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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춘식 Jul 10. 2021

맛은 ‘본다와 느낀다·생각한다’의 사이에 있다

당신에게 들려드릴 '오늘의 맛' #0. 프롤로그

영화 <매트릭스 2 리로디드>에는 소스 코드를 피해 매트릭스 안으로 숨어 들어온 프로그램 메로빈지언과 페르세포네가 있다. 두 사람은 주인공 네오, 트리니티와 만나 이런 얘기를 한다.      


“어차피 맛이라는 것도 다 이 세계(매트릭스)에서 그렇게 느끼도록 구현된 연산 작용이죠”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고 내가 하는 모든 게 가상이거나 구현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면 불금에 맥주와 함께 먹으려고 하는 치킨의 그 맛도 다 가짜인 건가. 치맥이 허상이라는 건가. 맥주의 시원한 맛과 통닭의 쫀득한 맛이 0과 1로 이뤄진 조합에 불과한 건가.     


매트릭스 시리즈를 다 보고 난 후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치킨과 맥주를 먹었다. 이진법의 조합으로 만든 것치고는 꽤 정교한 맛이 났다. 치킨도 반 정도 먹고 500cc 한잔을 마셨을 무렵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맛은 보기도 하고 느끼기도 하고 그렇게 맛이 난다고 생각하기도 하는구나’     


우리는 눈으로 인지한 상태에서 음식의 촉감을 입으로 보기도 하고, 시원한 맛, 스트레스가 풀리는 맛으로 느끼며 받아들이기도 한다. 가끔은 죽을 맛이라며 혀를 차기도 하고 먹을만하다며 목구멍으로 욱여넣는 일도 있다.   

  

방정식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일지라도, 0과 1의 조합에 불과하더라도 맛은 우리가 느끼고 보고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영화에서도 인간을 연구하던 프로그램인 오라클마저 쿠키의 맛에 빠진 걸 보면 그게 진짜든 아니든 기계든 사람이든 확실히 매력적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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