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돌이도 갈 곳이 필요해

퇴사자 생활 지침서

by 변준수

"잘 지내시죠?"


요즘 가장 많이 받는 문자다. '잘 지내냐'는 말이 '코로나에 무사하냐'는 말로 들리는 최근 일상들. 퇴사자에게도, 자발적 집돌이에게도 코로나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많은 이의 일상이 마비된 것처럼 집돌이 퇴사자의 일상도 멈췄기 때문이다.


'원래 집에 있었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응. 맞아. 그런데 프리랜서도 갈 곳이 필요하다. 내게 집은 쉬는 곳이지 일하는 곳이 아니다. 집에서 밥을 먹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잠을 자지만 작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이불 밖이 가장 위험한 이 시기에 맞춰 집 근처 찻집에서 파는 커피 원두를 산 적이 있다. 매번 내려먹던 커피 맛은 그날따라 맛이 없었다. 찻집 사장님의 그 맛이 안 나는 건 내 손맛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분위기가 다른 게 컸다. 우리 집에 아무리 라탄 조명을 달아놓은들 집은 그냥 집일 뿐이다. 원래 혼자서 뭔가를 많이 하는 일상이었지만 요샌 혼자 뭘 하는 것도 쉽지 않다.


zY4zU4OwC7ykEgCbdTX0zkxb.jpg 카페 이미지 / 이하 구글 이미지


백수가 됐든, 프리랜서가 됐든, 퇴사자가 됐든, 집에만 있건 간에 모두에게 갈 곳은 꼭 필요하다. 집에서만 있기에는 너무 답답하다. '이렇게 집에만 있다가는 코로나 확진받기 전에 (살이) 확 찔 거 같아'라고 생각하고서 주섬주섬 일할 거리를 챙겨본다. 가방을 메고 집 앞 카페를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다. 집 앞이라 편안한 복장으로 왔는데 뭔가 후줄근해 보이는 내 모습에 모든 이의 시선이 꽂힌다. 그래서 단골 카페도 가기가 쉽지 않다.


집돌이면서 만성 비염환자들은 예전에 자주 가던 곳도 최근엔 가기가 힘들다. 사람이 많은 곳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도 있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사람들의 시선이다. "사람 눈치를 그렇게 보고 사나?"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 사람 눈보다 무서운 게 없다. 공공장소에서 홀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하거나 자신을 향해 경멸의 눈빛을 쏘아댄다. 마스크가 하나의 매너가 된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마스크를 해도 벌어진다는 점이다. 만성 비염 환자들은 겨울, 그리고 지금과 같은 환절기에 재채기와 코감기를 달고 산다. 죄가 있다면 이렇게 태어난 죄밖에 없지만 비염환자들은 밖에 나가면 죄인이 된다. 재채기를 하는 순간, 바이러스 전파자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게 된다.


theater_233.jpg 극장도 가기 힘들긴 매한가지다.


만성 비염 환자가 아니어도 상황은 비슷하다. 작업 때문에 지금까지 크게 문제가 없었던 동네 카페 여러 곳을 돌아가면서 다니고 있다. 해당 카페에 피해를 줘선 안되기에 방역에 더 신경을 쓰고 방문한다. 하지만 카페만 가는 것으로 이 갈증이 해소되진 않는다. 그래서 극장으로 향한다. 넷플릭스와 OCN을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번 TV 앞에 있다가는 내 방에 그대로 붙어있는 지박령이 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극장은 카페보다 도전하기 더 힘겹다. 카페는 각자의 자리를 고수한 채 나름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있지만 극장에서는 그게 힘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만석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앞뒤, 양 옆자리가 빈다는 점이다. 그래도 마스크를 낀 채 영화를 봐야 한다. 방역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하는 철칙이지만 2시간 동안 실내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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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모든 불편함보다 힘든 건 모든 취업, 이직 일정이 연기됐다는 점이다. 그 와중에도 들어가는 사람들은 취업문을 열고 있지만 대부분 구직자들은 회사에서 응답이 오지 않아 답답한 상황이다. 사람을 구하는 사측에서도 애매한 상황이다. 일면식도 없고 방역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는 이를 회사에 들이는 것 자체가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업무는 전쟁이 나도 돌아가야 하기에 방역 문제로 문을 닫게 되면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칠 수 있다. 마음은 십분 이해하고도 남지만 서류 통과해놓고 답이 오지 않는 핸드폰만 바라보는 것도 고역이다.


이 놈의 전염병은 이를 막는 정부와 의료진, 일반 시민들 모두에게 가혹하기만 하다. 게다가 퇴사자에게도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주변 지인들 중에서는 퇴사하고 해외여행을 계획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계획을 포기한 사람도 있었다. 어딜 갈 수도, 사람을 만나 이야기할 수도 없게 만든 녀석, 참 지겹다. 그나저나 집돌이도 자발적인 집돌이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타의에 의해, 강제로 집돌이가 되니 이만큼 답답한 게 없다. 다시 군 복무를 하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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