짱구벽화 있는대.

그렇군.

그렇게 갑작스럽게 외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괜찮다. 아는 길이기 때문이다.

소란한 버스여행을 지나 동대신동 서여고 앞 버스정류장에 서게 되었다.

닥밭골 벽화마을을 찾아가는 첫 번째 길목

감천문화마을은 이전에 다녀왔기 때문에 안 가본 곳이라 가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감천문화마을보다 닥밭골벽화마을이 볼 것이 더 적어서 엄마의 흥미가 금방 식을 거라는 것을.

이동거리를 최소화하고 볼 것만 보고 움직이면 지루할 틈 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서여고 버스정류장에서 닥밭골까지 가는 길목

학교를 에워싼 담벼락에 장미가 자라고 있었다.

그 옆에 자전거 안장이 비닐 옷을 입고 있었다.

담벼락에 일단 서봐. 엄마는 거절했지만 가이드는 나다.

투덜거리지만 금세 벽 앞에 서서 사진 찍기를 기다린다.

결국 남는 것은 사진이다. 엄마의 불평은 단숨에 삼켜버린다.

헤매지 않고 바로 닥밭골 벽화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닥밭골벽화마을 입구와 포토존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입구를 마음에 들어 했다.

특히 연석 위에 놓인 미니어처에 마음이 이끌린 듯하다.

그러나 이것이 다예요. 흙으로 빗어져 구워진 미니어처 집들은 평화롭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도중에 차가 빠져서 미니어처의 뒷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집이었다. 앞에 꾸미는데 정성을 다해서 뒷모습은 밋밋했다.

흥미와 체력은 반비례한다.

어린 시절 미술시간이 생각이 났다.

소망계단을 오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닥밭골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 5층으로 쉽게 갈 수 있었다.

경험한 자는 뒤에 오는 사람을 편하게 안내할 수 있다.

평일의 소망계단 앞은 한산했지만 역시 모노레일은 사람이 좀 있었다.

참을성이 약간 부족한 엄마는 올라갈 수 있다며 씩씩하게 앞장섰다.

쉽게 올라가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소망계단을 오르고 난 후 3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리가 아프다고 하시는 걸 보면 혹여 소망계단을 오르실 분들은 천천히 오르시고 아니면 그냥 기다렸다가 모노레일 타세요.

힘들게 올라간 계단에서 내려본 경치는 풍요롭다.

이렇게 많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을 보면 새삼 사람의 의지로는 못할 게 없다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을 조심해서 내려와서 닥밭골 벽화마을을 돌아본다.

닥밭골 벽화마을의 포토존

폐가를 철거한 자리를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벽화로 마을의 역사를 알리고 밝은 분위기를 만든다.

눈으로 보는 것과 렌즈에 맺히는 색감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생각보다 별로네 했던 장소에 억지로 데려와 사진을 찍어보니 마음에 든다고 좋아했다.

나를 믿어줘요. 예쁜 사진 많이 찍어드릴게요.

여름에 가까워져 오니 벌레가 많아졌다. 그 사이를 뚫고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좋은 사진결과물을 보고 나중에는 스스로 자리 잡고 포즈를 취하는 엄마의 모습이 귀여웠다.

부끄러움은 잠시예요.

그래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관심이 없어요.

스쳐갈 사람들의 시선에 자신을 가둬두지 마세요.

닥밭골 벽화마을의 괜찮은 벽화그림

생생한 강아지의 모습이 참 귀엽다.

그리고 엄마가 제일 보고 싶어 했던 짱구벽화가 그려진 곳으로 향했다.

짱구와 친구들은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어서인지, 햇볕을 많이 받아서인지 색이 많이 바랬다.

짱구가족의 모습이 훨씬 볼만했다.

자전거를 타고 들판을 달리는 짱구가족의 모습이 평화롭고 보기 좋았다.

화목한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다.

함께하는 모습.

한 장면만으로도 그 가족의 생활이 그려진다.

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밥을 먹으러 가야 했다.

동대신동 맛집을 아쉽게도 찾지 못해서 걸어서 남포동으로 가기로 했다.

빠른 걸음으로 식욕을 돋운다.

뭘 먹을지 고민하는 새에 금방 남포동 깡통시장 앞에 당도했다.

날이 금방 흐려져서 곧 비가 올 것 같았다.

남포동에서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

그 순간 바로 메뉴가 결정되었다.

남포동에서 오래오래 사랑받는 그 음식

남포동 돌고래 순두부집은 2층입니다.

골목길 중간에 위치해서 헷갈릴 수 있지만, 식욕은 길치의 머리회전을 빠르게 한다.

헤매지 않고 바로 돌고래 순두부집에 당도할 수 있었다.

구석에 위치해 있어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가고 있었다.

처음 가보았지만 익숙하게 엄마를 안내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순두부 2개를 외쳤다.

돌고래 순두부는 그냥 맛집의 정석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김치와 어묵볶음, 동치미와 가위를 테이블에 놓는다.

물은 셀프이므로 입구에 가서 물을 가져온다.

후식 커피는 100원이다.

김치가 맛이 좋다. 가위로 내가 원하는 사이즈로 잘라먹는다.

동치미 국물 맛이 엄마 마음에 들었나 보다.

걸어오면서 지친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역시 인생은 단순하게 사는 것이 참 좋은 것 같다.

돌고래 순두부에는 순두부만 들어있습니다.

해물이나 육류가 들어가지 않아도 참 맛있다.

오래 장사를 한 집은 확실히 그 집 만의 매력이 있다.

육수를 진하게 내서 순두부국을 만들어내는 것이 확실하다.

감칠맛에 밥이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대접에 밥을 넣어주기 때문에 순두부랑 비벼먹기 참 좋다.

옆 테이블에서 낙지볶음을 반찬으로 시켰다.

다음에는 순두부와 낙지볶음을 다 시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고래 순두부 메뉴판

김치가 맛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나 보다.

판매를 하는 김치였군. 그래서 남김없이 다 먹었다.

요즘 같은 고물가시대에 한 그릇에 8000원은 메리트 있는 가격이다.

기다리지 않고 음식이 바로 나오는 것도 바쁜 현대인에게 참 좋은 것 같다.

밥이 맛있으면 외출이 더 좋아진다.

기분이 좋아진 엄마는 깡통시장에 가서 여름바지를 하나 구매했다.

편하고 예쁜 바지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만원의 행복.

그리고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인 참외를 구매했다.

뉴스에서 참외 작황이 좋지 않아 가격이 많이 뛰었다고 했는데, 큰 시장을 가니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작은 참외 한봉지 만원

참외는 큰 참외보다 작은 참외가 달고 맛있다고 한다.

한 봉지 만원. 오는 길에 무거웠지만 행복해하는 엄마를 보니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너무 작아서 웃음이 났다.

3개는 먹어야 참외를 먹은 듯한 기분이 들 것 같다.

이렇게 작아도 참외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돌아오는 길 참외냄새를 뿌리고 다녔으니까.

그리고 수고한 나에게 옛날 그 빵집의 꿀빵을 선물했다.

옛날그빵집 꿀빵은 사랑입니다.

먹을 때마다 맛있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서 쓸어오는 것 같다.

그리고 마음이 힘들 때나 몸이 지칠 때 내 삶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오래오래 만들어서 판매하셨으면 좋겠다.

집에 도착하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좋은 타이밍이었다.

엄마는 목표로 했던 짱구벽화를 보고 맛있는 식사를 했고 사고 싶었던 옷을 사서 좋았고,

나는 엄마의 사진을 찍고 엄마와 하루를 함께 보낸 것이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참외와 꿀빵은 화룡점정이다.

그래서 당신 삶에 활력소가 되는 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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