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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Jun 04. 2024

외로운 사람아 금정산으로 오세요

부산을 아우르는 금정산에 함께 가요

월요일에는 비가 온다고 했다.

비를 피하기 위해 오전부터 부지런히 장을 보러 다녔다.

옛날그빵집에 가서 꿀빵 10개를 사고 서동시장 가서 맛있는 어묵을 사고, 기타 부식거리들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가볍게 운동하듯이 걷는 이유는 분명하다.

등산을 하기 위해서다.

진이 빠진 것 같지만 그것은 기분일 뿐이다.

금정산의 정상까지 최단코스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범어사에서 올라가는 것이다.

90번 버스를 타고 범어사까지 가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다.

노포동 버스터미널 역에 90번 버스가 있다.

늘 비어있는 버스를 보곤 했는데, 오늘 사람들이 꽤 탑승한다.

뚜벅이들에게 정말 좋은 버스다.

굽이굽이 산을 톺아보며 가기에 참 좋다.

맑게 갠 하늘이 만들어내는 환한 빛을 커다란 나무들이 가려준다.

차창밖의 멋진 풍경을 구경하다 보면 금세 범어사에 와닿는다.

도보로 가면 무료. 차를 가져오면 현금 3,000원의 주차료를 받는다.

솔찬히 들어가는 차량들을 보면 주차료만 해도 수입이 짭짤할 듯하다.

당간지주와 일주문, 그리고 불이문

입구를 알리는 당간지주가 곧게 서있다.

고려 말기 혹은 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오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단단함이 느껴진다.

외국인 관광객과 나란히 오르막을 올라 범어사의 특별한 일주문을 보았다.

나란히 배열된 기둥이 특별한 장소다.

입구 앞에서 대화를 하는 중국인들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오늘 만난 사람 중에 한국 사람보다 외국사람이 많다면 여기는 어디인가.

불이문은 진리가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강조한 사찰의 상징적인 출입문이다.

출입을 알리는 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향한다.

오늘의 범어사는 특별했다.

고등학생들이 와서 사생대회를 하는 듯하다.

돗자리를 펴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화판에 대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나중에 산을 보고 내려오면 완성된 그림을 볼 수도 있겠다.

커다란 카메라와 처음에 웬 파리소리인가 했던 드론이 부지런히 범어사를 촬영하고 있었다.

범어사 대웅전과 기도하는 사람들

초하루 특별법회가 진행 중에 있었다.

불심으로 가득한 범어사였다.

나는 금정산을 지나가기 위해 들른 범어사였기에 행랑객은 그저 조용히 있다가 지나갈 뿐이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하다.

오래된 건물이 주는 늠름함과 사람들의 염원이 한 곳에 모여있었다.

예쁜 지붕과 하늘과 산을 보세요.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이 바로 등산로 입구이다.

오랜만에 기와지붕을 보니 정갈하고 예뻤다.

자연과의 조화가 풍요로웠다.

이런 한국적인 멋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발도장을 찍는 것이 아닌가.

저절로 마음이 차오른다.

이제 시작이다.

범어사에서 북문으로 가는 길

비로전으로 향하면 해우소를 만날 수 있다.

몸과 마음을 비우고 주차장을 지나 북문 가는 길로 향한다.

입구에서부터 범어사 돌바다를 만날 수 있다.

1시간이면 고당봉(금정산 정상)을 만날 수 있다.

최단코스인 만큼 결코 쉽지 않다.

아래를 보고 내가 발 디딜 자리를 잘 선택해서 밟아야 한다.

경사도 높고 돌들이 고르지 못하다.

5발 걷고 쉬기를 입구에서부터 실천하며 천천히 올랐다.

금정산은 내가 이제껏 올랐던 산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올라가는 사람, 내려오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마주쳤다.

혼자 오르는 산길은 조용하고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과 같지만, 때로는 공포스럽기도 하다.

가령 뱀이 나오지는 않을까, 산짐승이 달려들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혹여 내가 다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감.

금정산은 그럴 틈이 없었다.

사람이 계속 드나드는 곳이니까. 혹여 위험스러운 상황이 있어도 왠지 안심이 되는 기분이다.

북문과 금정산의 맑은 물

많은 부산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산이다.

북문에 당도할 즈음에도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이 여러군데 있으면 그냥 마음이 편하다.

북문에서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고당봉이 눈에 보인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저곳이다.

1.7km를 부지런히 올라 중간지점에 닿았다.

맑은 물이 더 기운 내라고 힘을 준다.

가져온 생수는 정상에서 흡입하고 내려올 때 맑은 물을 받아가야지.

그리고 옆을 보니 고당봉 정상 비석이 있었다.

벼락맞은 고당봉 표석비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니만큼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2016년 낙뢰로 파손되어 이곳에 옮겨진 고당봉 표석이었다.

가만히 서서 설명을 읽고 있으니 산관리직원분께서 조용히 말을 걸어오셨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생각지도 않았지만, 찍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직원분이 찍어준 사진을 보는데 전문가셨다.

의도치 않게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고당봉으로 가는 길에 대한 조언을 해주셨다.

고당봉에 오르고 나서 오른쪽 길로 10분 정도 가면 금샘을 갈 수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오기 전에 고당봉과 금샘을 찾아보아서 알고는 있었지만,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니 더욱 가고 싶어 졌다.

고당봉으로 오르는 길은 나무계단이라 힘드니까 오를 때만 그 길로 가고 내려올 때는 금샘으로 내려오라고 하셨다.

좋은 사진과 꼭 필요한 산지식을 알려주셔서 고마운 마음이 들어 보조가방에 넣어둔 사탕을 두 알 선물로 드렸다.

결과론적으로 정말 나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이분 말이 아니었으면 금샘은 가지 않았을 것 같다.

금샘으로 가는 길

고당봉까지 200m 전, 금샘까지 400m 전.

나는 직원분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금샘으로 향하는 길을 선택했다.

400m는 산에서 생각보다 먼 거리다.

아무것도 안 나오는 길에 중간에 다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더 가보자 해서 진짜 10분을 걸어갔더니 금샘 표지판을 만날 수 있었다.

생명줄을 잡고 커다란 바위를 기어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금샘에서 바라본 금정산자락의 모습

일단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고당봉까지 올라가고 나면 다른 것은 생각이 안 난다.

금샘부터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위 위에 혼자 서있으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장소를 알고 찾아오는 걸까.

금샘에서 바라본 북문과 고당봉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금샘.

금빛이 나는 물고기가 노니는 샘이라는 뜻의 금샘은 바위 위에 있으며 생명과 다산을 기원한다고 한다.

이 높은 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던 마음, 아이를 원하는 많은 어버이들이 염원하는 마음으로 오르고 올랐을 장소다.

성스러운 기운을 담아 바위를 안다시피 해서 안전하게 내려왔다.

고당봉을 다 오르기 전에 만난 귀인에게서 좋은 정보를 얻었고, 그 말을 잘 들어서 이곳까지 와닿았다.

더 좋은 일이 내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고당봉까지는 금방이다.

고당봉 가는길과 고당봉

왔던 길을 돌아가면 고당봉 가는 길 표지판을 바로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오르다 보면 계단을 만날 수 있고, 그 계단을 돌고 돌아 금세 정상에 닿는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금샘에선 한 명도 만나지 못했는데 그 사람들이 다 고당봉에 있었다.

회사 야유회로 온 사람들, 등산동호회 사람들, 친구들과 함께 온 사람들.

줄 서서 고당봉에서 사진을 찍었다.

혼자 온 나는 그들 사이에 얌전히 줄을 섰다가 내 앞에 세 여인이 "아 사진 찍어야 하는데."

배고픈 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제가 찍어드릴게요. 저도 사진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나는 등가교환으로 고당봉과 함께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올해 들어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그렇게 찍었다.

고당봉을 오르고 나니 다른 생각은 전혀 안났다.

고당봉 오르기 전에 금샘을 들른 것은 정말 잘 한 일이었다.

내려오는 길은 북문으로 향하는 나무계단 쪽으로 선택했다.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

산을 오를 때는 1시간 30분 정도 소요했고, 내려오는 데는 40분 정도 걸렸다.

체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 쉬면서 오르기 때문에 남들보다 1.3배는 느리다.

하지만 괜찮다. 천천히 오른다고 누가 뭐라 하는 사람 없고, 어쨌든 정상을 향해 가는 거니까.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더 무서웠다.

고당봉에서 하산하는 길도 만만치 않다.

고르지 않은 돌길이지만 재미는 있다.

한 발 한 발. 나의 선택으로 그 돌은 쓰임새가 있게 되는 것이다.

마음속으로 리듬을 주면서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간간이 들리는 등산객들의 등산스틱이 땅에 찍히는 소리.

자연의 소리가 내 귀를 풍요롭게 한다.

질서 없이 있는 돌 같지만, 내려오는 길을 보다 안전하게 한다.

내리막길을 가다 보면 흙과 자갈에 미끄러지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곧 범어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림을 다 그리고 자리를 정리하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딱 2시간 걸렸구나.

눈으로 슬쩍 그들의 완성된 그림을 보았다.

형편없었다.

고수들은 어디에 숨었나.

근데 나도 저 때 저러지 않았나.

그림 그리는 것보다 친구들이랑 얘기하고 노는 게 더 좋았으니까.

그림보다 다른 걸 더 잘하는 친구들이겠지.

그리고 나는 서있던 90번 버스를 운 좋게 바로 타서 금방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껏 내가 했던 산행은 외로운 길이었다.

건강한 외로움이라고 생각했는데, 금정산은 확연히 달랐다.

말없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순간만은 나와 함께하는 동지였다.

어찌 보면 예측할 수 없는 위험상황에 대한 안도감을 주는 나를 모르는 타인들.

그리고 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

따뜻함이 있었다.

혼자 오른 산이었지만, 오늘은 외롭지 않았다.

나에게 예쁜 사진을 찍어주신 두 분, 좋은 정보를 주신 금정산 관계자분.

그 외 오늘 함께 나와 같이 산을 올라주신 많은 분들에게 소소한 기쁨이 함께 하기를.

오늘도 나는 소소한 기쁨으로 충만한 하루를 보내기를 소망해 본다.

당신의 하루도 그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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