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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May 31. 2024

나의 한계를 마주한 등산 달음산

동부산을 내려다보는 경치만은 정말 최고였다.

비가 내리지 않지만, 구름이 따가운 햇볕을 가려주는 날씨.

바로 등산하기 좋은 날이다.

어제오늘 곱창전골로 내 몸을 충분히 기름지게 만들었다.

몸에 쌓인 콜레스테롤을 배출해 내기에 등산만큼 좋은 운동이 있을까.

동부산에 위치한 산들을 하나둘씩 올라가 보았다.

등산 초보에게는 익숙지 않은 달음산.

큰 맘먹고 옥정사에서 올라가는 코스로 출발했다.

나는 길치인 나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내가 올라갔던 길로 내려오리라는 보장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당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기로 했다.

좌천초등학교에서 마을버스 8-1을 타고 광산마을까지 가는 것이 계획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기장버스 8-1번 버스는 하루에 4번 운행한다.

버스가 오는데 시간이 걸리므로, 좌천초등학교에서 광산마을까지 걸어서 이동이다.

총 30분 걸렸다. 덕분에 등산 전의 기초운동을 했다.

좌천초등학교에서 광산마을 가는 길에 마주한 모습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

달음교를 지나 고즈넉한 하리마을을 지난다.

이 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커다란 물 조리개를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크고 귀여울 수가.

경관농업단지를 조성하고 있는 곳이었다.

작년에는 핑크뮬리와 해바라기로 인사를 한 곳.

가정의 평화를 의미하는 버베나와 창포의 보라빛 꽃들의 향연

보라보라 한 꽃들이 만개하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장소가 있었다니,

차를 타고 가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뻔한 아름다운 것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예기치 못한 행운을 손에 잡은 기분이다.

다음에는 여기 오면서 본 맛집 기운이 물씬 풍기는 나든이라는 식당에서 밥 먹고 천천히 걸어와 보랏빛 사진을 찍어갈 수도 있겠다.

특히 저 물조리개 참 탐이 난다. 예쁜 색감이다.

광산마을 입구

이래서 외지에 살면 차가 필요한 법이다.

광산마을까지 오는 버스는 흔치 않다. 잘 알아보고 와야 한다.

하지만 걸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름다운 것들을 더 볼 수 있는 혜택이 있다.

광산이 존재했던 마을은 일본인 관리자의 집이 존재하는 20여 가구의 조그만 마을이다.

찬찬히 올라가면서 마을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일본 마을 같기도, 70~80년대 한국마을 같기도 한 이색적인 정취가 나는 곳이었다.

광산마을에서 달음산으로 올라가는 길

표지판은 없지만, 민가를 피해 위로 올라가다 보면 산길이 보였다.

초심자가 가기에는 불편한 산이다. 안내판 하나만 더 설치해주세요.

길을 잘 모를 때 나는 무조건 전진이다.

고물상을 지나 개울을 건너다보면 어느샌가 편백나무숲을 마주할 수 있었다.

중간에 세 갈래로 나뉜 길로 나오지만 전진만 하면 된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편백나무숲길은 고요하고 향기롭고 시원하다.

화장실이 군데군데 있어서 이용하기가 수월했다.

여기까지는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는 길이다.

이렇게 좋은 곳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이 신기했다.

혼자 위를 보고, 나무를 보고, 발 밑에 떨어진 작은 솔방울들을 구경했다.

이렇게 작은 솔방울이 있다니, 마음이 간지러웠다.

그러나 곧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여름의 시작이다.

벌레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달음산을 등반하는데 원치 않았던 동료들과 함께하게 된 것이다.

확실히 고르지 못한 숲길보다는 임도가 걷기가 쉽다.

하지만 그 경사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송골송골 맺혀있던 땀들이 비처럼 쏟아진다.

잠시 쉬고 싶지만, 편백나무 숲에서 함께했던 벌레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멈추면 동료가 더 늘어나므로 나는 쉬지 않고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주한 안내판은 내 마음의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이래서 사람이 힘들 때 종교에 의지하게 되는구나.

나를 쉬게 해 준다는데, 지금은 쉽지 않다. 이 동료들을 떨쳐내려면 나는 끝까지 가야 합니다.

달음산 정상까지 0.86km라니. 1km도 남지 않았다. 힘을 내보자.

역시 모를 때 사람이 가장 용감하다.

달음산 정상까지 1km도 남지않았지만, 가장 힘든 코스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끊임없는 지그재그로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사실 계속 오르막만 가다가 두 갈래 길에서 평지를 선택했던 나는 계속 내려가는 길이 못 미더워 다시 돌아와 오르막길로 돌아왔다.

역시 감을 믿어야 한다. 길치는 길을 돌아가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위를 보고 걸으면 금세 지친다.

바로 만 보며 구불구불한 길을 5보 전진과 30초 휴식을 반복하다가 마주한 국가지점번호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지쳐서 못 갈 수도 있잖아. 혹시 모르니까. 나의 위치를 저장해 놓는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경사는 높아지고 내딛는 한 걸음의 폭이 높아졌다.

생명줄을 꽉 잡고 한발 한발 힘겹게 내디뎠다.

이렇게 오르면서 생각했다.

역시 기능성 옷을 구매해야 한다.

츄리닝 바지를 입고 갔던 나는 허벅지까지 다 젖은 바지를 보고 그렇게 결심했다.

내려가면 쇼핑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달음산 정상 힘듭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고층 아파트 생활을 했기때문에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힘든 산행 때문인지,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그런지 철제 계단을 보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래도 내 흘린 땀의 결실을 보기 위해 난간을 붙잡고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기듯이 오른 바위에는 내가 정상을 밟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

587.5m. 지면으로부터 내가 이만큼 높이 솟아있다는 뜻이다.

돌에 새겨진 태극기가 나를 자랑스러워해 주는 기분이었다.

동부산을 아우르는 달음산에서 내려다보는 비경은 정말 최고다.

왜 사람들이 등산을 하는지에 대한 답이 나오는 절경이었다.

달음산 정상을 한 바퀴 돌면 기장의 모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멋있다. 최고다. 그리고 참 다행이다.

내가 이 산을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고, 또 정상까지 무사하게 올라왔으니까.

다만 정상 평평한 바위에서 오후 2시에 음주가무를 하는 아재들을 보는 것은 좋지 않았다.

충분히 술 깨셔서 내려가야 할 텐데. 아주 쉽지 않은 산인데. 능력자들인가.

체력보충을 위한 사탕 한 알을 입에 물고 내가 올라온 길이 아닌 반대편으로 내려왔다.

나는 모르는 길로 가는 것을 참 좋아한다.

기장청소년 수련관으로 내려가는 길도 결코 쉽지 않았다.

바위로 만든 계단을 내려가는 일도 쉽지 않다.

생명의 줄을 꼭 잡고 내려가야 한다.

무심코 내려가다가 한 번 미끄러져서 손바닥 까진 사람의 변명.

올라온 길이 정말 힘들었기에 내려갈 때는 쉽게 가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많은 돌계단이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오르막도 힘들지만, 내리막길은 더 온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오르는 데는 용을 쓰고 내려오는 데는 기를 쓴다.

땀으로 젖은 바지는 마를 새가 없었다.

그래도 내가 정한 달음산 등산 코스가 완벽하다는 생각을 했다.

옥정사에서 등산의 참맛을 맛보고 내려올 때는 돌계단으로 안전하게 오기.

칭찬해 나 자신.

달음산 등산로 입구로 무사히 하산했다면 당신은 매우 잘한 것이다.

달음산 등산로로 가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

하지만 내가 하산하면서 본 달음산 등산로는 내 머릿속에 물음표를 계속해서 양산했다.

차를 이용해서 오는 사람밖에 없겠구나 하는 것이 느껴지는 인도의 상태.

잡초가 많아서 인도 쪽으로는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로 가쪽으로 붙어서 내려오면 근근이 골프장을 이용하는 차들이 오르내렸다.

달음산 정상을 찍고 오니 달음산 산림공원은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다.

걸어오기에는 힘든 곳이다.

예전 tv프로그램에서 연예인 신동엽 씨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헬스장에 운동하러 가는데, 좀 덜 걷기 위해 헬스장 입구에 주차하려고 주차장을 3바퀴 도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달음산 등산로 코스가 딱 그랬다.

사람이 걸어가기에는 엄두가 안나는 관리되지 못한 인도와 경사로였다.

그래도 무사히 안전하게 하산한 나 자신에게 쓰담쓰담해주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버스를 탔다.

환승해서 킹 중의 킹 버거킹에 가서 햄버거 세트를 포장해 왔다.

좀비처럼 비실비실 걷다가 집에 오니 세상 살 것 같았다.

모든 기력을 소진하고 왔다.

내 안의 나쁜 생각, 부정적인 마음을 놓고 왔으니 나는 다시 새사람이 된 것이다.

시원한 물 한 모금에 행복하고 내 몸 뉘일 공간이 있으니 더없이 좋은 것 아닌가.

이래서 산을 가나보다.

사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게 만들어준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사물을 온전히 바라보고 보다 긍정적 사고를 가질 수 있게 도움을 준다.

그리고 내일은 뷔페를 가야지.

몸과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더 많은 장소를 가고 싶다.

아는 것이 많아져서 여유롭게 당신에게 안내하고 싶다.

좋은 얘기를 해주고, 당신의 기쁨에 손뼉 쳐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고 싶다.

나라는 존재만으로도 당신에게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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