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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May 15. 2024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두 개

찝찝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맛보는 저주토끼

아주 오랜만에 도서관을 갔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유영하다가 보고 싶은 책이 생겨서 아침에 눈뜨고 바로 출발했다.

그리고 손에 넣은 책은 바로 마츠모토 세이초의 잠복.

읽고 싶은 책을 손에 넣은 나는 지금 이 순간 바로 부자다.

그렇게 넉넉해진 마음으로 최신서적들을 훑어보았다.

최근에 수상한 책들이 전시된 모습도 보았다.

그러다가 나랑 눈 마주친 책이 바로

저주토끼

책의 표지에 쓰여있는 문구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정말 아름다운 문구다.

아름답고 예쁜 것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다.

얼마나 위험하고 매력적인 글이 이 안에 들어있을까.

설렘을 갖고 책 페이지를 열어보았다.


총 10편의 단편 모음집이었다.

저주토끼 머리 차가운 손가락 몸하다 안녕, 내 사랑 덫 흉터 즐거운 나의 집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재회

시작이 바로 저주 토끼이다.

할아버지와 손주의 대화로 이 저주이야기가 시작된다.


대대로 저주하는 물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가업을 가진 집이야기.

개인적인 저주를 하지 않고 의뢰받은 일만 수행하는 가풍이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고마운 마음을 가진 친구를 위해 직접 저주를 선물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주하고자 하는 이의 손길이 반드시 저주물품에 닿아야 저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좌절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친구는 편법과 사기, 불공정한 거래로 인해 가산을 잃고 삶의 의욕까지 잃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 충격에 가족들도 해체당하고 사라져 버린다.

그 억울함을 대신 복수해주고 싶은 마음에 친구를 괴롭게 한 당사자의 집안에 저주토끼를 보낸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토끼의 능력이 퍽 대단하다.

보이는 종이를 모조리 다 씹어먹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사건은 금방 잊힌다.

자신이 맡은 바에 책임을 확실히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이렇게 커질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작은 토끼의 영역이 넓어지고 저주에 걸린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버린다.

그리고 개인적인 저주를 걸어버린 할아버지는 어느샌가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그의 영혼만 그가 지내던 자리를 맴돌 뿐이다.


대체적으로 모든 이야기가 찝찝하고 불편하게 시작한다.

누군가를 저주하는 일은 자신의 무덤을 두 개 만드는 것과 같다는 어느 나라의 속담처럼 위험한 일이다.

본인이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보은 하는 것.

업은 업으로써 갚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가해자들이 당하는 모습은 사필귀정을 떠오르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까지 당하는 모습은 과연 그 복수의 방법이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좌제.

가족의 잘못으로 혜택을 얻은 자도 공범자가 되는 것일까.

찝찝한 결말이지만 다른 독자들의 통쾌하다는 평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재미있게 읽은 편은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편이었다.

모래의 왕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황금 배의 지배자를 공격한다.

그에게 상처를 입힌 대가로 자신의 아들이 맹인으로 태어난다.

이 눈먼 자는 초원의 딸과 결혼하게 되는데, 이 초원의 공주는 굉장히 총명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죄를 자식에게까지 물려주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제 발로 황금배의 주인을 찾아간다.

허허벌판뿐인 모래사장을 끝없이 걷다가 결국 황금배를 만나게 된다.

용맹한 초원의 공주에게 감복한 황금배의 주인은 자신이 저주를 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의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라고, 그리고 눈먼 자가 눈을 뜬다 하더라도 공주는 절대 왕자와 결혼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공주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삶을 살아내고 싶었던 공주는 당차게 거절한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인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는 공주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한다.

공주에게 인간의 삶은 줄 수 없지만, 대신 인간이 알지 못하는 평온과 무한을 주겠다고.

그렇게 사막을 거쳐 돌아온 공주는 눈을 뜬 왕자를 마주 할 수 있었지만, 본인의 기대와는 달리 욕심에 눈이 멀어버린 왕자를 보고 크게 실망하고 만다.

옳은 말을 하는 공주를 마녀라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의 방해자라 치부해 버린다.

그리고 공주는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와 함께 사라져 버린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모든 이야기에,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문구이다.

왜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하지 못할까.

배고플 때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줘서라도 먹을 것을 바라지만, 배가 부르면 바로 등을 돌리게 된다.

과연 이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냉정한 배부른 인간의 결과를 저주토끼 안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진정한 사필귀정이라 할 수 있을까.

복수가 완료된 것 같아도 내 마음은 불편했다.

하지만 공평하지만은 지금의 사회를 생각하면 이정도의 결과만 나와도 만족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완벽한 결과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수긍가능한 결말인 것 같다.

오랜만에 술술 읽히는 재밌는 책을 읽었다.

저주토끼와 바람과 사막의 지배자를 포함해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단편들이 많이 있다.

인간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

이렇게 내가 모르는 사람의 상상을 공식적으로 엿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책을 덮고 앉아서 혼자 사색에 잠겨본다.

동화같기도, 미래 일기 같기도 한 작가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곱씹어보았다.

인간은 끊임없이 실수하고 다투고, 즐기면서 인생을 배워간다.

글을 읽으면서 나 또한 간접체험을 하고 다른 이들에게 상처 주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만 경계하면서 즐기는 삶을 살아야지.

당신도 당신만의 아름다운 저주를 마음속에 품고 계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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